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신문' 특약으로 남해지역의 보도연맹학살사건을 연재합니다. 이 글은 현재 남해신문사 대표이사로 있는 한관호님의 글입니다.

해마다 음력 6월 12일경이면 군내 100여 가구에서 ‘떼제사’를 모신다. 흔히 ‘복곡 학살’로 불리는 6.25를 전후해 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그러나 남북 정상이 금단의 땅 평양에서 악수를 나누는 이 시점에서도 유족들은 물론 관련자들도 50년 7월의 학살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누가 그들을 왜 죽였는지 이제는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죄도 없이 죽어 구천을 떠도는 이들의 혼을 달래고 자식과 부모를 잃고 비통함을 삼켜온 유족들의 50년 한을 풀어주는 길이다. 본보는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과 유족회 결성,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 이뤄져 피해자들이 비로소 역사와 화해하게 되길 바라며 5회에 걸쳐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보도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1950년 7월 중순, 남해군 설천면 문항마을 진섬(긴섬)에 시체 12구가 떠밀려왔다. 3-4명씩 팔이 앞으로 묶인 채 가슴에 총구멍이 세 개씩 난 시체들이었다. 
선창가 선술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박홍규씨(80)가 한달음에 설천파출소(소장 한익동)로 달려가 신고했다. 그런데 파출소에서는 “아무소리 말고 해안가에 묻어 버리라”고 했다. 그는 노인 10여명과 함께 사체를 진섬에 가매장했다. 박씨는 유족들이 찾아 올 것을 고려 해 종이에다 옷, 신발, 특징 등을 조목조목 기록했다. 사나흘 지나자 이동면 광두, 상주면 등지에서 유가족들이 찾아왔다. 그 뒤로도 창선, 사천 등지에서 시체가 떠올랐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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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직전의 민간아이가 공포에 떨고 있다. <사진제공 : '죽음 의 예비검속' 저자 이도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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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학살의 전모
살아 남은 김 아무개씨(65)가 보도연맹원들을 태우고 나간 선원에게서 들었다는 그날의 증언이다.   
6.25가 나자 파출소는 보도연맹원들을 소집한 후 남해경찰서로 끌고갔다. 읍면에서 끌려온 인원이 수백명이 넘자 남해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까지 쳤다. 사찰계장 이영식(사천출신)을 비롯해 경찰들의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다. 조사가 끝나자 등급이 매겨졌고 일부는 귀가 시키고 진주형무소, 또 일부는 경찰서에 남겨졌다.
밤이 되자 경찰서에 남겨졌던 수십명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앞 뒤 사람 허리를 나일론 줄로 묶고 양손을 결박당했다. 얼굴에 보자기가씌워져 선소 선창으로 끌려간 이들은 배에 실렸다. 배는 엔진 소리를 줄인 채 캄캄한 밤을 헤치며 강진만을 갈랐다. 속도를 줄이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공포에 떠는 보도연맹원들을 뱃전에 세운 학살자들은 그들을 바다속에 처넣었다. ‘탕 탕 탕’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다. 학살자들은 배를 선회하며 물위로 고개를 내미는 사람에게 조준사격을 가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재판도 없이 그들은 죽어갔다.

복곡, 33명 학살당하다
50년 음력 6월 12일경, 민간인 33명이 남해경찰서에서 트럭에 실려 이동면 신전리 복곡 골짜기로 끌려갔다. 얼마 후 총소리가 깊은 골을 울렸다. 손이 뒤로 돌려져 4-5명씩 나일론줄로 각목에 묶인 민간인들은 총알에 짓이겨진 시체로 발견됐다. 이마에, 가슴에 총알 4발씩이 뚫고 지나간 시체들은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유가족들의 통곡이 내내 복곡을 울렸다. 보리타작하다 바람쐬러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동생 재식씨를 찾아 나섰던 상주면 김재수씨(75)씨는 한참동안 시체더미를 뒤져서야 동생을 찾아냈다. 쌀 한 가마 가져다 달라는 사돈 부탁에 등짐 한번 졌던 상주면 김아무개씨도 그렇게 죽었다. 

보도연맹 관련 100여명 학살
강진만 수장과 복곡 학살만이 아니었다. 진주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500여명이 진주 명석면 신촌마을에서 집단학살 당했다. 남해경찰서에서 진주교도소로 끌려간 수십명도 그때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사체를 찾지 못한 유가족, 아직까지 사망처리도 되지 않는 행불자 상당수가 학살됐을 것으로 보여 보도연맹과 관련해 학살당한 이는 남해에서만 최소 1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아버지와 아들을 무참히 학살당하고도 빨갱이 가족으로 취급당할 까봐 억울하다는 말도 못하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온 유가족들,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