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겨레   이옥순 명주조각 다섯 장을 준비한다. 제 각각 색이 다른 조각을 터지지 않게 비단실로 단단히 꿰매고 창구멍을 남긴다. 솜을 팽팽하게 넣는다. 탄력이 있을수록 바늘을 꽂아두기가 좋다. 큰바늘에 무명실을 길게 꿰어 다섯 각의 귀퉁이에 넣어 잡아당긴다. 볼우물처럼 오목하게 들어간다. 각이 진 조각들이 모여 둥근 꽃으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바늘겨레는 바늘의 어머니이다. 바늘이 제 역할을 하고 돌아가 쉴 품인 것이다. 거실 바닥에 바늘이 떨어져 있다. 어젯밤 바느질을 하고 바늘을 제 자리에 꽂아두지 못했다. 내 눈에 띄어 다행이다. 제 자리에 있지 않은 바늘은 위험하다. 바늘을 집어 바늘겨레에 꽂는다. 팽팽한 볼마다 바늘이 꽂혀있다. 바늘겨레의 색이 봄처럼 화사하다. 화사한 색 속에는 언제나 유년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우리 형제는 다섯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돌보는 일 보다는 농사 일이 먼저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길이 고루 미치지 못했다. 언니는 맏이라서, 여동생은 아들 낳는 터를 팔아서 예쁨을 받았다. 그 밑 동생 둘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대해 주었다. 둘째인 나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다. 그런 틈을 타 나는 더러 사고를 쳤다. 한 번은 어머니가 꿰매던 이불을 밀쳐두고 이웃에 갔는지 뒷간을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불 속에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돌아온 어머니가 놀라 이불을 잡아당겼다. 나는 만화책을 안은 채 속에서 이불을 꽉 잡고 버텼다. 어디서 나온 힘인지 어머니보다 힘이 셌다. 이불을 풀지 않자 어머니는 빗자루를 찾아 들고 바늘이 있는데 애가 왜 이러느냐며 고함을 쳤다. 내게 이불을 풀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야단이 아니라 바늘이었다. 어머니의 눈은 오로지 바늘을 찾느라 만화책은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화책을 장롱 밑에 얼른 밀어 넣고 어머니랑 같이 바늘을 찾았다. 이불을 털어서 마루로 내어놓고 들었던 빗자루로 방을 쓸어도 없었다. 식구들이 달려오고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후에 바늘을 찾았다. 내 옷자락에 붙어 있었다. 바늘을 찾고는 어머니의 눈이 장롱 밑으로 향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불렀다. 바늘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싸움이 벌어졌다. 만화책을 빌려왔던 내 잘못은 묻혀버려 다행이었다. 그렇게 가끔 없어진 바늘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바늘은 있을 자리에 있으면 그저 바늘일 뿐이다. 문제는 바늘이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일어난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바늘겨레를 벗어난 바늘 같았다. 또 만화를 빌려보지 못할 때는 온 들판을 쏘다니며 놀았다. 유월이 되면 밀 서리로 더 재미있었다. 그렇게 밀 서리를 해먹던 어느 날이었다. 어린 가슴에 봄이 꽃물을 들여놓았는지 그날따라 꽃무늬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무를 모아 누군가 불을 지피고 각자 따온 밀을 던져 넣고 익기를 기다렸다. 던져 넣은 밀을 지키기 위해 불무더기를 건너다녔다. 밀이 익어갈 즈음 엉덩이가 뜨뜻해져왔다. 햇살 인줄 알았다. 그런데 치마에 불이 붙었다. 놀란 나는 불꼬리를 달고 뛰었다. 숯검정이 된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밀 구워먹다 큰일 날 뻔 했다며, 밀 구워 먹는 법을 알려준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밭가에서 가끔 밀을 구워 주셨다. 노릇노릇 구워진 파란 밀알을 내 작은 손바닥위에 올려 주시곤 했다. 아버지처럼 밀을 잘 구울 수가 없었던 나는 일만 저지르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제자리에 있지 않은 바늘처럼 나를 불안해했다. 이렇듯 제 자리에 있지 않는 바늘은 언제 어디로 달아날지, 어디에 숨어들어 누구를 찌를지, 누가 찔릴지 걱정스럽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는 바늘 간수를 철저히 했다. 꿰매던 이불을 두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미처 바늘겨레에 꽂지 못할 때에는 다른 곳에라도 잘 꽂아 두었다. 몇 개의 바늘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챙겼다. 벽에 한 개, 실패에 두 개 하는 식으로 살폈다. 바늘이 없어진 줄을 금방 알아차렸다. 세상에는 바늘겨레를 벗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위험한 바늘이 되어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찾아들 품을 잃은 아이들에게 바늘겨레가 되어줄 어른들도 힘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늘겨레가 되어주어야 할 어른들은 바늘이 제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에 잘 있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어른들도 이미 터진 바늘겨레다. 그래서 흩어져 있는 바늘을 보면서도 모른 체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년시절을 언제나 화사하게 기억하는 건 어머니의 품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늘겨레의 바늘은 마치 어머니 품에 자식들이 안겨 있는 모습이다. 바늘은 바늘겨레에 꽂혀 있는 한 안전하다. 세상의 바늘들이 바늘겨레에 찾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개 더 만들어 보려한다.   ▓ 약력 ▓ *경남 사천 출생, 수필가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단감과 떫은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