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익 이념의 극한 대결로 몇 천명의 목숨이 스러져 간 거제포로수용소에 50여년 만에 민족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화합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23일 낮 12시.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관 앞 유적공원에서 열린 ‘생명평화 민족화해 거제도 위령제’엔 거제포로수용소가 패쇄된 1953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용사와 한국전쟁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 등 300여명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숨져간 무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인 이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데는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17만여명의 포로들이 좌·우로 갈라져 밤낮으로 죽이고 싸워 최소 2000여명이 바다에 수장되거나 땅에 매장되고 700여명의 민간인들이 좌익으로 몰려 유명을 달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군인·피학살자 유족등
가해·피해자쪽 한자리
20살 때인 1952년 거제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는 진장순(72)씨는 “유엔군의 방조 속에 좌·우익 포로들의 주검은 주로 기름 드럼통에 넣어 바다에 몰래 버리거나 땅에 구덩이를 파 묻었다”며, “신원을 알 수 없는 포로들을 포함하면 실제 숨진 포로들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포로수용소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하나로 묶어 세운 것은 생명과 평화를 소중히 하는 상생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 3월 1일부터 지리산 노고단을 시작으로 전국 일주에 나선 지리산 실상사 전 주지 도법 스님과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 이원규·박남준 시인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이다.

도법 스님은 “거제포로수용소는 피의 악순환이 함축된 현장”이라며, “50년 넘게 계속된 증오의 대상을 잊고 평화의 길을 새로 열어나가자는 다짐을 하기 위해 좌·우 이념을 떠나 억울하게 숨진 원혼들을 달래는 위령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만성(54) 재향군인회 거제시지부 회장은 추도사에서 “남과 북의 위정자들이 거제포로수용소 문제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이제서야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며, “이 곳 참석자들이 민족화해의 새로운 길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서철안 한국전쟁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회장은 “한반도 남쪽 아름다운 섬이 미·소 논리에 의해 친공·반공으로 나눠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수장되었다”며, “피학살자와 가해자가 진정으로 화해하기 위해선 민간인 희생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거제지역 각 종교 대표자와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했다. 다대교회 김수경 목사 등 5개 종교 대표들은 숨진 원혼들의 명복을 빌고 민족화해를 염원하는 의례를 각각 올렸다.

이원규 시인은 “한국 이념 갈등의 축소판인 거제도 위령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물론 범 종교계가 모두 만나 비로소 민족화해의 첫 단추를 끼게 됐다”며, “이런 상생의 정신이 한반도로 퍼저 나가 평화통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한겨레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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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민간인학살 희생자 위령제
 
생명평화탁발순례거제추진위는 23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생명평화 민족화해 거제합동위령제’를 갖는다.

이번 위령제는 지난 49년과 50년 거제지역의 야산대 소탕명분으로 희생된 민간인과 한국전쟁 발발 후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유족이 함께 마련했다.

행사는 이날 낮 12시에 이원규 시인의 위령제문 낭독, 군경유가족회 김만성 회장, 민간인유가족회 서철안 회장의 추도사, 각 교별로 다대교회 김수영 목사, 천주교 고현성당 루드빅 신부, 조계종 금강사 성원 스님, 대한성공회 신현교회 도미닉 신부, 원불교 신현교당 구경전 교무가 위령의례를 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