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수도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장벽 허문자리에 빈 바람만-

떠나는 길이 멀다. 11박 12일의 동유럽 일주 여정이 시작되는 오월의 첫 새벽은 신선하고 맑았다.

빌헬름교회 외부전경

거제시청 공로연수팀과 해성고 17회 동기회 부부팀이 함께 한 이번 여행은 지역 사람들만 일행이 되어 떠나는 인센티브 팀이기에 내가 느끼는 마음의 부담감이 패키지 팀보다 훨씬 적었다. 연합팀이 아니어서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우리끼리란 단어가 이런 여행길에 필요한 것 같다. 라면이며, 젓갈이며, 김치며, 먹을 것이 모두 다섯 가방, 그기에 소주하고 물까지 합치니 짐이 산더미다.

브란덴부르크 광장

인천공항에서 만난 인솔 가이드인 나미경씨는 꼭 예전의 나와 닮은꼴이다. 수수하고 믿음직 한 모습이 우리 팀과는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예약했던 루프탄자 항공이 좌석이 없어져 대한항공으로 바꾸고 나니 맘이 편하다. 일단은 우리 국적기에 비빔밥이 나올 테니까.

가이드는 이미 보딩을 받아 놓고 있었다. 중국에서 통화를 미리 해 둔 터라 부부끼리 짝을 잘 맞춰 놓아 별 이상 없이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일정과는 달리 11시간 30분의 비행거리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마로니에 꽃과 나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저들의 관문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시설이 인천만은 못하다. 중부 독일의 대표적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차범근 선수로 인해 우리나라에 더 잘 알려진 곳. 공항을 빠져나와 일행은 아우토반을 달려 작센주로 향했다. 베를린을 보기 위해서다.

이번 일정은 완전 풀이다. 그래서 일부 일정은, 아우토반 옆의 변두리에서 자고 시내로 들어가는 일정으로 짜여있다. 지친 몸들을 이끌고 첫 숙박지인 디스카우시에 입성.

대학내부의 모자상

북으로 달려오는 동안 석양이 지는 지평선 너머로 아직도 초원을 가득채운 노오란 유채꽃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거대한 돈키호테의 꿈이었던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원을 거리며 허공을 가른다. 복을 받았음인지 첫날부터 날씨는 쾌청이다. 바이마르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동유럽, 북유럽 모두 호텔방은 잠자는 곳으로 꾸며져 있을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의 개념은 이곳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거실의 개념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인식돼 있어 방은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다. 예전에 내가 유럽에 와서 실망했던 것처럼 유럽을 처음 온 손님들은 “에게 호텔이 왜이래”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수십만원의 숙박비를 지불하는 시내 비싼 호텔을 쓸 수밖에 없기에...

빌헬름교회 내부

11박 12일의 일정의 첫 저녁식사는 빵과 스프와 감자와 그리고 고기 한덩어리였다. 벌써 손님들은 김치를 찾는다. 예전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갔다가 밥을 찾는 바람에 혼이 난적이 있다. 햇반을 꺼내 상에 올리고 컵라면과 함께 나눠 먹도록 했다. 걱정이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 그래도 어쩌랴 여긴 한국이 아니다. 가이드와 내일 일정을 이야기 하고 다들 휴식에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소주 한 잔을 돌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들 일찍 잠에 깨어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아름드리 나무에서 핀 꽃들을 찍느라 난리다. 가이드가 나와 이 꽃이 바로 마로니에란다. 꽃이 피기 전 마로니에 나무는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풍성하게 예쁜 꽃을 매단 마로니에는 처음 본다.

전승기념탑

맑은 공기, 높은 하늘, 그리고 빛나는 태양, 끝없는 지평선, 더 바랄게 없는 좋은 날씨다. 식사를 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향해 아우토반을 달린다. 히틀러 이야기, 분단국가, 맥주의 나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고성과 로맨틱 가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베를린시에 들어섰다. 15세기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프로이센 왕국과 비스마르크 제2 독일제국의 수도였던 곳, 동물원 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마산이 고향인 정치학을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전승기념탑과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장벽, 그리고 수상이 근무하고 있는 관저와 국회의사당, 보리수 거리 운터덴린렌, 카이저 빌헬름 교회 백화점이 있는 시가지 등을 둘러보고 일행들 모두 시내의 그리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나 감자와 스프를 곁들인 양식 메뉴였다.

훔볼트대학 전경

우리는 차창으로 시내 구경을 하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과 통일 독일의 현실을 비교해 보았다. 공무원이 타고 있으니 자연 이야기는 그런 얘기들이다. 조금은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 너머 빌딩 숲으로 빈 바람이 달려와 허공으로 흩어진다.

다시 버스는 아우토반을 달려 저녁 늦게야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미인송과 자작나무와 밀밭과 유채밭 사이로 붉은 색의 집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넓은 땅에 게르만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독일 베를린국회 의사당

잠깐 사이 국경을 넘었나 싶은데 차가 덜컹거린다. 독일 아우토반과 폴란드의 고속도로 차이가 이런 것인가 도로가 꼭 넝마 같다. 그래, 이게 국력의 차인가 보다. 내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보기 위해 오늘은 브로츠와프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관광코스가 아니어서 호텔이나 식사는 오늘까지는 참아야 한다.

외관은 버젓한 준특급 호텔인데도 방이 우리나라 여관방보다도 못하다. 가이드와 함께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둘째 날 여정을 접었다. 침대 방이 하도 우습고 기가 막혀 유럽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며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시골이라 이것도 어쩔 수 없단다. 그러고 보니 방이 없어 바꿀 방도 없단다. 우리 외에도 유럽 손님들이 숙박을 하고 있다.

아트로 장식된 베를린장벽 일부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습성을 우리가 이해해야지하면서도 허탈한 심정이다. 가이드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일 크라코프의 멋진 밤을 위해 건배를 했다. 내일은 괜찮겠지 하면서...
계속 이채영<시인/ 세계항공대표/ 청마기념사업회장>

 

베를린시내 중심거리

베를린시내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