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부산민예총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함께하는 예술인'(2004, 겨울호)에 게재된 "경남.부산 친일예술인연구" 내용입니다. 5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끝내면서 대한제국을 국권침탈하여 식민지로, 1931년 9월 만주침략으로 괴뢰 만주국을 세웠으며,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조선의 민중들을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증산보국(增産報國)의 노예’로 만들었고,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에 노인부터 어린 아이까지 동원시키는 광기를 부리며 전시동원체제를 만들었다.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행위들을 통해 각 분야의 일부 조선 인사들은 저항과 투쟁의 모습을 보이기보다 친일행위로의 투항전선에 나섰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다수 조선인들은 일제의 사상보국단체와 전시체제 기구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친일의 ‘광기’에 휩싸인 글과 그림, 음악을 발표하였다.

1937년 이후 다수의 예술인들은 ‘내선일체(內鮮一體)’와 ‘고도국방체제(高度國防體制)’ 확립이라는 구호아래 전쟁을 선동하거나 지원병 보내기 등을 통해 ‘전선에서 싸워라’고 외치면서 ‘문화보국’의 나팔수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을 맞으면서 이승만 친일․친미정권에, 박정희 독재정권에 ‘기생’하다가 반성과 참회도 없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작품들은 위대한 명품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심지어 자랑스럽게 읽히고 불려지고 보여지고 있다. 

이처럼 1937년에서 1945년까지 일제의 전시체제 아래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전쟁의 도구로, 식민지 체제의 지배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청산은 반민특위 와해와 친일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또한 지금까지 친일청산과 관련하여 정치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친일연구가 임종국의 피나는 노력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끊임없는 연구로 통해 친일문화예술가들을 조명해 왔으나, 이제까지 연구는 중앙단체나 개별 작가의 활동 정도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글은 경남․부산에서 활동한 친일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기존의 연구 성과물과 새로운 사실을 중심으로 친일단체와 개인별 행위 등을 재조명하고자 씌어졌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쓰여졌다.

첫째, 친일문화예술단체의 활동과 주요 간부들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하였다. 친일문화예술단체에 있어서는  중앙단위와 지방단위로 구분하고 문학, 미술, 음악, 연극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나머지 영화, 무용 등은 기타로 묶어서 정리하였다.  둘째, 친일문화예술인의 활동은 친일단체 활동과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경남․부산의 출신자와 다른 지역의 출신자 중 직접 현지에서 활동한 자를 포함하여 기술하고, 각 분야별 친일예술가들에 대한 약력과 활동을 기술하는 순으로 정리하였다.

경남부산 친일문학단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문학가들을 동원하여 ‘전시체제’ 도구로 이용하였고 문학가들은 이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친일문학단체들의 활동과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고, 경남․부산 지역의 단체들도 함께 살펴보자.

일제 전시체제 하의 대표적 문학단체로는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 문화부(선전부), 조선문인보국회 등이 있다.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는 식민지 조선의 최대 문인조직으로 ‘국민정신총동원(國民精神總動員)의 취지’를 달성하고자 설립된 단체다. 1939년 10월 29일 창립된 협회는 “새로운 국민문학의 건설과 내선일체의 구현에 있다. 반도문단의 새로운 건설은 내선일체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이광수의 취임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처럼 식민주의와 파시즘을 그 성격으로 하고 있다.

‘황국(皇國)’과 황국신민으로서 문장보국에 참여한 협회 회원들은 이광수(회장, 香山光郞), 정인섭(東原寅燮).김동환(東文仁).주요한(村松紘一).이기영.박영희(芳村香道).김문집(大江龍之介, 이상 간사) 등이다.

1942년 9월 조직개편에 따라 간사장에 박영희(芳村香道), 평론부 정인섭(東原寅燮).백철(白矢世哲).최재서(石田耕造), 소설희곡부회 유치진.이무영.유진오 등이 맡았다.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은 1940년 10월 16일 식민지 조선에서 전시체제를 한층 엄격한 ‘결전체제’로 끌어올리기 위한 핵심 단체로서 ‘고도국방국가의 건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였다. 총력연맹은 사상통일을 위해 일본정신 앙양과 내선일체 완성을 완수하고, 생활 신체제를 확립하여 생산력을 확충해 전시경제체제를 구축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한다는 데 근본목적을 두고 있었다. 

총력연맹 조직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한 지도위원회를 두고 중앙과 지방 조직으로 각각 나누어 부․군․도(島)․읍(邑)․면(面)에는 연맹이사장을 두고, 리.정.부락 단위로 애국반(愛國班)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또한 총력연맹에는 문학.음악.미술 등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부문조직도 함께 만들어 ‘전쟁 완수’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특히 총력연맹 사무국에는 1940년 12월 27일 문화부를 신설하고 2년 뒤 11월 선전부로 바뀌었고 그 다음해인 1943년 11월 홍보과와 문화과를 각각 두었다. 총력연맹 문화부는 일제의 총동원 체제에 문화인을 동원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이었다.

 문화부의 지도방침은 “고도국방체제의 완수를 목표로 국민문화를 종합적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사상 보급, 국민교화 철저, 예술오락 정화, 출판문화 쇄신, 생활문화 질실, 실천요강 구현”을 하고자 했다.

1943년 선전부는 선전.편집.문화과로 나누어 황도문화 지도진흥과 각종 문화기구 정비강화에 나섰다. 이 조직은 부.군.도(島).읍.면연맹에도 선전부를 설치해 국민총력운동의 취지를 선동하고 다녔다. 경남.부산의 조선문인보국회 정회원들은 연맹 선전부에  참여하여 일제의 전시 동원체제에 협조하였다.

“국민의 육해황군(陸海皇軍)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가운데서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 수행되면서부터 매일 시시각각으로 전과(戰果)의 절대적(絶對的)인 승리가 1억 국민의 가슴에 엄숙한 감격의 파문을 던지고 있는 오늘, 아세아 부흥에 관한 사견(私見)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조연현,『東洋之光』1942년 6월호)

위 글은 경남 함안 출신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조연현이 태평양전쟁을 보고 ‘감격’하여 쓴 글이다. 이처럼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들은 ‘국민(황국신민)’으로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동참하였다.  일제는 문인들에게 억압적 통제를 하기보다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조선문인보국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는 1943년 4월 17일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결성되었다. 이 조직에 참여한 경남.부산의 인물 가운데 거제출신의 유치진은 조선문인보국회에 대해 “조선에 있어서의 문학자의 총력을 대동아전쟁의 목적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조직된 단체다”라고 천명하였다.

보국회는 “대동아 전쟁 결전 단계에 있어서 바야흐로 치열한 사상문화전의 전개를 보려는 금일 전 조선의 문학자 일동 일신을 정하여 강고한 단결하 일체의 미영적 공리문학을 격양하여 조선에 세계 최고의 황도문학을 수립하고자 싸우는 문학자로서의 굳은 결의를 표명하여 성은에 봉답해 받들 것을 맹세함”이라는 선언서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식민주의와 파시즘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문학인들의 단체로 탈바꿈하였다.

경남.부산 출신의 문인들은 정인섭(東原寅燮, 조선문인협회, 총력연맹 문화부)과 유치진(이사, 소설희곡부 회장, 1944년 극문학부 회장) 등이다. 특히 유진오, 김동환, 박영희  등이 경남.부산지역에서 문장보국 강연회 등을 펼치기도 하였다. 1941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부산, 마산, 진주 등지에서 ‘문예보국강연회(文藝報國講演會)’를 개최하고 강연자로 유진오(兪鎭午), 박영희(芳村査道), 김동환(金東煥, 白山靑樹),  정인섭(鄭寅燮, 東原寅燮), 백뇌천?(白瀨千?, 가수)등이 참여하였다.

또한 부산지역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지역예술대회를 개최하여 ‘황도정신’과 ‘고도국방 국가체제’를 선전하고 전시체제에 순응하였다. 1941년 11월 27일 제1회 ‘향사 예술대회(鄕士 藝術大會)’는 부산부청년단(釜山府靑年團)주최로 국민총력부산부연맹(國民總力釜山府聯盟)과 부산일보(釜山日報, 日本語, 1914년 창간)의 후원을 받아 4일간 부산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일본음악(｢희망의 빛(希望の光)｣) 공연, 시영(詩昤)과 검무(劍舞), 독창(｢건국정신｣), 총력극(｢거리의 병대(街の兵隊)｣), 동요, 무용(｢전쟁터에서｣) 등이 다양하게 공연되었다.  

부산단가회(釜山短歌會)는 부산의 대표적인 친일문학단체로서 1941년 5월 18일 오후 2시 부산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결성식을 갖고 “금후 시국하 지방문화의 향상에 용맹매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외 총력연맹 경남도 문화부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영화회와 시영회(詩呤會)를 매일 개최하여 전시체제를 강화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또한 부산지역의 일본 신문인 '부산일보'는 해마다 신춘문예 소설과 시 공모전을 열었다. 여기에 다수 조선문인보국회 회원들이 참여하였으며, 특히 이무영은 연재소설 ｢청기와 집(靑瓦の家)｣를 게재해 조선예술상을 받기도 하였다. 1944년 2월 부산일보사는 “징병제실시 창간 40주년 신문소설현상모집”을 조선총독부 정보과와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원으로 실시하였다. 공모전은 징병, 증산(增産), 반도황민화(半島皇民化)로 주제를 정하고 조선문인보국회에서 직접 심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