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거제대학 교수 늘푸른거제21시민위원장) 
 문(文)은 약(弱)하다. ‘문약’이란 말이 있다. 이 형용사는 글만 받들고 실천과는 거리가 먼 나약함을 의미한다. 또 상무(尙武)의 정신 없이 글만 숭상하여 나약한 상황에 사용된다. 나아가 그러한 선비와 학자를 지적한 말일게다.

80년대부터 중국은 우리역사, 특히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왜곡을 시작하였다. ‘왜, 중국이 고구려사를 비롯한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으며, 역사왜곡 전쟁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서의 패배는 우리 미래에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등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역사학자의 맹목적 정책추종 내지는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려는 것에는 비애와 동정을 지니며, 그들의 문약함을 지적한다.

‘고구려사 왜곡’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6월 중국의 〈광명일보〉 역사면에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고구려, 고조선, 부여, 발해는 물론 현재의 우리나라까지 연구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추진계획이 실렸다. 여기서의 ‘동북공정’이란 중국동북 국경지역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결국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국경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역사화하려는 것으로, 국경이 시대적 패권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던 과거의 특징을 미루어 보면 이해의 여지가 없는 바도 아니다.

역사왜곡 앞장에 비애와 동정

그러나 이 사태에 대한 우리 전문가들의 지적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첫째, 현재의 중국이 차지하는 국제적 위상을 통해 향후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쟁취하려는 것과 둘째, 통일 이후 한반도의 국경대치 상황을 보다 유리하게 선점하려 한다는 의도이다.

가까운 미래에 동북아의 중심패권은 중요한 국제적 사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오만과 기만이 정책적 선점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판단된 그들은 동북공정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독도문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분석한 결과 찾아낸 묘수일 수도 있다. 아무튼 중국정부는 이러한 정책방향을 합리화시킬 연구기관으로 ‘사회과학원’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1000여 편이 넘는 고구려, 부여 및 발해와 관련한 주제의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게 하였다. 최근에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유네스코 등재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는 북한의 폐쇄에 따라 고구려역사를 중국을 통해 접근하였고, 이들의 협조와 노력 저변에 자리한 지금의 의도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고구려사가 어느 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역사로 왜곡되고, 우리의 항의에 급기야 삼국사 전체를 제외하는 교만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우리의 대응이 구체화되었다. ‘중국의 역사왜곡 대책 민족연대 추진운동본부’는 서울 종로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고구려 역사 침탈 철회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결의문을 중국대사관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더불어 우리 정부는 강력대응을 결정하고 해결을 위한 정치적 협상을 시도하였다.

잘못된 정부정책 수행 말아야

며칠 전 이 문제로 방한한 중국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에게 우리의 차관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수습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장시간의 마라톤협상을 가졌다. 이를 통해 중국정부는 기존의 왜곡조치를 시정하고 교과서와 출판물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하지 않겠다는 등 5개의 기본사항을 구두양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협의내용을 문서화하지 않았거나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원상복구를 약속 받지 못한 것, 특히 정치적으로 완결을 보지 않은 채 학술적 차원으로 교류를 통해 풀어간다는 협의결과는 여전히 어려움을 남긴 미완의 결과이다. 이제 동북공정을 수행한 학자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에서 더더욱 그들의 논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변방의 역사가 아니다. 단군이래 우리 역사의 중심이다. 이를 중국학자들이 모를 리 없다. 고구려는 우리의 자존심이며 동시에 중국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독창적 제국이다. 우리는 지난 비민주화 시대를 통해 학자의 문약함이 얼마나 큰 해악으로 작용하였는가를 직시했다. 그런 까닭에 이 같은 학자의 태도를 오히려 동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감상은 타국의 정체성과 이민족의 정기를 손상시키려는 것에 이르러서는 성토의 심정만 남긴다. 잘못된 정부 정책을 단순히 수행하는 학자, 양식도 진실도 결여된 학자, 자신의 연구력을 사실 왜곡에 쏟아내는 그들을 우리사회는 경계한다.

다시 역사를 통해 강인한 결단과 불굴의지를 남긴 학자들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남아있을 문약한 학자를 철저히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