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 물결위에 흐르는 자유의 노래
부다베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그리고 영웅광장
우리는 동구의 알프스라는 타트라 산맥을 넘었다.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에 걸쳐있는 이 산맥은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만년설에 쌓인 산정들이 눈부시다. 언제나 그랬듯 일행들은 버스에서 자는 사람, 얘기꽃을 피우는 사람, 맥주를 마시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뒷좌석은 우리 몇 사람의 생활공간이 돼 버렸다. 벌서 여행의 4일째, 아름다운 도나우(다뉴브)강을 꿈꾸며 타트라의 절경에 흠뻑 빠진다. 설경이 보이는 산정 어느 곳에 점심식사를 했다. 시원한 맥주와 야채스프와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 요리를 먹고 다시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필자

겔레르트언덕에서 재희씨와

영웅광장

얼마를 지났을까 아카시아 나무 사이로 붉은 지붕의 성채들이 보이고 낮은 구릉으로 부다페스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낮게 그리고 천천히 휘돌아 가는 다뉴브 강 물결을 보면서 나는 잠시 환청처럼 무수한 군중들의 함성소리를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다와 페스트의 자유가 그냥 얻어진 자유가 아님을 영웅광장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8시간의 긴 투어로 많이들 지친 일행들은 간만에 한국식당에 들러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석양이 지는 페스트로 이동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조용하고 숲에 싸여 더욱 고즈늑하다. 석양이 꽤 오랫동안 창가에 머물다가 지기 시작했다. 밤은 이 도시의 전설을 덮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침묵이 여행자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오래된 텔레비(정말 80년대 우리나라 텔레비전이다)마저 저절로 꺼져 버린다.

부다페스트 시내 전경

아침 식당은 전쟁터다. 큰 두 개의 식당 모두가 여행자로 꽉 찼다. 음식은 풍족하니 먹을 만 했으나 벌써들 찾기 시작한 한국 음식들은 여기선 먹을 수가 없다. 손님들은 그래도 즐겁게 식사를 하고 투어에 나선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영웅광장,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가 맨 먼저 떠오른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 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못한 저를 쓰러 뜨렸다.

순간
부서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30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네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중략-

-너는 열 세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벼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 강 푸른 물결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여 울었다.

-중략-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서

이 시는 내가 고등학교 문학소녀 시절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유치환, 김춘수, 이해인, 김소월, 박목월, 윤동주 이 모두 나에겐 스승이었고 영웅이었고 존경스런 대 문인이자 닮고 싶은 선배님들이었다.

헝가리 - 이국적인 이 나라의 독립과 투쟁은 영웅광장으로 잘 나타나 있다.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에 세워진 기념비가 있는 광장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에는 이곳을 지배했던 국왕의 석상들과 부족장 6명의 기마상, 헝가리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운 근대지도자 등 14명의 상을 보며 빠르게 민주주화 되어가는 헝가리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 다뉴브강

아침 일찍 임에도 군인들이 이곳을 찾게 될 국빈을 위해 단상을 마련하고 헌화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국빈이든 헝가리를, 부다페스트를 찾는 정상들은 이곳에서 먼저 헌화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영웅광장은 자유의 상징이고 투쟁의 상징으로 불린다.

우리는 국회의사당과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다뉴브 강을 건너 부다지구로 향했다. 어부의 요새, 부다왕궁,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 본 다뉴브 강, 그 아름다움은 이곳을 찾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야기한 환상이고, 부다의 꿈이었던 것이다. 겔레르트 언덕의 다뉴브강 풍경 사이로 빛나는 푸른 하늘이 강과 맞닿아 흐르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천국이 따로 없네’라고 ...
투어 중에 통영팀을 만나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하고 부둥켜안고 난리다. 수만리 먼 이국땅에서 이런 인연으로 만날 수도 있는 건가보다.

▲ 국회의사당 전경

▲ 야간에 운항하는 다뉴브강 유람선

시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 일행은 유람선을 탔다. 강을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1시간 코스, 야간의 다뉴브강 유람선을 타야 했지만 일행들의 일정 상 오후에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낮의 다뉴강 주변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함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지인 동유럽의 파리, 부다페스트를 바라보며 우리는 전혀 푸른색의 강물이 아닌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들었다. 와인과 과일쥬스를 마시면서... <계속> 이채영[본명 이금숙/시인/세계항공 월드투어 대표]

▲ 어부의 요새

▲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 본 다뉴브강 풍경

▲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다뉴브 다뉴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