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안긴 것일까 바다에 빠진 걸까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와 율천리, 연초면 명동리에 걸쳐 있는 대금산은 거제도의 5대 주산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 쇠(金)를 생산했던 곳이라 일러 大金山으로 부르다 조선시대에 들어 빛깔이 수려하고 비단 같은 풀이 온 산을 뒤덮었다 하여 비단 금(錦)자를 써 오늘의 大錦山으로 부르고 있다.

대금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해발 437.5m에 불과하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잘생긴 여인이 아기를 품은 듯한 이 산은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불태운다. 올해는 지난해 태풍 매미로 인해 진달래가 꽃을 피우지 못해 진달래 축제가 취소됐다. 별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르면 멀리 부산과 마산, 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금산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산과 창원에서 국도 14호선을 따라 고성을 지나 통영을 거쳐 신거제대교를 거쳐 거제시청이 있는 신현읍까지 찾아가면 된다. 신현읍에서 거제시청 방면으로 들어가지 말고 곧장 연초삼거리까지 가서 장목·하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서 1018번 도로를 따라 5분여 더 가면 하청면 못 미쳐 덕치리가 나온다. 여기서 거제 시민들의 상수원인 연초댐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10분 남짓 달리면 대금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명동마을이 나온다.

명동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정골재와 약수터,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지만 평일에는 임도를 따라 약수터 입구까지 차를 몰아 오르면 정상까지는 불과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명동마을에서 시작된 산행은 의외로 수월했다. 평일인 탓에 산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진 거제도답게 이름 모를 나비며 새들이 분주히 날아다녔다.

도시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제비 한 쌍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느라 다니는 모습이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얼마쯤 올랐을까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으나 시원한 해풍이 이내 땀을 식혀주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대밭이 군데 군데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밭에 들어가 죽순을 찾았으나 죽순은 이미 커다랗게 자라있었다. 거제에는 유난히 대밭이 많다. 거제에서 생산되는 맹종죽순은 그 맛과 향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하늘을 찌를 듯 자라있는 대밭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바람 따라 춤추는 대나무 잎 소리가 정다웠다. 진달래 군락지 못미쳐 왼편에 자리잡은 약수터는 아래 명동마을의 식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어 함석판으로 가려져 수도꼭지를 틀어야 물맛을 볼 수 있다. 약수터 오리목 나무 군락지 밑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마치 비단처럼 펼쳐져 들어가 눕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포근해 보였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정상 아래 진달래 군락지는 어른 키보다 더 큰 진달래가 연초록색 물결을 이루었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볼 수 없어 좀 아쉬웠지만 군락지 규모만으로도 대강 그 화려함이 짐작되고도 남을 만 했다. 진달래 군락지에서 정상 오른편에 있는 바위봉우리를 쳐다보면 무슨 동물 한 마리가 누워있는 형국이다.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바짝 다가오자 이번 산행은 의외로 쉽게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남짓 등산로를 따라 도착한 정상은 생각보다 단순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상에서 펼쳐지는 남해의 비경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고기잡이와 양식업, 그리고 밭농사를 짓는 이수도가 코 앞에 있고 멀리 조선소 앞 바다에는 국력의 상징처럼 커다란 배들이 정박해 마치 섬처럼 보였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마산의 아파트 숲이 아련히 모습을 드러내고 진해와 부산도 또렷이 보였다. 이름 모를 섬들이 점처럼 떠 있는 남해의 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해안 절벽에는 흰색의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수도 뒤편 세 개의 섬은 마치 열병이라도 하듯 나란히 떠있어 순간 삼형제 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낸 뒤 바다를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정상 오른편에 자리한 시루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루봉에서 바라보는 조그마한 어촌에는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분주했다. 명동마을에서 시작된 산행은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산을 내려와 다시 차를 몰고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장승포 방면으로 가다가 능포마을에 도착했다.

여행의 즐거움을 두 배로 느끼게 해준다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마침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배도 출출하고 해서 횟집을 찾았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듯 생선회 한 접시에 바다 바람,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회와 함께 나오는 야채는 텃밭에서 직접 키운 것이라 고소하고 싱싱했다.

산행과 식사를 마친 뒤 시간이 하락하면 인근에 위치한 해수욕장을 둘러보는 것도 추억 만들기에 좋을 듯하다. 아직 철은 이르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해수욕장 해변을 걸어보자. 장목에는 고운 모래로 유명한 흥남 해수욕장을 비롯해 황포 해수욕장, 거제에서 가장 긴 몽돌 해변을 자랑하는 농소 몽돌 해수욕장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임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