환경재앙 서곡...어민들 "욕지도 인근 바다에는 물메기도 사라졌다"

▲ 문경춘 편집국장

한마디로 바다를 살려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무분별한 모래 채취로 남해안 배타적경제수역(EEZ) 주변 바다를 해양 생물들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오후 부산 서구에 있는 부산공동어시장 중앙광장에서 남해EEZ 모래채취 대책위원회와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부산항발전협의회 등의 주최로 바닷모래 채취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대책위는 "우리나라 경제주체 그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다를 파괴할 권리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정부는 골재채취 업자들의 이익을 위한 채취 허가 연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방 50km 남해안 배타적경제수역(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 일대에서 국토부가 지난 2001년부터 최근 까지 바다모래를 채취해 왔다.

지금까지 파 낸 바다모래는 모두 1억2000만여㎡로 15톤 덤프트럭 1천200만 대 분량이다.
부산 사직구장(면적 6,460㎡, 5층) 250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고 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바다 밑은 이미 거대한 협곡으로 변해 있을 것이 뻔하다. 어패류의 산란장으로 사용되던 모래가 사라졌으니 산란장은 파괴되고 덩달아 생태계도 엉망이 돼 있을 것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사라진 모래량을 비교해 보면 바다가 어느정도 파헤쳐지고, 또 얼마나 골병들고 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그동안 어민들은 줄곧 바다모래 채취를 반대해 왔으며, 끈질기게 작업 중단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어민들의 우려는 최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일대가 고등어와 멸치, 붕장어 등 수도 없이 많은 해양생물 종(種)의 서식장과 산란장으로 활용돼 왔는데 바다 밑이 무참히 파헤쳐지자 당장 어획량부터 확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겨울철이면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물메기 어획량이 예년에 비해 10% 수준에 머물렀다고 하소연들이다. 물메기로 유명한 통영시 욕지면 추도의 경우 지난해와 올 겨울 사이에 잡힌 물메기는 고작 평년의 10% 수준에도 못미쳤다. 이로인해 마른 메기를 생산하는 덕장을 제대로 활용해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물메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려진 추도를 거점으로 인근 남해안 일대 전역이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욕지도 인근 해상의 바닷모래 채취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어민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최근 마른 물메기의 경우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다보니 성어 한 마리에 대구 가격과 비슷한 2만5천원 선에서 거래 될 만큼 금값을 받고 있을 정도다.

바닷모래가 있는 곳은 해양생물 종들의 서식과 산란장 외에도 월동장 역할도 한다. 또 연근해 주요 어업자원들의 회유경로에 위치해 있어 남해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국토부는 어민들의 격렬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산신항 건설 등 각종 국책사업을 명분으로 모래 채취를 강행해 왔다. 2008년에는 기존 채취해역 일원 27.4㎢를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 하기까지 했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해저를 조사한 결과 모래를 채취한 해역의 바닥 곳곳이 모래층이 완전히 사라지고 암반이 드러나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웅덩이는 너비 1.5~1.9km, 깊이는 10m 이상이다. 규정에는 5m 깊이로 일정하게 채취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이 규정 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어민들은 이러다보니 주변 해역의 생태계가 크게 변하는 등 엉망이 돼 버렸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그 많았던 고등어의 경우 산란장이 파괴되면서 회유 경로가 바뀌었다. 최근 산란기 고등어가 일본 EEZ(101, 102해구 등)에서 주로 잡히고 있어 우리 수산업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장어잡이 근해통발어선도 바닷모래 채취 해역 인근 조업 어선수가 2001년 70~80척에서 지난해에는 5~6척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바닷모래가 육지 모래보다 더 싸기 때문에 계속 파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골재업자들의 주장대로 허가를 연장해 준다면 향후 어자원 고갈과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복구 불능 상태로 까지 확대 될지 모른다.

정부가 나서 수 많은 해양 생물들의 산란장이자 서식지인 바닷모래밭을 국책사업 명분 등을 내세워 계속 채취하는 행위는 더 이상 진행돼서는 안된다. 바닷모래를 헐값에 넘겨 업자들의 배만 불릴 뿐 결국 어자원을 고갈시켜 어민들을 죽이고 남해안 황금어장 까지 결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바닷모래 채취 반대를 위한 행동에 본격적으로 돌입 한다고 한다. 22일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바닷모래 채취 반대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며칠 내 부산역 등에서 ‘어업인 총궐기대회’도 개최한다. 선상에서는 해상시위를 벌이고 잇따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방문도 예정 돼 있다고 하니 정부가 어떤식으로 대응할지 두고 볼 일이다.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은 수 많은 어종이 영영 사라질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환경재앙의 서곡이나 다름없다.

눈에 보이는 육지의 발전을 위해 보물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남해안 바닷모래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채취하려는 의도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