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오늘에서 퍼 온 글]2010년 02월 09일 (화) 13:02:33 이재현(문화평론가)
경인년 새해는 백 호랑이의 해다. 경(庚)은 백색에 해당하고, 인(寅)은 호랑이띠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60갑자의 특성상 백호의 해는 60년에 한번 온다.

호랑이는 일찍부터 웅녀 신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웅녀 신화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곰 토템 부족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서로 정치적으로 결합했다는 것으로 오늘날 해석되고 있다.

우리 민속 설화에서 호랑이는 때로는 위험하지만 반면에 은혜를 갚을 줄도 아는 짐승으로 나타난다. 곶감보다도 덜 무서운 존재인 호랑이는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산신령의 말도 잘 알아듣는다.

사악함을 물리칠 수 있는 영특한 존재인 호랑이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전통 민속 그림에서도 호랑이는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 전통 민화 <까치와 호랑이>. 무섭기는커녕 익살스럽고 귀엽기가 그지없다.

▲ 이만익 화백의 그림. 전통 민화에서 모티브와 소재를 가져 왔지만, 윤곽선과 색을 아주 모던하게 처리했다.

각각의 다른 띠 동물들도 백색을 띨 수 있고, 청색이나 흑색 등의 호랑이 해도 있는데, 왜 굳이 백호의 해에다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여기서, 쉽게 떠오르는 것은 백호가 사신(四神)의 하나라는 점이다.

사신이란 동 청룡, 남 주작, 서 백호, 북 현무를 말한다. 사신은 고대 중국의 천문학에서 하늘의 네 방위를 지키는 영험한 동물이었고 28개의 중요한 별을 나누어 맡고 있었다.

고구려 고분에 많이 그려져 있는 사신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무덤의 오른쪽이나 서쪽 벽의 백호는 죽은 이의 시신 및 영혼, 그리고 갖가지 귀한 순장품을 지켜내는 상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복원한 <강서대묘>의 사신도. 백호가 용을 닮은 게 특이하다.

간지는, 갑골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대 중국 상 나라에서 달력에 날짜를 기록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12지에 띠 동물을 연결시키는 발상법은 이미 중국 전국 시대 무렵부터 사람들 머리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더 훗날에 가서는 쥐가 소의 등에 붙어 있다가 결승점에서 먼저 뛰어내려서 1등 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역사상, 간지에 의한 기년법이 최초로 명확한 연대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은 사마천에 의해서다. <사기> 연표는 기원전 841년 경신(庚申)년으로 시작하는데, ‘공화(共和) 원년’이라는 타이틀을 옆에 달고 있다.

당시 주 나라 왕이 전횡과 폭정을 일삼다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군주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소공과 주공이 함께 통치를 담당했다는 의미에서, 혹은 다르게는, 공이라는 나라의 백작인 화라는 인물이 통치를 했다는 의미에서 공화라는 말이 쓰였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서학동점(西學東漸)의 시기에 유럽의 republic이란 용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번역자는 사마천이 기록한 주나라 고사에서 공화라는 말을 따와서 역어로 사용했다.

republic의 어원은 라틴어 ‘res publica(공공의 것)’다. 공화국이란 말은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평민 전체의 공동 소유물이란 취지에서 생겨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은 군주국의 반대를 뜻하는 것이니,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함축된 ‘共和’는 상당히 좋은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 민속작품. 호랑이를 타고 입산하는 산신령. 이 산신령은 중국 한나라 말에 오두미교를 창시한 도사 장릉이다.

2008년도는 두 가지 재앙이 벌어지기 시작한 해다. 나라 밖에서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돈 장난으로 인해서 벌어진 금융 위기가 지구를 휩쓸었고, 안에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지만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국민의 입에 재갈을 씌우는 정권이 출범했다. 이 두 재앙은 아직 계속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2008년 무자(戊子)년은 쥐의 해였다.

하지만, 전횡과 폭정을 일삼는 특정 정치인을 주로 그 외모에 주목해서 쥐로 몰아붙이면서 놀려대는 것은 정작 당사자인 쥐의 입장에서는 아주 억울하고 황당하고 불쾌하고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간을 위해서 실험실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적지 않은 쥐들의 경우에는 그 명예가 아주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셈이다.

<주역>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고”라는 멋진 구절이 있다. 새해에는 모든 국민이 날래고 용맹스러운 백호가 되어서 바람을 일으켜 보자. 소위 4대강 삽질 사업이 초래할 재앙으로부터 국토를 지켜내자. 우리 모두 벽사(辟邪)의 호랑이가 되어서, 사악한 공공의 적으로부터 우리의 공화국을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