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김없이 한국전쟁 53주년, 아닌 정전(停戰)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도 잠시 남북은 타의에 의해 갈라져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미소 양국의 야욕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아픔을 겪어야 했다.
한국전쟁은 국지적(局地的) 양상에서 세계적 전쟁으로 이어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또한 이 전쟁은 수백만명의 민간인 희생자와 17만이 넘는 포로들과 수백만명의 피난민을 낳게 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친미파 이승만은 '북침' 야욕을 뿌리치지 못해 온 국민을 동원해 '북침'을 설득했다. 전쟁광 맥아더는 냉전국인 소련과 중국을 위협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욕심도 부렸다가 막강한 태평양사령관 자리에 내려와야 했다.
과연,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정전 5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반공(反共)'의 쇠사슬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우익단체들은 "무슨 평화협정이냐", "무조건 북에게 물량 공세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햇볕정책을 유지하자", "이제 반공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노무현 정부가 이어가고 있는가'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이러한 선상에서 우리는 '반공주의'에 머물려야 할지 아니면, 남북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평화협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서 거제에서 발생한 두 가지의 사건을 살펴보면서 정전50주년을 다시 생각해 보자.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거제는 어떤 모습이었나?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건이나 '그냥 묻어 두고 싶은 사건, 바로 보도연맹 학살사건이다.
1950년 7월 25일, 지심도 넘어 한바다에서 보도연맹원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 그리고 우익단체에 의해 무참하게 수장(水葬)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720명이다. 또한 각 지역별로 산발적으로 자행된 희생자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당시 군경, 그리고 정부는 '거제도 주민들은 80% 빨갱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무자비하게 민간인을 희생시켰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전쟁 직후 후방에 있는 '좌익혐의자' 혹은 '좌익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며 무조건 학살시켰다.
거제의 어느 마을에도 '보도연맹원' 혹은 '빨갱이'로 지목되어 희생된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죽어간 사람들은 좌우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반공'이란 이름으로 남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생명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거제에선 이전에만 해도 시민운동 하는 이들에게 '빨갱이'로 몰아 세우기도 했다. 지금도 시민운동이나 진보정당운동하는 이들에게 '반공'이라는 잣대로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그것은 국가이데올로기의 횡포에 길들여진 결과라고 하겠다.

"전쟁포로에게 인권은 없었다"   
거제도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단연 거제도포로수용소이다. 1951년 1월부터 거제에는 17만명에 이르는 전쟁포로를 수용하게 되었다. 지역은 고현, 수월, 남부면 저구리, 용초도(현 통영시) 등지이다. 여기에 수용된 포로들은 인민군, 중공 인민의용군, 민간억류자 등으로 이념적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최근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민정관인 알렌 워싱턴의 회고록을 보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었다. 남북의 전쟁은 두 민족만의 아픔이 아니었다"며, "미국은 전쟁을 이용하여 제국주의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잔혹한 학살극"이라고 말했다(원제 알렌 외 1명, 『KOJE』, 1954, 영국).
이 책은 76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 사건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1952년 10월 10일 미군은 76년 수용소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탱크, 기관총, 화염방사기 등을 사용해 '무자비하게 포로들을 학살'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군은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고 인민군 포로들의 인권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인민군 포로 3,000여명이 학살되었다"며, "이 학살의 주범은 미군임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포로간의 학살보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포로학살이 더욱 위험하고 잔혹했다"라고 폭로하고 있다.
그는 "포로에게 인권은 없었다"라고 마지막으로 맺고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평화의 공원으로
지금까지 거제도포로수용소는 '반공'교육장 혹은 '북한의 잔혹한 전쟁 체험'관으로 불러지고 있었다.
작년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개막식 때 모습을 떠올려 본다. 전 국회의원이 낭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축사는 '반공주의'로 회귀하는 말에서 시작과 끝을 맺었다. 또한 백선엽씨는 "북한에게 무조건 퍼다주면 우리는 또 전쟁을 맞게 된다"고 말해 즐거운 개막식장은 순간 전운(戰運?)이 감돌았다.
지금, 거제포로수용소 공원 옆 옛 유적지에 있는 안내 표지판에는 "북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또한 유적관 곳곳에는 포로들의 '폭동'만을 부각시켜 놓고 살벌한 무기들을 전시해 놓아 '전쟁기념관'을 방불케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전쟁기념관'으로 만들기보다 '평화공원'으로 '억울하게 죽은 포로들을 위한 공간'이길 바란다.

다시, 찾아온 정전 50주년을 맞아 우리는 '반공'의 사슬에서 얼마나 벗어나는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은 '붉은 악마'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때 온 거리마다 붉은 옷들과 수건 등으로 물결쳤다.
우리는 53년 동안 '레드 컴프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는 국시가 '반공'도 아니오, 더욱이 '전쟁'을 찬성하지 않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 '반공'의 옛 유물을 벗어 던지는 날, 참다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