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가야할 '반공유산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적대적인 논리와 정서를 의미하며 그 중에서도 북한공산주의 체제 및 정권을 절대적인 '악'과 위협으로 규정, 그것의 철저한 제거 혹은 붕괴를 전제하며 아울러 한국 내부의 좌파적 경향에 대한 적대적 억압을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와 남북한간의 경제적 격차의 확대로 1990년대의 한국에서 반공주의의 영역은 매우 축소되었다. 도덕 교과서의 내용도 반공정신에 불타는 적대적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며 남북간의 협력과 평화공조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공주의가 지배담론 영역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교련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교과서간의 모순은 반공주의의 표면은 매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이해와 비판으로 덮혀 있지만 그것의 알맹이는 여전히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버려야 할 이승복 동상

1968년 12월 9일 이승복 등 일가족들이 남파간첩에 죽었다. 그때 이승복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면서 장렬(?)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때 우리들은 반공글짓기, 웅변대회, 사생대회, 온갖 시민대회를 통해 '김일성 때려잡자' 혹은 '타도하자 북한' 등 온갖 구호를 외치면서 살아야 했다.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은 매일 반공교육과 뿔 달린 김일성을 그려야 했고, 전쟁기념일 6.25 때마다 '반공대회'를 개최하여 전위를 불태웠다.
지금도 거제에는 이승복 동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현재 폐교된 분교나 학교에 가보면 교사(校舍) 앞에 세워진 이승복 동상은 반공시대의 유물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예전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과 함께 이승복 동상이다. 바로 반공주의 유물들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심한 말은 아닐 것이다.
정전 50주년을 맞은 우리는 어떻게 반공주의를 청산할 것인가? 지난 5,6월 서울에서 열린 '반공주의'궐기대회를 보면서 통일보다 반공이 우선일까. 이제는 청산해야 할 역사, 바로 반공주의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처참한 생활로 전락시킨 반공주의는 우리 역사에서 말끔히 버려야 할 유산임을 알아야 한다. 
반공이데올로기의 일상적 침투는 인간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안보논리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체계를 정착시킴으로써 한국사회의 참여적 민주주의의 사상적 전제가 되어야 할 근대적 인권을 보장하는 정치문화의 형성을 더디게 했고 '타자'에 대한 증오를 조장함으로서 한국사회의 흑백논리를 강화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분쟁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유발발시켜왔다. 오늘날 그것은 남북한 평화통일의 기본전제인 남북한 사회문화적 통합에 결정적인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버려진 폐교에 이승복 동상도 철거하고 평화의 공원 또는 문화학습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