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 임에도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한달여 계속되고 있는 황우석 충격은 민심을 거의 패닉(=정신적 恐惶)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난치병환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신화였던 존재의 추락은 충격 그 자체다. 무슨말로 변명한들 이제 아무도 그의 말을 믿을것 같지 않다. 더구나 영웅 만들기에 앞 다투다가 사기극이 탄로나자  반성은 커녕, 발빠르게 변신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우리가 꿈꾸던 신화의 허황됨에 몸서리를 친다.


시간이 갈수록  진상규명은  더욱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니 혼란 수습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조급성"의 공범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음에도 오직 그에게 씌울 멍에 찾기에만 골몰해 있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최고 과학자의 조국 대한민국"은 온통 엉망인데 아직 그는 별다른 말이 없다. 다만 이 뼈져린 상처에 대한 치유의 해법을 참회의 눈물로 대신한 노(老) 추기경의 고뇌어린 충고와 위로는 그나마 우리에게 남아있는 한줄기 희망의 세포로 다가온다. 
 가뜩이나 정신이 혼미한 판국에 개정 사학법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로 치닫고 있는 정치권은 답답한 가슴을 더욱 짓누른다. 한마디로 정치가 아니라 거의 난장판이다. 국회를 박차고 나와 칼바람을 맞고 거리에 선 투사(?)들은 원한에 사무쳐 보인다. 파행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진정한 노력도 없이 서로 갈등의 원인을 "네 탓"에서 찾을려고 할뿐 자성(自省)에는 너무 인색하다. 마치 상대방이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양상이다.


사학운영자들은 새학기에 아예 아이들을 받지 않고 학교 문을 닫겠다고 하니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걱정스럽다. 독감도 유행하고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이제 그만 국회로 들어가 새해 예산안 등 시급한 현안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법 하다. 대개 정치적 명분과 실익이 확보되면 정당(政黨)의 지향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대화만이 그나마 본전이라도 챙길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민생 정치를 외쳐본들 행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힘없는 국민들만 그 부담과 후유증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면 그것은 정치(政治)가 아니라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와중에 시위 농민 2명의 안타까운 죽음은 줄기세포 충격 못지 않다. 책임 소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경찰청장이 사퇴하였다. 농민단체와 범대위는 이를 두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3자 협의기구 구성을 통하여 근본적인 농정해결책을 다루고 농민대회에서 발생한 부상자에 대한 보상과 구속중인 농민을 조속히 석방하라고 주장한다. 당초 경찰청장이 사퇴하면 만사가 해결될처럼 요란스럽더니 이제는 불법 시위를 막은 "기동단"까지 해체하라니 속셈을 알수 없다. 듣기에 따라서는 공권력의 무력화를 바라는 무정부주의자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시위농민의 애석한 사망에 대하여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농민단체의 간부들이 이번 사건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평소 시위도 프로답게 한다. 달포전에는  그들이 주도하여 시위 상품을 홍콩까지 수출하려다가 호되게 당하고 되돌아왔다. 그들은 늘 집회 초기에  앞장서다가 시위가 격화되면 경호원 동지들에게 둘러싸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다. 그래서 잘 다치지도 않는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지리나 현장감이 떨어지는 나이많은 농민을 앞장세워 죽음으로 내 몬 책임이 그들에게 전혀 없단 말인가. 그 순하디 순한 분들이 애초부터 폭력시위를 계획 했을리가 만무하다. 평소 별다른 시위 경험도 없는데다가 앞을 막는 자식같은 전의경들이 밉기는 해도 대충 힘으로 버티고 시늉만 하다가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국방 의무을 위해 할수없이 그 현장에 있던 어린 전의경들 또한 아버지 삼촌같은 시위농민들을 처음부터 방패로 내리찍고 경찰봉을 휘둘러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압부대원들은 시위현장에 투입되기전 수도 없이 안전수칙을 교육받고 시위대를 적으로 보지 말라고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 그러나 물리력이 충돌하는 현장의 특성상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더구나 불법 폭력시위 현장은 더욱 그러하다. 혈기왕성한 젊은 대원들은 동료가 쓰러지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 자제력을 잃게 되고 그때부터 시위대에 대한 적개심은 그만큼의 사고발생 가능성에 근접하게 된다. 차츰 반복되는 폭력시위 진압 경험은 어린 대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방어 본능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쇠파이프나 날이 선 죽창을 들고 얼굴 정면을 가격하는 폭력시위대의 섬뜩함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필자는 20대 후반 순경 시절 3년여를 사복진압부대에서 생활한 바 있어 그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안다. 어린 전경들이 격렬한 시위진압을 마치고 돌아와 종종 이상증세를 보이거나, 헛소리를 하고, 잠 못이루는 모습은 경찰이 아니라 군 복무를 목전에 둔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기억하고 싶지않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시위 문화는 어느 한쪽의 양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경찰청장의 사퇴와 함께 사법당국의 수사를 통하여 그 책임 소재를 가리고 적절한 보상의 절차가 남아있다. 농민 사망의 원인을 밝혀야 함은 물론, 경찰차를 불태우고 폭력시위를 주도한 시위지도부의 책임도 당연히 따져야 한다.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새 판을 짜는 작업은 경찰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참여와 공감대가 필수적이다. 외신기자들은 한국의 폭력시위현장을 보고 "이런 전투적인 현장에서 사망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 불가사의 하다"며 매우 놀란다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그 토록 맹렬하게 학습해 온  폭력시위 문화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한참 이후에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퇴행적 시위문화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반드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수많은 경찰청장이 옷을 벗을 것이고 시위대든 진압부대원이든 누군가는 또 다시 희생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돌아가신 두분 농민도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인권경찰"을 표방한 원년에 시위농민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 쓰라린 아픔을  값진 교훈으로 삼아 인권의 보루로 거듭나는 노력을 더욱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근 출범시킨 경찰 혁신기획단의 T/F팀에서 선진시위 문화 정착에 기여할수 있는 대안을 마련중에 있다고 한다.  차제에 정부도 농민들이 절망에서 헤어날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여 찢어진 농촌의 민심을 어루만져 주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다시한번 돌아가신 두분 농민의 명복을 빌며, 시위과정에서 부상한 농민들과 아직도 병상에 누워 신음하는 어린 전의경들이 새해에는 훌훌털고 하루빨리 일어날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