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천  편집이사

여섯달만에 '세상보기'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봄 직장을 그만둔 후 '세상보기'도 함께 문을 닫았다. 대신 가까운 산을 자주 찾았다. 백수에게 산행은 주요 일과였다. 누구는 산에서 마음의 안식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그 말이 내겐 통하지 않았다. 평온을 찾고자 오른 산에서 무성한 상념만 떠메고 내려 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산은 늘 거기에 가만히 있었고 세상은 요지부동이었다. 대낮에 산에서 마주친 사내들이 모두 나와 같은 신세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바뀐 건 내 자신뿐이었고 그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가을걷이가 막바지인 들판은 여기저기 부산하다. 가늘고 여리던 모종이 햇빛과 비바람을 먹고 어느새 튼실하게 자라나 농부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 과업(?)에 동원되었다. 농사라야 고작 서마지기에 불과하지만 팔순 노부(老父)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른 일은 몰라도 추수때는 반드시 가까이 사는 자식들을 부른다. 요즘은 기계로 뚝딱 해치우지만 몇해전까지만 해도 종일 엎드려 벼를 베고 먼지를 둘러쓴 채 타작하는 일이 도시생활에 익숙한 자식들에게 만만치 않았다. 어렵던 시절 부모님의 농사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이제 힘도 부칠텐데 편히 지내라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결코 고집을 꺽지 않는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다. 차곡히 쌓인 나락가마를 어루만지며 겨우내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거라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당신의 농사 ! 자식들이야 어떻게 여기든, 삶이 나아지고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오늘에도 부모님의 농사는 관점부터 다르다.

누구나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데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것이다. "관점이 다르다"는 건 옳고 그른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대상을 이해하는 논리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때론,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관점이 수시로 변할수도 있다. '다름'과 '틀림'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닌데도 나와 견해가 다르면 무조건 '틀리다'고 단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필요한게 '소통'이다. '소통'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즉 상대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유익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총선때 맞붙었던 지역 정치인들의 입당(入黨) 공방 또한 그러하다. 대선을 앞 둔 시점에서 각자의 정치적 계산과 헤게모니가 혼재(混在)해 보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관점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통'이 없으면 '다름'과 '틀림'의 지루한 논쟁만 계속될 뿐이다. 초록은 초록일뿐 연하거나 진하다고 다른 색깔이 아니다. 관점을 바꾸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고 소통할지 아직 알수 없다. 다만, 서로 소통하게 되면 그 최대 수혜자는 늘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지역발전과 시민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