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진중권님의 '서프라이즈'에 게재된 것입니다.  최근 노무현 정권과 개혁신당 등과 관련한 글이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재합니다.

노무현 역시 현실의 정치인이라는 것을 그 지지자들이 깨닫게 되는 기간을 나는 빠르면 1년, 늦으면 2년으로 잡았었다. 나름대로 노무현의 개혁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권력 잡은지 100일, 노무현 정권의 성적표는 한 마디로 가관이다. 아마도 그는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유권자들 뒤통수를 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의 변신은 전국민을, 말하자면 그의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놀라움은 그의 개혁성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에게는 처절한 경악이었겠지만, 그의 개혁성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즐거운 전율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전투(선거)에서는 졌지만 전쟁(전쟁)에서는 승리한 셈이 되었다.

노무현의 수구화

노무현은 무의미한 침략전쟁에 신속하게 파병을 결정했다. 그때 그는 이를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 변명했다. 그러더니 미국에 가서는 온갖 비굴한 어법으로 부시의 엉덩이나 핥다가 북에 대한 무력제재까지 용인하는 발언까지 하고 돌아왔다. 그걸로 보아 파병으로도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사지는 못한 모양이다. 말하자면 헛장사를 한 것이다.

현충일날 일본을 방문한 그를 일본의 고이즈미는 '유사법제'로 환영했다. 그의 방문 이전에는 창씨개명이 조선인이 원해서 취한 조치였다는 망언이 튀어나왔다. 이 모두가 노무현이 미국 가서 닭짓하는 것을 본 일본 우익들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사태다.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일본 애들이 저런 무례를 범하겠는가? 저런 무례를 당하고도 찍소리 못하고 '보아' 공연이나 보며 밥이나 먹는 게 노무현 외교다.

새만금 사업도 강행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일단 사업을 추진하며 용도 변경을 검토하겠다나? 그러니까 애초에 사업목적은 실종됐지만, 표 떨어질까봐 용도를 변경해서라도 생태계를 파괴하겠다는 거다. 맨날 불법파업(?)은 '엄단'한다고 엄포를 놓던 그도, 전북도지사가 삭발을 하고,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파업한다고 날뛰어도, 그거 '엄단'하겠다는 소리는 안 나온다.

한총련은 합법화시켜 줄 듯이 말하더니, 논의를 또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학생들이 식장에 못 들어가게 막고 항의 좀 했다고 징역 3년 짜리 법을 걸어 구속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다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는 망신을 당했다. 지난 5년 동안 최루탄 쏠 일이 없었는데, 노무현 정권의 경찰청장이 또 다시 '최루탄' 훈련을 하겠다고 망발을 하고 나선다.

무슨 개혁?

자, 보라. 이게 민주당 정권에서 할 일인가? 이게 노무현이 해야 할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거리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이나 할 법한 짓거리들이다. 적어도 민주당과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나라당과는 '차이'가 있다고 늘 주장해 왔다. 그런데 노무현이 한 짓을 보라. 자기들이 한나라당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던 그 짓을, 바로 노무현이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자. 도대체 당신들은 왜 노무현을 지지했던가?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노무현은 소신과 원칙을 가진 정치인이고, 미국과의 관계에 갈등을 도입하면서 햇볕정책을 밀고 나갈 사람이며, 환경을 보호할 사람이며, 한총련을 합법화할 사람이며, 검사와의 토론에서 보듯이 최루탄 없이 모든 갈등을 대화로 풀 사람이며, 깨끗한 돈으로 정치를 할 사람이다.

아직도 노무현을 지지할 이유가 남아 있는가?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제 겨우 100일 밖에 안 됐다. 지지를 철회하기에는 너무나 이르다." 도대체 저들은 노무현이 무슨 짓을 더 해야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 이것만으로도 이미 최악인데 어떻게 여기서 더 나빠질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저들은 과연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있기는 한 것일까? 솔직히 노무현이 뭔 짓을 해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건 아닐까?

물론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다. 다만, 이제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를 어떻게 댈 것일까? 과거에는 '개혁'을 위해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도 했다. 자, 노무현이 한다는 '개혁' 중에 지금 남은 게 뭔가? '개혁'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께 묻는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개혁'의 정체가 뭔가? 도대체 뭘 어떻게 더 개혁하겠다는 건가?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이 뭔가?

'개혁'이란 두 글자

민주당에서는 개혁신당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신주류의 얘기를 아무리 들어봐도 도대체 그 신당의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다. 구주류 몇 명(소위 살생부에 등재된 5인방) 잘라내고, 신주류가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 빼고는 아무 내용도 없다. 그게 새로운 당을 만들 근거가 되는가? 그리고 그 당에 '개혁신당'이라는 명칭을 붙일 이유가 되는가? 그게 그 잘난 '개혁'의 내용이란 말인가?

개혁당에서는 범개혁세력의 신당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개혁당은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 개혁당은 자기들이 무슨 민주당을 이끄는 아방가르드 부대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현실은 냉철하게 봐야 한다. 개혁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며, 민주당내 신주류의 외곽 별동대에 불과하다. 개혁당이 민주당을 이끄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개혁당을 이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 개혁당 지지자들에게 묻자. 당신들이 말하는 '개혁'이란 무엇이며, 저 거대한 민주당의 뱃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관철시킬 작정인가?

'개혁'이란 두 글자는 마법의 주문이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그 행태로 '개혁'이라는 말을 아무 내용 없는 빈말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개혁'이라는 말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어떤 공적 아젠다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영남으로 세를 확장하기 위한 수사법이며, 신주류의 당권장악을 위한 명분이며, 유시민이 의원 뱃지 달고 민주당에 합류하여 개혁당 대표로 당내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슬로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