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역외 달러 매수 세력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원달러 환율이 5일만에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 외환 시장에서 원화는 수일만에 1달러당 100원 가까이 떨어졌다.

2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5.2원 오른 1195.0원 출발했으나 정부의 개입으로 낙폭을 줄였고, 역외 달러 매수 세력에 밀려 다시 반등했다. 결국 장 막판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서 환율은 전날보다 13.8월 하락한 1166.0원에 마감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의 대외 불확실성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달러화는 다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원화 약세에 웃는 수출형 산업
글로벌 금융위기와 수요 침체로 힘들어 하던 전자업계는 환율 급등에 반색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언뜻 보면 환율 상승이 해외 현지생산과 부품 수입 등의 측면에서는 악재로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환율 상승 덕분에 수출 경쟁력이 강화돼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와 LCD 등 주력 사업 업황이 계속 부진해 수익성 악화를 고민해왔다. 실제 올 상반기 삼성전자 매출은 연결기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5.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8.9% 감소했다. 특히 LCD사업은 글로벌 시장수요 악화로 지난 2분기에 2천1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반도체도 D램 가격 하락하며 영업이익 감소가 지속됐다.

그러나 최근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의 하반기 수익성이 예상보다 큰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90%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환율 상승으로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며 삼성 측도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영업전략과 실적 전망치를 세울때 기본적으로 환율 예상치를 감안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변화가 생각만큼 크지는 않겠지만 수익성 개선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주력 사업 부진으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 최근의 환율 상승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부진 등 악재 속에 CEO 교체 등 승부수를 펼치며 전년대비 수익성 악화가 소폭 개선됐지만 아직 적자구조는 지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환율 상승은 예상 밖의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LG전자 역시 수출 비중이 80%에 달해 예상치를 뛰어넘은 환율의 오름세가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달러 외에도 LG전자가 관리하는 통화가 많고, 수입 물량도 많아 달러 환율 상승의 효과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전체적으로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 역시 환율 상승은 자동차 업계에 호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차 수출 가격이 낮아져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반드시 호재로만 볼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환율 상승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실망감과 그리스·이탈리아 재정위기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국내 기업들이 수출시 가격 경쟁력을 갖는다고 해도 주요 자동차 소비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경기 불황으로 시장 자체가 위축된다면 결코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에 따라 조선업계도 희망가를 부르고 있다. 수출 주도형 산업인 만큼 원화 약세가 매출 등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급변하는 환율변동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모습이다. 조선업계는 지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체로 환헤지(換hedge)를 걸어놓기 때문에 환율변동으로 인한 영향은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급등 사태가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금액의 70% 정도는 환헤지를 걸어두고 선박에 들어가는 설비나 기자재 중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30% 정도는 달러로 보유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당장 환율급등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진 않으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어 환율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 약세에 대해 수출 주도형인 석유화학업체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석유화학기업 관계자는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로 먹고사는 업종 특성상 원화 약세는 수출 부문 이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정유업종도 수출비중이 높기 때문에 석유화학업종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수출비중이 높지만 대부분이 중국과의 교역이기 때문에 사실상 달러보다는 위엔화가 더 중요한 시절이 됐다”며 “위엔화는 중국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달러화와 같이 급변동하지 않아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석유화학 시장에서도 중국 위안화 및 일본 엔화 결제가 확대되고 있고, 일부 업체들의 경우 환차손에 대한 보험을 가입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환헤지 문제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화 약세에 우는 원재료 수입형 산업
철강과 정유 등 원재료를 수입해 매출에서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은 비상등이 들어왔다. 수출보다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정유업체들은 원화 약세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철광석과 원료탄, 철스크랩을 수입하는 철강업체 역시 원화 약세에 우려감을 표시하고 있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환율 급변이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니고 환율이 들락날락하는데 매번 이럴 때마다 영향 있을수는 없다"며 "이런 부분 때문에 리스크를 대비하고 있는데다 환헤지도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업체 관계자는 "수출보다 내수 비중이 높고 원재로를 수입하기 때문에 원화 약세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내부적으로 원가절감 등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 야직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철강 수입업체들이 환율 직격탄에 울상을 짓고 있다. 수입업체들이 유전스(usance)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달러당 환율이 1천200원까지 위협하면서 이에 따라 수입재 대부분의 국내 유입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다.

특히 대부분의 업체가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것을 대비해 유전스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도입시 결재를 택하면서 실제 유입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700달러 제품이 들어 오는 것을 달러당 1천200원을 적용할 경우 t당 84만원으로 올라간다. 여기다 통관비, 운송 등 물류비, 금융비용, 로스 등을 감안할 경우 원가가 90만원이 되는 셈이다. 이는 1주일전 1달러당 1천100원 였던 것을 감안하면 t당 7만원이나 상승한셈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현재 유통 가격이 수입이 t당 81~82만원 선인데 지금 들어오는 물량이나 월말까지 들어오는 물량 단가가 너무 높은 부분이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런 가격대가 붕괴될 경우 자칫 할인 판매와 수입재 유입 축소에 따른 가격이 생각 만큼 오르지 못할 경우 피해도 더 커질 것"이라며 "현재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달러 강세 등으로 철강재 수입 업체들이 자칫 부도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