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너도나도 비상경영 체제…외형성장 접고 내실경영
세계 재정위기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까지 요동치자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당장 눈에 띄게 똑부러지는 대책을 내놓은 기업은 없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큰 만큼 대책을 마련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들이 내 놓은 대책이라고 해 봐야 환율 변동에 따른 단기 손익을 점검하며 사태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3년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촉발된 전 세계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매출이나 자금 계획 등을 재 점검하며 향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일단 국내 산업계의 금융위기에 대한 대책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M&A나 대규모 투자 등을 자재하고 최대한 현금확보에 주력하거나, 원가절감 등을 통한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모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유동성 확보 차원의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유동성 확보에 주력, 투자.지출은 속도조절
남유럽에서 시작된 유럽발 재정위기가 미국을 경유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자 국내 주요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떠 올리며 급속한 경영환경 악화에 대비, 투자 시기를 조절하거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경기 침체와 맞물려 TV 수요 부진의 골이 예상보다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설비 신규 투자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의 경우 정준양 회장이 최근 열린 임원회의에서 “(경영여건이) 비상경영체제로 가야하는 만큼 당분간 불요불급한 M&A는 자제할 것”이라며 내실경영의 기조를 피력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전역에 생산기지를 건설한다는 올 초 계획 중 인도 생산기지 착공 시기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는 기업도 눈에 띄고 있다. 한진해운은 해운시장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 아래 지난 23일 4천7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고, 같은 날 대한항공도 5천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에 나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만큼 국내 기업들은 미국발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게 투자시기를 조절하는 한편,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경영시스템’ 가동…해법은 어디에
세계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국내 주요기업들은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로 옮아갈 수 있다며 다양한 형태의 비상경영계획을 마련 중이다. 내년 사업계획도 외형 확대보다는 내실경영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삼성그룹은 세계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 경영의 중점을 둔다는 계획 아래 단기적으로는 급변하는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각 계열사별로 10월부터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해 11월 말까지 완료, 4분기 경영계획을 정립하는 한편, 내년 사업계획의 기초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경기불황에 따른 선진시장의 부진에 대비해 신흥국 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며, 원자재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일부 품목에 대해 1년 단위 장기 공급 계약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유업계는 시나리오 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환율 변동 추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결제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뤄져 있고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가격 추이와 직결되는 만큼 발등의 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유럽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까지 이어질 경우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환율 등 대외 경제 불확실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환율 등 대외경제 여건에 큰 변동이 발생할 경우 바로 경영계획과 전략에 반영할 수 있도록 경영시스템을 유연화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불안 속에서도 기존 투자 등의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연초 연단위 경영계획을 시나리오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세계 경제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 및 윤활유 사업 등의 투자건 등은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 아직 유럽과 미국의 금융위기가 당장 국내 정유업체에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다만, 대외 경제 여건 변동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상황에 따라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환율변동이 외화환산부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환헷지 상품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등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도 위기대응 시나리오 경영에 나서고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른 중장기 투자와 신사업 추진 계획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GS칼텍스는 현재까지 경영계획의 수정은 없지만,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실물경제 위기로까지 진행될 경우 중장기 투자 및 신사업 추진 계획 등에 대한 단계적 위기별 시나리오를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위기의 해법을 찾아 해외를 찾는 등 국내 주요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움직임도 부산해지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경영 구상과 글로벌 경제위기 파악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주 초부터 미국 방문에 나섰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그룹 경영진들과 함께 체코와 슬로바키아 현지공장을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