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수필문학회 이양주씨(옥포2동 거주/주부)가 '수필과 비평'에 작품 '랑공리'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수필가로 등단했다.

이 씨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을 수료했으며 계룡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옥포2동 거주 주부로서 제8호 인간문화재 이수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양주씨의 등단작품 '랑골리'와 심사위원의 심사평 그리고 작가의 당선소감을 싣는다. 

.                                       랑골리(Rangoli)                                                                  이 양 주 저기 누군가가 있다. 사물도 사람도 미처 깨어나지 않은 신 새벽에. 희미한 안개 속에 공기는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밤새 난방이 잘 되지 않은 방에서 잠을 설치다가, 이른 새벽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거리에 나서는 참이었다. 인도 땅을 밟은 지 며칠이 지났건만 회색빛의 매연과 소음과 사람들의 낯빛은 여전히 불편함과 불확실성으로 다가왔다. 인도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오늘은 그 모습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스름한 길 저 쪽,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인이었다. 여명이 미처 트기도 전에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대문 앞 땅바닥에 작은 몸으로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랑골리! 말로만 듣던 랑골리(Rangoli)였다. 랑골리란 인도의 여인들이 이른 아침에 마당이나 집 앞의 길을 깨끗이 쓸고 그 위에 색색의 쌀가루를 이용해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미술로 일종의 종교적 명상의식이다.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땅에 그리는지라 사람이 밟고 다니고 비와 바람에 쉽게 지워지는 특성이 있는데, 우리의 생명 또한 그처럼 유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라지는 그림이지만 정성껏 그리며 최대한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지금은 돌가루를 주로 사용하지만 처음엔 쌀가루를 이용하였는데 이는 개미나 새 또는 벌레 같은 미물들에게 보시하며 공생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인도를 떠나 와 한동안 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랑골리의 감동을 나의 삶 속에도 재현하고 싶었는데, 어디에서 찾으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감이 쉽게 오지 않았다. 얼마 전 문화예술회관에서 ‘랑골리’라는 주제 아래 설치미술이 전시되고, 그 옆에서 월드뮤직 싱어와 기타리스트가 협연하는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음향기기가 준비되지 않아 연주자는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계획된 것이었는지는 모르나 전시관 자체의 울림이 좋아서 감상자로서는 가공되지 않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공기를 그대로 호흡하는 느낌이라 아주 좋았다. 악보도 없이 꿈꾸듯 잠자듯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의 존재보다 싱어의 노래를 살려주던 기타리스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부부였다. 그날따라 바깥엔 억수같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방문객들을 위하여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손님들도 아낌없는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소리로 그린 ‘랑골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기획한 단체도 연출가도 연주자도 초대 손님과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한 랑골리를 꿈 꿨으리라. 연주가 다 끝나고 돌아서 나오며 앉았던 자리를 뒤돌아보았다. 거기 가슴 떨리며 하나가 되었던 시간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래도 좋으리. 오늘 그 댁 마당에서 또 하나의 랑골리를 보았다. 지난 대보름날엔 함께 달맞이 하자고 오라시더니, 이번엔 꽃 전갈을 보내오셨다.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 가득 새로운 계절의 옷을 입은 식구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키 큰 과실나무엔 조롱조롱 작은 열매들이 달려 있고, 예쁜 꽃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긴다. 키 작은 야생화는 수줍은 얼굴로 제 작은 키에 맞추어 낮게 앉아보라 한다. 텃밭엔 갖은 채소들이 온 몸을 내어줄 양 싱그러운 모습으로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 마당 한편에 작은 집에 사는 진돌이도 너무 반가워서인지 짖는 것도 잊은 채 꼬리만 흔들며 환영의사를 밝힌다. 그들의 환대에 내 마음이 환해진다. 푸른 하늘도 실컷 내려앉고, 울타리 너머 멀리 바다도 넘실대며 마당을 넘보는 듯하다. 구석구석, 부지런한 주인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디서 이렇게 예쁘고 착한 것들을 데려다 놓았을까. 정이 많으신가 보다. 부러움에 욕심이 많으신가 하고 괜히 짓궂은 생각을 했다가 피식 웃는다. 집안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산목숨을 잘 살게 해 주면 복 받는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은 사람까지 불러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시니 두 부부의 아름다운 공덕에 너무나 감사하고 고개 숙여진다. 하늘도 땅도 바람도 주인장의 복 쌓기에 크게 동조하는 듯 모든 것이 풍요롭고 평화롭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수많은 랑골리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찾아올 손님을 위해 어떤 랑골리를 만들고 있을까. 행여 소중한 것들을 맞을 준비가 부족하여 그대로 돌려보내는 건 아닌지. 누가 방문할지 나는 모른다. 가까운 사람의 얼굴일지, 신이 모르는 사람의 모습을 빌렸을지, 자연의 존재로 다가올지······. 행복을 안겨다 줄지, 불행을 갖다 놓을지, 그 또한 모른다. 다만 누구이든 진정한 사랑으로 그들을 맞을 랑골리를 그리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인도의 그 여인처럼. 우리가 살아 있어서 함께 행했던 유심한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무심한 시간에 다 지워지고 말지라도 말이다.   ▓ 심사평 ▓ 이양주의 <랑골리>를 신인상 수상작으로 추천한다. 인간의 삶은 일상을 어떻게 받아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의미의 차이를 갖게 된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수필은 당연히 ‘낯설게 하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양주의 <랑골리>는 인도의 여행에서 접했던 체험을 상기시켜 인간의 삶을 꿰뚫어내는 시선이 날카롭다. 마당이나 집 앞의 길에 색색의 쌀가루로 그림을 그려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인도 여인들의 전통미술에서 작가는 우리의 생명 또한 유한하고, 정성들여 최대한 아름답게 살아야 하며, 새나 개미 같은 미물들에게도 보시하며 공생해야 함을 읽어낸다. 그러기에 그는 유심한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무심한 시간에 모두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찾아올 그 누군가를 위해 랑골리를 실행할 준비를 한다. 언제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기에 초심만 유지한다면 세상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좋은 작품을 계속 내놓으리라고 믿는다. 정진을 바란다.<심사위원:김우종,라대곤,강돈묵,유인실> ▓ 당선소감 ▓ 돌이켜보면 나를 만든 건 땅 하늘 자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쓴다는 것이 아닐까. 글은 내가 쓰지만 내가 글을 쓰게 만드는 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서툰 필력이나마 세상의 속살을 어루만지며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함께 웃고 울고 싶다. <이양주> ▓ 약력 ▓ *경남 밀양 출생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제8호 인간문화재 이수자 *주소 ; 경남 거제시 옥포2동 *e-mail ; musicok4lov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