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아

지난 여름, KTX를 타고 두 시간도 안 돼 강릉에 도착했다. 역사에서 도보로 월화거리와 중앙시장, 차량으로 10분이면 안목해변에 닿는 동선은 머무르고 소비하기에 완벽했다. 무엇보다 강릉역의 입지는 '다시 오고 싶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여행에서의 '접근성'은 도시 방문의 결정적 요소다. 

거제도 역시 빼어난 해양 관광지를 품고 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통영까지만 다녀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통영이 '좀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남부내륙철도(KTX) 개통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이왕 KTX를 탔으니 내륙보다 섬으로, 그리고 최남단까지 가보자"는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현재 KTX 거제역은 사등면으로 확정된 상태다. 문제는 이곳이 거제의 주요 관광지 및 도심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당초 유력했던 도심 상동 일대는 입지 접근성과 연계성이 뛰어나 관광 흐름을 유입시키기에 최적이었으나, 일부 지역 주민들의 "아파트가 흔들린다" "소음이 걱정된다"는 민원성 반발로 인해 제외되었다. 이는 전형적인 님비(NIMBY) 현상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사등면 일대 지역 주민들은 "거제시 도시개발에서 소외돼 왔다"는 점을 내세우며, 도심 역 유치를 반대하며 강하게 민원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건설비가 적게 들고, 도심 민원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절충되어 사등면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등을 종착지로 소비하게 만들 뿐, 거제의 새로운 관광 시작점으로 기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더욱이 사등면의 입지는 통영 KTX역과의 거리 차이도 크지 않아 동일 생활권 내 관광 수요를 분산시키기 어렵다. 반면, 통영은 도심과 비교적 가까운 입지 전략을 통해 관광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입시키고 있다. 입지 하나가 지역 간 관광 경쟁력의 차이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강릉은 KTX 도심역 개통 후 관광객 수 34%, 관광 소비 42% 증가라는 효과를 거뒀고, 여수 역시 도심 역사로 KTX가 연결된 이후 이용객이 69.2%, 관광객 수 약 30% 증가했다. 반면 도심 외곽에 역사가 들어선 지역들은  체류 시간과 지역 내 소비는 줄고, 역세권 개발도 기대에 못 미쳤다. 아산·오송 등과 같은 곳은 도심에서 멀어진만큼 여행자의 기억에서도 멀어졌다. 이 지역들은 그저 여정을 잠시 멈추는 '경유지'일 뿐, 목적지가 되지 못했다.

이처럼 관광 흐름을 유도하는 핵심은 단순히 열차가 선다는 사실이 아니라, 도심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강릉 KTX역 역시 당초 외곽 입지가 검토되었으나, 도심 시민들의 반발과 "역은 도심에 위치해야한다", "관광객 유입에는 접근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 속에 당초 계획과 달리 중심부로 입지가 변경되었다. 

그 결과, 강릉은 관광 수요와 소비 면에서 분명한 전환점을 맞았다.

상동 일대 지역 주민들이 제기했던 진동과 소음 우려도 더 이상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수서고속철도(SRT)는 대규모 아파트 밀집 지역을 통과하면서도 지하화 및 방진 설계를 통해 민원을 최소화했고, 강릉 KTX역도 주요 구간을 지하화하여 주민 불만 없이 관광 효과까지 잡아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재 철도 기술 수준이라면 거제도 충분히 같은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KTX 역사 입지는 이미 행정적 확정과 설계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이라 변경이 간단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강릉처럼 시민 의견과 설득력 있는 논거가 더해진다면, 늦지 않았다. 아직 착공 전이라는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도시 체질을 바꿀 전략적 재검토가 가능한 시기다. 

만약 입지 변경이 불가하다면, 사등역이 도심과 주요 관광지와 단절된 종착지로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순환 셔틀, 관광 트램, 스마트 환승센터 등을 도입해 관광 흐름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도록 보완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관광객을 단지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거제는 이제 조선업 도시를 넘어, 남해안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KTX는 거제의 중심을 통과해야 하며, 지금의 결정이 향후 50년의 도시 구조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시를 지나치게 할 것인가, 머무르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시점은, 거제가 진짜로 바뀔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