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숙의 여행이야기 54> - 동유럽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2 쉰들러 리스트와 오시비엥침 유럽 최초의 문화도시 크라코프, 그리고 슬픈 나치 학살의 현장 아침을 간단한 커피와 치즈, 빵으로 때운 일행들은 중세 유럽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크라코프 근교의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호텔에서 만난 가이드가 제법이다. 유학 온 학생치고는 조그마한 체구에 당찬 모습이 마음에 든다. 먹장구름이 간간히 비를 뿌리고 차창 너머 바라다 보이는 산과 들, 건축양식 모두가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유태인 강제수용소 현장의 무거운 분위기를 반영해 주고 있는듯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 연출을 맡은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들의 잔인한 광기에 희생당한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려낸 흑백영화이다. 출연진도 모두 폴란드와 이스라엘 출신 무명배우들이고 영화촬영장소도 유태인 강제수용소가 있는 실화의 현장 크라코프에서 촬영됐다. 초점 없는 여인의 눈망울이 애처럽다. 우리 일행들이 묵었던 도시 크라코프는 전체 유럽의 가장 중심지란다. 나치들은 그런 교통상의 이유로 크라코프를 유태인 강제수용소로 정했다고 한다. 후줄근히 비를 안고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들 모두 말이 없다. 침묵의 시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을라나. 조용하게 그러나 침착하게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아우슈비츠(오시비엥침) 건물이 있는 수용소로 들어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외벽은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철조망과 오래된 사스레나무 그림자가 이 수용소의 나이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으스스 하기까지 하다. 옆의 일행들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단다. 아우슈비츠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니라 인간의 잔혹성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전율스런 곳이었다. 유태인들이 여기 이 수용소로 끌려와 남긴, 가방, 신발, 옷가지, 냄비들까지 거기엔 정말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기의 옷들까지 붉은 장미송이 옆에 전시돼 있었다. 가여운 영혼, 수많은 죽음의 현장 사진들을 보며 나는 현기증과 구역질이 나와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었을까? 교수형을 당한 형장과 독가스실을 돌아 나오는 길에 눈물이 쏟아져 일행들을 보내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쉰들러 리스트’ 그 영화가 생각난다. 오스카 쉰들러(라이엄 니슨)는 거물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나치당원이자 사업가이다. 1939년 2주 만에 독일군에 점령된 폴란드에서 쉰들러는 석기공장을 세워 전쟁기간동안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는 유태인 회계사 스텐(벤 킹슬리)과 함께 공장을 열고 돈을 번다. 유태인을 무임금으로 고용하여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을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리고 유태인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스텐도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쉰들러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직감을 하면서 크라코프 수용소에 끌려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유태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친위대의 젊은 장교를 돈을 주고 매수, 스텐과 일행들을 자신의 고향인 체코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쉰들러는 체코에 석기 공장을 세워 일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자신이 벌었던 돈을 주고 1,100명의 유태인을 체코로 이주시킨다. 쉰들러의 유태인들은 드디어 체코행 기차를 타게 되고 그들은 살아남는다. 만약 쉰들러의 이러한 계획이 없었다면 스텐과 그 일행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실, 아니면 증기찜통에서 가장 비극적인 모습으로 죽어갔을 것이다.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 체코로 넘어간 유태인들은 살아남자 전쟁이 끝난 뒤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반지와 진정서를 써서 자신들을 구해준 쉰들러에게 전한다. 쉰들러는 전범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한 사람의 유태인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유태인들이 만들어 준 그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씌여 있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잠언이었다. 쉰들러 리스트의 영화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가이드가 덧붙여 독일 전범들은 전쟁이 끝나고 이곳 강제수용소에 와서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했다고 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일본은 사죄는커녕 아직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며 위안부문제, 일본군 징용자들의 문제까지 하나도 딱부러지게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양 나라의 국민성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성 문제일까, 독일 수상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하는데 왜 일본 사람들은 유독 외면만 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관광객들 중 일본인들은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뒤로하고 우리는 6.25의 비극을 생각하며 아우슈비츠를 떠났다. 예쁜 식당에서 감자로 점심식사를 하고 서둘러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으로 향했다. 700년 역사를 가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광산은 그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아름다운 지하 건축물의 진수였다. 대성당, 요한바오로 2세 동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등 오랜 기간 조각을 했던 장인들의 땀 냄새가 새록새록 베여 있다 3시가 넘어 일행들은 크라코프의 구 시가지로 향했다. 수천 개의 건축물과 예술품들로 가득차 있는 크라코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오래된 성당, 중앙광장, 꽃과 음악과 낭만이 흐르는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오랜만에 여행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음을 실감했다. 언제나 손님들을 챙기느라 뒤에서만 쫒아 다니다 보면 어디를 돌아왔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자유 시간을 주고 나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꽃집에 들러 현지 가이드에게 꽃 하나 사주면 안되느냐 고 미경씨에게 묻자 그러지 말란다. 좋기는 하지만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거다. 그래도 참 고생 많았는데 ... 그래 참자 참아... 바벨성을 차창으로 보면서 크라코프 시내 호텔로 향했다. 도로변에 위치한 호텔은 어제보다 훨씬 양호했다. 하얀 꽃으로 장식된 프론트와 식당이 진짜 맘에 들었다. 가지고 간 김치가 숙성했는지 차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차가 바뀌지만 짐을 모두 갖고 가라는 말에 호텔 복도가 반찬보따리들의 숙소가 돼 버렸다.손님들 모두 걱정을 했지만 뭐가 대수랴. 우리 손님들 먹고 기운내면 그만이지. 저녁도 어제처럼 양식으로 떼우고 늦게까지 호텔방에서는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가나보다. <계속 >-이채영<본명 이금숙/ 시인/ 세계항공 월드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