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대장                                                                                                        차 은 혜 조용하던 숲이 시끄럽다. 말썽꾸러기 조이가 난동을 부린다. 그냥 조용히 다니는 법이 없다. 소리 지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주위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힘을 과시하는 거다. 조이가 난폭하게 행동할 때마다 대장은 마음이 무겁다. 자기를 향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대장이 된 지 5년이 되었다. 아직 5년 정도는 거뜬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이의 행동으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장은 일찍 길을 나선다. 무리를 지키기 위한 망보기다. 그가 망을 보기 위해 나선 것을 틈타 조이가 일을 내고야 말았다. 소란한 소리가 숲이 떠나갈듯 울렸다. 그를 따르는 무리의 소리가 한데 보태져 금방이라도 숲이 폭발해버릴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일은 여러 번 있었으나 오늘은 좀 다르다. 한층 소리가 크고 격양되어 있다. 망보던 일을 포기하고 무리 쪽으로 가까이 가 숨어 지켜본다. 싸울 것인가 아님 넘겨줄 것인가. 대장은 한참동안 생각을 한다. 긴 시간의 고민을 끝내고 그는 무리들 속에 있는 조이를 향해 걸어가 입에 입술을 갖다 댄다. 조이를 대장으로 모시겠다는 표현이다. 이젠 조이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혹여 그에게 거슬리는 행동이나 모습이 보이면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을 가할지 모르니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 없는 듯이 살아야 한다. 이제 그는 대장이 아니다. 식사를 거르며 망을 보지 않아도 된다. 배가 고프면 열매를 따먹으면 되고, 잠이 오면 누우면 된다. 이 편한 생활을 마다하고 최고의 권력자로 살아가길 갈망하였던 자신이 우습다. 꿈을 이루었다 하여 편히 쉬어본 적도 없다.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넘보려 하지 않을까 늘 긴장해 있어야 했다. 대장으로서 무리를 지키기 위해 편히 밥 한 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젠 모두를 내려놓고 평범한 고릴라로 돌아와 남은 생을 조용히 살 것이다. 어느 정치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 원래 그의 직업은 유명한 기업가다.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가까운 일본에서는 그를 유능한 사람이며 자기 나라 사람이길 바랐다고까지 했다. 그런 그가 무슨 영문인지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알고 있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보다는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밖에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의 선택에 의문을 많이 갖고 있었고 안타까워했었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개인의 사생활까지 벗기어 흠집을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싫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던 그가 그런 곳에 들어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자신이 들어가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보겠다고 들어갔던 많은 사람들도 어느 날 보면 무리속의 일원으로 변해 있었다. 멀쩡히 잘 끌고 가던 거대한 기업을 뒤로 하고 왜 진구렁 같은 길을 택했는지 아쉬워했다. 어떤 보장으로 지고 있던 짐을 던졌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속한 당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기업가로서보다는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난 정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 손으로 뽑은 사람이 국회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뒤로 더욱 그들이 싫다. 그런 속에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이 들어갔다는 것에 마음이 씁쓸했다. 아니 그로 인해 달라지는 곳이었으면 좋으련만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처음 정치에 영입되어 들어가던 날보다 더 많이 수척해 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던 패기도 사라졌다. 그의 정치 행로를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가끔씩 뉴스를 볼 때마다 등장인물처럼 보였다. 그때의 모습에서 왜 숲 속의 대장 고릴라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음에 많은 회의를 느끼지 않았을까. 지금 숲 속의 대장이 된 조이의 활기찬 모습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그 자리를 노리는 자에 의해 밀려날 것이 뻔하다. 그렇게 갈망한 자리가 결코 편안한 자리도 만족시켜주는 자리도 아님을 깨달게 될 때까지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많은 군중을 향해 공약을 내걸고 밀어 달라고 고개 숙일 때의 겸손은 사라지고 거드름 피우는 못난이들이 존재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뽑아준 일꾼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존경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힘이 넘치는 조이는 오늘도 숲을 한바탕 뒤집어 놓는다. 졸개들을 데리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사냥이다. 치밀하게 조를 짜서 몰이하는 팀과 대기 팀과 잡는 팀으로 실수 없이 먹이를 포획해야 한다. 조이가 대장이 되면 먼저의 대장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조이는 다짐을 놓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거다. 그러나 그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는 도전의 화살은 어느 날이 될지는 자신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 기업인도 최고의 권력자와 사돈을 맺고 초고속 질주를 하는 듯 보였다. 그런 그가 하향곡선을 타고 추락의 길로 곤두박질치더니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를 보았다. 우리의 삶이 긴 것 같지만 짧고, 짧은 듯 생각되나 길다. 이 주어진 길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욕심내지 않고 거스르지 않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릴 때 옆 사람도 나 자신도 볼 수 있다. 세상은 한 번쯤 멋지게 살아봄 직도 하다. 이런 이치를 젊은 시절에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남아 있는 시계가 멈추어 버릴 쯤에 느껴 회안을 갖게 한다. 그냥 흘려버린 시간이 아깝다. 그래도 남아 있는 조금의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 약력 ▓ *수필가,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수필과 비평 문학상 수상 *한국문입협회 회원 *수필집 《견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