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이 은 영 eun6749@naver.com  오늘은 청띠제비나비다. 청띠제비나비의 몸 주위에 온통 압정이 꽂혀 있다.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고 더듬이 두 개는 반듯하게 위로 향해 있다. 검은 머리 중앙에는 또 하나의 압정이 누르고 있다. 섬뜩하다. 작은 아이는 나비표본을 들고 싱글 벙글 이다. 나비표본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며 자랑한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방과 후 수업으로 과학실험을 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아이템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해준다. 난 다소 굳은 얼굴로 천천히 들여다본다. 청띠제비나비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검은 색 몸바탕에 청색의 크고 작은 무늬가 일정하게 새겨져 있다. 나비의 비늘은 보송하게까지 느껴진다. 압정만 뽑는다면 이내 두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를 것만 같다. 청띠제비나비는 여름철 남쪽지방 바닷가 근처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비다. 평소에는 앉아서 잘 쉬지도 않는다는 이 나비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안타까움이 인다. 얼마 전 생쥐해부를 한데 이어 오늘은 또 나비가 희생양이 되었나 보다. 그 때 동영상을 찍어도 된다는 선생님 말에 아이는 죽기 직전의 생쥐를 찍어 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 하얗고 조그만 생쥐가 책상위에 배를 내놓은 채 버둥대고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아이는 해부장면은 차마 찍지 못했다고 한다. 배를 가르고도 심장이 뛰는 것이 신기했다는 말을 하면서. 과학 선생님은 핸드폰에 언제나 다음 수업 내용을 알리는 사진을 올린다. 상자에 갇힌 실험용 개구리를 두고 다음 수업을 기대하라는 멘트도 잊지 않는다. 죽어가는 개구리를 보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 생물들의 해부를 거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은 무뎌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해 전 작은 아이는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가져와서 키웠었다. 애지중지 키우던 병아리가 죽던 날, 작은 아이는 병아리를 내려다보며 오래도록 서럽게 울었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 살아있는 생물의 해부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전부를 잃은 것처럼 커다랗게 느껴지는 슬픔들도 한 겹 두 겹 쌓이다 보면 점점 더 작은 상처로 자리하고 종내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제 되어 버린 나비가 압정에 찔려도 아픔을 느낄 수 없듯이 더 이상 자극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일에도 기뻐하며 웃음 짓는 일이 많았다. 허나 중년의 나이를 지나면서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감정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플 때 마음껏 울지 못하고, 기쁠 때도 그저 무덤덤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작은 일에 감사할 줄 모르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닳아진 둥근 돌처럼 그렇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나 뜨거운 무엇이 빠져버린 삶,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무심코 바라본 얼굴의 무표정이 또 다른 얼굴인 듯 낯설기만 하다. 청띠제비나비는 박제된 모습으로 영원히 사각의 스티로폼에 갇혀 있을 것이다. 결코 자신이 원하지 않았을 죽음이다. 죽어버린 심장은 이미 말랐다. 한때 저 나비도 뜨거운 심장을 팔딱거리며 화려한 비상을 꿈꾸었을 것이나 세상은 너무 비정했다. 점점 거칠어져가는 것 같은 삶의 공간이 무섭다. 그만큼 사람들의 가슴도 식어가고 있다. 마음의 문은 닫혀만 간다. 남의 아픔을 때로 즐기기까지 하며 상처를 주는 사람들, 그들의 가슴 또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은 가슴은 살리기 힘들다. 삭막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면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다. 향기 나는 꽃을 찾아다니다 어느 꽃에든 사뿐히 내려 앉아 편히 쉴 수 있는 곳, 꽃과 나비의 사랑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곳, 서로의 존재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세상은 죽어서 박제가 되어 내 곁에 찾아온, 작은 나비 한마리가 꿈꾸었던 세상은 아니었을까. ▓ 약력 ▓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계룡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