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룡

삶에 지쳐 허우적거릴 때면 배낭을 메고 높은 산을 오른다. 그러면 어린 시절, 지게를 짊어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난생처음 높은 산꼭대기 근처까지 올라간 기억은, 땔감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우리 집은 여느 시골집처럼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했다. 농사를 짓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일 년 치 장작을 미리 패서 쌓아 두어야 했다. 장작이 차곡차곡 쌓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장작은 주로 소나무를 사용했는데, 마을 근처의 낮은 산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나무는 이미 거의 사라졌고, 가끔 남아 있더라도 산 주인이 있어 함부로 가져올 수 없었다. 결국 소나무를 찾아 더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했다.

적당한 굵기의 소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장작 길이로 자른 후, 지게에 지고 내려오는 길은 익숙한 좁은 비탈길이었지만, 오를 때보다 두 배, 세 배 더 힘들었다. 특히 수십 미터 가파른 계곡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치 삶의 한고비를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물기를 머금은 소나무는 무거웠고, 그 무게는 삶의 짐처럼 여린 어깨를 짓눌렀다. 하루에 두 짐을 나르고 장작도 패야 했기에 체력 안배가 필수였다. 이때 유용했던 것이 바로 지겟작대기였다.

지겟작대기는 지게의 단짝 지지대가 되어, 지게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했다. 작대기가 없으면 무거운 지게를 세우거나 일어설 수도 없었다. 마치 사람 인(人)자처럼, 비록 한낱 작은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여느 집처럼 평소 서로 주고받는 말이 없는 부자 관계였지만, 이때만큼은 항상 지게를 지고 나가는 나에게 “지겟작대기를 꼭 챙겨라.”라고 당부하셨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저 잔소리로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조언이었다.

시골에서는 흔해 보이는 작대기였지만, 비탈길과 미끄러운 길을 내려올 때나 좁은 논두렁과 개울을 건널 때, 어둑어둑한 길에서 다리와 손이 되어 주었다.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었으며, 길에서 마주치는 장애물을 치우기도 했다. 막걸리 한잔을 걸친 농부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던 그야말로 손때 묻은 보배이자 든든한 동무 같은 존재였다.

학창 시절, 구시대적 유물의 동시적 혼재 현상에 대한 시험 문제를 접했을 때, 지게와 지겟작대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게와 지겟작대기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편리한 운반 도구로, 삶의 희로애락을 짊어진 든든한 일꾼이자 버팀목이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도 여전히 그 쓰임을 볼 수 있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추억 속의 지겟작대기가 그리워진다. 삶의 무게를 덜어주던 그 존재처럼, 삶의 고비를 넘는 지금 내 곁에도 그런 버팀목이 있을까. 혹시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