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치뤄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거제시를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환영하기 위해 한 호텔에서 내건 현수막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3시 50분,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가 방문한 거제시 옥포동 소재 애드미럴호텔 정문에 ‘김영삼 대통령 내외분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특히, 이 호텔은 대우조선해양(대표 정성립)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지난 8월 12일에도 YS가 묵었던 곳이다.

같은날, 열린 우리당 한 관계자는 “애드미럴호텔에 게시된 현수막을 보고 매우 당혹스러웠다”며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두 명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호텔 관계자를 찾아가서 항의를 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에 호텔 총지배인은 “상도동에서 요청해 현수막을 게시했다”며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걸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호텔측은 지난 8월 12일에도 똑같은 문구로 호텔 정문에 현수막을 게시한 적이 있다.

YS 측근 비서는 “현재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호텔에 게시된 현수막은 내가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직도 ‘YS는 대통령인가?’

이 사실이 거제지역 정가에 전해지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년 총선에 YS 차남 현철씨가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YS 방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대부분의 거제시민들 또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민 옥모씨(45, 자영업)는 “그 호텔에서 ‘김영삼 대통령 내외분’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봤다”며 “아무리 YS 고향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대통령은 하나뿐인데 호텔에서 그런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고 말하고 “아직도 거제도 사람들은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한, 한나라당 거제지구당 관계자는 “아무리 고향이라고 하지만 최근 행보가 의심스럽다”며 “전직 대통령인지 현직 대통령인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YS가 거제지역의 목사들을 불러 놓고 신앙간증회를 가졌다”며 “거제지역의 교회 목사들이 초청한 것이 아니라 상도동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이 신앙간증? 이해 안돼!’

11일 YS는 거제시 신현읍 소재 고현교회에서 나라사랑 구국기도회에 참석하여 신앙간증을 했다.

이날 참석한 신앙간증에 대해 고현교회 목사는 “시국기도회는 나라사랑기도회에서 주최한 것이며 장소만 빌려줬다”며 “YS 요청에 의해 기도회를 갖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목사들은 YS 신앙간증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YS의 신앙간증에 참석한 한 신도는 “나도 기독인이지만 너무 현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노골적으로 현정부만 비판하는 것은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앙간증에 나선 YS는 “무책임한 집권층과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몇몇 언론에 그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란 사람이 수시로 식언을 하고 천박한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있는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겠냐”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맹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YS는 “대통령이란 사람이 시급을 요하는 국정은 뒷전이고, 온통 내년 총선에 관심을 쏟고 있으니 나라꼴이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며 “취임 7개월만에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져 정권말기적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고 비난했다.

YS의 신앙간증 소식을 들은 이모씨(34, 회사원)는 “다른 나라의 전직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나 국가정책을 놓고 조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며 “아무리 종교적 신념도 중요하다지만, 신앙간증이랍시고 현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는 모습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더욱 부정적이게 만드는 행위다. 카터처럼 퇴임후 다양한 봉사 활동이라도 펼쳐줄 ‘전직 대통령’을 가진 미국이 이럴 땐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말 어이가 없다’

최근 YS의 방문을 두고 한 시민단체 간부는 “올해만 3번째 방문한 김영삼씨가 노골적으로 현철씨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아직도 대통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주변 측근들과 주로 귀빈이나 대우조선 외주 업체 사장들을 접대하는 호텔에서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현수막까지 내거는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비난했다.

현철씨 총선출마를 반대하는 거제시민연대회의 관계자는“거제도에만 오면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 같다”며 “국정환란과 대통령 아들 비리의 원조격인 YS가 참으로 한심스럽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 거제시의원은 “고향을 찾아오는 것은 좋지만, YS 방문 때마다 시민들은 교통대란을 겪어야 한다”며 “지난 8월 거제를 방문할 때도 대우와 삼성조선 직원들 퇴근시간과 맞물려 교통 체증을 빚기도 했다”며 “김혁규 도지사와 김한겸 시장을 비롯한 간부 공무원들은 YS의 수행비서로 착각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시민들, ‘이제는 자중하시오’

이러한 YS의 행보를 두고 지역 정가에서는 김기춘 국회의원(한나라당, 국회 법사위원장)과 김현철씨간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거제 시민들은 YS의 연속적인 거제 방문을 현철씨를 도우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또한 YS의 행동들이 차남 현철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이제는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철씨에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충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