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천 편집이사

지난 정부시절, 모 지방언론사 객원 논설위원이던 필자 친구가 당시 일부 국회의원들의 전횡을 빗대어 ‘선출직의 오만’이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엉뚱하게 사주(社主)가 의원간담회 자리에 불려가 '감히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 그 따위 글을 실었냐'며 호되게 당했다. 그 바람에 불편한 몸인 친구는 언론사에 찾아가 싹싹 빌었고 애꿎은 편집책임자는 회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 그 친구는 요즘도 가끔 만나면 ‘절대 선출직 함부로 보지마라’고 신신 당부한다.

몇해전 한 지역 농민단체가 주관한 행사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행사 시작이 임박하여 시단위 기관단체장들이 먼저 와 앞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뒤늦게 도착한 나이 지긋한 면단위 단체장은 뒷줄에 배치된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안면이 있는 행사관계자를 불렀다. 그는“야 내가 왜 여기에 앉아야 되는데?”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점심때 반주를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불거스레 했다. 황당한 행사관계자가 즉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자, “XX 나도 선출직인데...임명직하고 같은 줄 아나”라고 중얼거리고는 훽 가버렸다. 마침 정복을 입고 와 있던 모 기관장이 그말을 듣고 말았다. 당시 관련부서에 몸 담고 있던 필자는 다음날부터 한참 동안을 피곤하게 지내야만 했다. 각종 비리로 말썽 많던 이른바 ‘신종 지방권력’‘토호세력’ 척결에 나섰던 것이다.

요즘 지역 단위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일부 선출직 단체장들의 행보가 논란이다. 대출문제, 성과금지급, 보궐선거 등으로 꽤나 시끄럽더니 급기야 한 기관에 대해서는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물론, 성심을 다해 소속원들의 복리증진에 헌신하는 단체장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본분을 망각한 채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우쭐거리며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인사도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평소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억대 연봉을 받는가 하면,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거머쥐고 있다. 심지어 임기동안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도모해 한탕 못해 먹으면 바보라는 약간 악의적인(?) 소문까지 들린다.

어떤 분야에서건 정상에 오른 노력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영원히 그 정상에 머물수 없다는 사실이다. 등산을 해 본 사람들은 오를 때 보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선출직 단체장들도 언젠가 임기가 끝나면 내려 와야 한다. 단체장들이 평범한 진리에 눈을 뜨고 좀 더 겸손하고 야무진 행보를 보인다면 그 결실은 조합발전과 퇴임후 편안한 삶의 밑거름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