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지영씨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다.' 남이 앞서가는 것을 못 보는 이런 심보는 우리의 전통적인 놀이 문화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윷놀이만 해도 그렇다. 윷을 던져 그 숫자만큼 말을 진전시키는 이 놀이의 묘미를 사람들은 던지는 윷 보다는 말판에다 중점을 둔다. 자신의 것이 남의 말을 잡아먹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네거티브 방법을 쓰는 것이다.

고스톱도 마찬가지. 보기에는 성실하게 자신의 패를 모아서 점수를 내는 놀이처럼 보이는 이것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게 아니다. 누가 청단을 하려고 시도하면 즉시 다른 사람들은 이를 방해하는 것을 최우선의 전략으로 설정한다. 물론 경쟁 게임이라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서양 놀이인 포커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것은 자신의 패를 받아서 전략을 정한다. 이때 다른 사람의 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러니까 서양인들의 습성은 이 놀이처럼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다는 것이다.

방송국에서 대선 후보들을 티이브이 속에 앉혔다. 미리 정해진 주제가 있고, 그 범위 내에서 후보 개인이 평소에 품고 있는 공략 ․ 정책 등을 밝히면 민심이 그걸 잘 판단하여 한 사람을 지지하라는 의도이다. 이번 17대 선거는 후보들 중 제일 여론 조사 지지율이 높은 이가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타당 후보들로부터 집중 공략을 당한다. 그 중에서 여권의 한 후보는 아예 작정을 하고 나왔다는 듯 모두(冒頭)부터 국민들을 보아야 할 시선을 획 거두어 그 후보 쪽을 똑 바로 쏘아보며 그 '과거 문제'를 살모사처럼 물고 늘어진다.

당하는 사람 쪽에서 털릴 먼지가 많다는 건 국민들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구린 구석은 검찰이 곧 밝혀낼 것이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역사도 준엄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금쪽같은 그 시간에 국민 앞에서 정책 토론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국민에게 자신의 공략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들이 논을 사면 ‘장하다 내 새끼’가 되고 사촌이 논을 사면 '불법으로 샀을 것’이라고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우리의 국민성이 선거철만 되면 더욱 도드라진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어찌 형제간에 믿음이 있겠으며 동료와 친구끼리 의심하지 않겠으며, 이웃과 이웃이 반목하지 않겠는가. 나라가 풍전등화 꼴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다.

이맘때쯤이면 회사이든 관공서든 인사이동이 이루어진다. 어떤 일의 성과가 빛나 보이면 그 사람에게 기쁨과 축하는커녕 그 성공을 비웃고 깎아내리고 인정해 주지 않으려 하고, 겉으로는 친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가 실패하기를 기다리는 심리, 서로에게 좋지 못한 결과만 가져오는 이런 부정적인 습성보다 긍정적인 가치관을 키우기 위해 우선 윷놀이부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밀어주기 윷놀이'. 이것은 기존의 윷놀이와 기본적으로 같지만, 그러나 두 가지의 변형을 가한다. 첫째는 나의 말이 상대방의 말을 덮쳐도 말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간 만큼 상대방의 말을 밀어준다. 예를 들어서, 내가󰡐개󰡑가 나와서 상대방을 덮쳤으면, 나는 그곳에 멈추고 상대방을 두 칸 앞으로 가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기존의 방식대로 말을 한 번 더 던져서 나온 만큼 앞으로 간다. 남에게 태클을 걸지 않는 이 방법에서 상부상조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타인을 실컷 깎아내린 입은 정면으로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국민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과연 그가 대통령감이라고 아니, 그가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믿고 찍은 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