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윤지영씨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인가. 여기저기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막둥이가 학교에서 발가락 골절을 당해 입원치료를 끝낸 며칠 뒤, 가장의 허리에서 SOS가 울렸다. 이태 전에 앓았던 디스크가 재발한 것이다.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되고 보니, 꼼짝없이 안방에 누워 자잘한 것까지 협조를 구한다. 나는 상대적 우월감에 느껴 장정의 활동을 묶어놓은 그 부실한 척추를 향해 확실한 노화현상이라고 판단을 했다. 그런데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었다.

손빨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뒷등어깨 부근에서‘뜨끔’하는 징후와 동시에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 것이다. 아직 멀쩡하다고 믿었던 나의 육신에 배신당한 기분도 참담했지만 그 쑤시고 저린 감각은 신경성 두통보다 더한 아픔이었다.

한의사의 지시대로 배를 깔고 누웠다. 동통 발생 주변에 물리치료기가 붙여진다. 전기의 힘을 받은 그것이 심하게 요동친다. 그 바람에 일제히 일어난 전신의 세포들이 내 습관성 불량 자세를 하나하나 불러내어 태질을 한다. 온 몸으로 방산되는 떨림 현상,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생체의 통곡이었다. 끝날 때까지 잠을 자는 게 상책일 것 같아 돌침대의 따스한 촉감에다 가슴팍을 바짝 붙였다. 하지만 옆 칸 환자의 손전화기 애용으로 그것도 틀렸다.

걸걸한 여성(女聲)의 잡담이 소책자 한권쯤의 분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무차별 공격성 수다로 인해 잠은커녕 심적인 불안감이 몰려오는 판이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귀에 잡히는 내용이 들렸다. ‘뭐시라, 총리가 사표 냈다꼬. 아이구 시원하다.’ 순간 나는 스트레스와 졸음 그리고 문제의 통증이 한방에 날아가는 느낌을 경험했다.

치료 후 주의사항을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의 책상위에 인체골격이 세워져 있었다. 몸통의 뼈대는 크게 머리뼈 ․ 척주 ․ 가슴우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것들은 뇌· 척수· 그 외의 중요한 장기들을 보호한다. 이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나는 새삼 등뼈 부분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회찬 총리’, 그는 대중적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나라의 척추격인 자리에 앉은 다음에도 경조부박(輕躁浮薄)하여 늘 국민으로부터 반감을 사곤 했다. 등심대가 시원찮으면 모든 내장이 위험에 노출되며 질병을 초래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특히 중요하다. 장기를 보호할 책임과 칼슘· 인 등의 미네랄을 저장하는 창고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반 특유의 차가운 인상을 보면, 왠지 나라의 질병 예방과 국민의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밤낮으로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월급만큼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사적인 일을 여론도 무시하면서까지 과감하게 밀어 붙이는 카리스마가 돋보일 뿐이었다. 뼈와 살이 분리되어도 건강에는 이상 없다‘배째라 식 ’언행, 그럴 적마다 이 국민은 무시당한 느낌이 들곤 했던 것이다.

‘왕의 남자’인 광대‘공길’이도 이런 대사를 했다.‘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할 때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겠느냐?’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명심해야 할 진리이다.

맞으면 몹시 아픈 골프공으로 국민의 뒷등을 치는 고위공직자는 없어야 한다. 이제 국가의 안위를 위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봉사하겠다는, 그런 인품과 겸손을 갖춘 분이 총리가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차츰 회복 되어가는 나의‘오십견’처럼, 이 나라의 등뼈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