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생각합니다. 새해를 맞고 보내면서 사람들은 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살아온 길과 또 살아가야 할 행보의 완급과 향방에 대해 스스로 길을 묻습니다. 길을 되물으며 자신의 현주소를 조감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진중한 시간을 갖는 새 시간들입니다.

자신과의 다짐과 약속을 아침 햇발과 조우하기 위해 해가 솟는 땅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산과 바다를 넘어 새벽 이내 속에서 신비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집단 경배의 그 모습은 인류가 생긴 이래로, 저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자연물에 대한 엄숙한 제례 풍경입니다. 짐승의 가죽옷을 입은 대신 인조섬유로 된 옷을 걸쳤을 뿐, 쇠로 만든 발통을 타고 온 것이 다를 뿐, 인류의 자연숭배는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떠오른 해를 바라보면서 간절히 무언가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손목에는 묵주가, 염주가 걸려있기도 하고, 또는 맨손이기도 합니다.

‘자연 속에 있을 때’ 행복

기원의 내용이 복을 바라는 기복으로 채워졌는지, 감사와 헌사로 채워졌는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또는 개인의 각성을 소원 하였으리라 여겨집니다.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경이 있습니다. ‘자연 속에 있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풍나무 숲길을 걸을 때,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이 있다면, 여행을 원 없이 다닐 수 있다면, 돈도 많이 벌고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 각기 조금씩 다른 행복 기준이지만 배경은 여전히 같습니다. 자연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염원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인류의 염원은 그러하나 말과 행동은 일치하기가 어렵습니다. 얼굴과 시선은 푸른 산을, 숲을 보고자하고, 발은 도시화로 향하는 모습인데 목이 돌아간 인류의 발걸음은 그래서 여전히 위태위태하기만 합니다.

올해는 지긋지긋한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이 나라 산천이 공포에 떨면서 숨을 죽인 채 그들의 공약을 바라봅니다. 대부분 무언가를 부수고 파헤치고 숨통을 막아서 누가 대상인지도 모를 ‘발전’을 하겠다, ‘발전’을 시키겠다는 전력회사식 선포를 해대는 그들의 공약이 또 얼마나 쏟아질지 벌써 산천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입니다.

‘온난화’ 또는 ‘기후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병든 지구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발작적인 난개발 정책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우매하고 무지한 생각에서 내지른 해악들은 두고두고 죄 없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됩니다.

올 선거엔 ‘푸른 공약’ 기대

이 재난의 시대, 출마자들의 공약도 개발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해서 방향을 틀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과 도시를 얼마나 아름답게, 평화롭게, 복되게 하느냐에 천착해야 할 것입니다.

난개발은 압살의 다른 표현입니다. 어떤 군수도 시장도 도지사도 장관도 대통령도 땅을 죽일 권한은 없습니다. 지구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 밖의 오만방자한 일입니다. 숲을 밀어내고 땅을 파헤치고 바다의 숨구멍을 틀어막으라고 사 오년의 임기를 준 것이 아닙니다.

표를 얻어서 당선이 되면 마치 그 행정구역이 자신의 사유지인양 함부로 파헤치고, 누가 더 많이 파헤쳐서 얼마나 많은 생물종들을 죽여 버렸고, 숨쉬지 못하는 죽은 땅으로 만들어 놓았는가를 자랑삼아 그것을 공적으로 치부하려 합니다.

또한 그것을 칭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 위대한 자연 앞에 서서 복을 바라는 모순을 연출합니다. 해가 웃을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지구환경에 대해 공범입니다.

새해에는 파릇파릇한 푸른 공약들이 미나리꽝의 새순처럼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하늘이 낸 신성한 땅과 생명을 지키는 저 시애틀 원주민의 추장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윤미숙(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