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를 하며                                                                                                                심 인 자 새 화분이 들어왔다. 한 눈에도 건강한 식물이 아니다. 바싹 말라 윤기라고는 없다. 고민에 빠진다. 받아들여야할지, 받는다면 어떻게 가꾸어야 생기를 되찾을지. 주인의 눈빛이 애절하다. 한 계절만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화분들을 둘러본다. 질서정연하여 흐트러짐이 없다. 관엽식물인 벤자민, 행운목, 관음죽, 테이블야자는 키가 커 맨 뒤쪽에 두고, 한창 꽃을 피워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 서양란, 영산홍, 안시리움, 시클라맨은 가운데 두었다. 납작 엎디어 있는 다육식물들은 고민할 것 없이 맨 앞쪽이 제 자리다. 어느 식물들 틈에 두어야 제격일까. 새로 온 화분 하나로 인하여 전체가 흐트러질까 걱정이다. 뒤쪽에 놓자니 키가 큰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키 작은 다육식물 앞에 둘 수는 없다. 고민 끝에 오가면서 늘 지켜볼 수 있도록 가운데 줄 가장자리에 화분을 두기로 했다. 기존의 식물들을 기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수월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다 파악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원하면 밖에 잠시 내놓기도 하고, 통풍을 원하면 바람을 쏘여 주기도 했다. 잘 자라도록 적절한 시기에 영양제를 먹이고 거름도 주었다. 어떤 식물에겐 물을 흠뻑 주지만 어떤 식물은 그 반대로 물을 적게 주기도 한다. 나의 적절한 조치에 다들 만족하는지 생기가 넘친다. 새로 온 식물이 걱정이다. 여전히 맥이 없다. 생기를 되찾을 때까지 오로지 관심과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름이 인시그니스라 했다. 잎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뚝하고 떨어진다. 다른 잎도 그렇다. 이 정도인지 몰랐다. 반 이상이 떨어져버렸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한시가 급하다. 화분 속을 파보니 흙이 온통 물기로 엉켜있다. 화분이 안 좋아 물 빠짐이 나쁜데다 계속 물을 주어 습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때문이다. 분갈이를 해주는 게 급선무다. 물 빠짐이 좋은 화분으로 바꾸고, 분갈이용 흙에 물 빠짐이 좋으라고 마사토를 섞었다. 썩고 상한 뿌리를 잘라내고 남은 뿌리가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여 식물을 옮겨 심었다. 이젠 지켜봐야 한다. 고통을 견뎌내고 생기를 찾을 수 있을지.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이다. 새 화분에 적응도 해야 하고 새 흙에 상처 난 뿌리를 잘 내려야 할 터이니. 억수 같은 비가 퍼붓던 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여자아이가 학원 문을 들어섰다. 사방을 훑어보는 눈망울에 산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상담을 하는 짧은 순간에도 가만 앉아있지를 못했다. 저 아이를 맡는다면 다른 아이들 공부까지도 방해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삼 개월만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책을 사정없이 밖으로 던져버리는가 하면 샤프 연필을 못 쓰게 한다고 망가뜨려놓기도 했다. 학원생들을 골리는 것은 기본이요, 큰 아이를 건드려 맞는 것도 예사였다. 자리를 지키는 것도 오 분을 넘기지 못했다. 얼마나 산만한지 정신이 없었다. 벌을 세워도 꾸중을 해도 들은 척 만 척 콧노래를 부르고 빤히 쳐다보며 비실비실 웃기까지 했다. 아이를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 학원생 다섯보다 이 아이 하나가 더 벅찼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 시간 먼저 문을 열었다. 떼지 못한 한글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글이 늦다보니 모든 것이 뒤처졌다. 아예 꼼짝 못하게 옆에 끼고 시켰다.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쳐도 이번엔 내가 들은 척 만 척 했다. 어쩌다 다른 학원생에 눈길을 주면 찰나다 싶어 달아나버렸다. 미운 마음에 내버려두면 끝내 학원에 오지 않았다. 데리러 갔다.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으면 돌아가는 척했다. 갔나 싶어 문을 열고나올 때 사정없이 낚아채 학원에 데려왔다. 숨고 찾기를 반복하는 사이 떠듬떠듬 유아용 동화책 한 권을 읽어갔다. 사계절을 보내며 얻은 결과였다. 이번엔 숫자와 씨름판을 벌였다. 받아쓰기에 숫자공부까지 해야 할 분량이 늘어나니 난리가 아니었다. 제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책상을 발로 차기도 했다. 가엾고 안쓰러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싶어 줄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오늘 물러선다면 내일 또 얼마를 더 물러서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 어느 날, 천둥번개를 쳐대며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문 앞에 아이가 서 있었다. 비에 흠뻑 젖어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었다. 나를 찾아왔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와락 아이를 안았다. 뜨거운 물로 몸을 닦아주고 젖은 머리를 말려주었다. 처음으로 머리를, 아니 온 몸을 내게 맡겼다. 자신의 몸에 손닿는 것을 가장 싫어하던 아이였다. 또 한 번의 사계절이 지나갔다. 소지품을 빠짐없이 챙기던 아이가 문득 물어온다. 가족도 아니면서 왜 내게 잘 해주느냐고. 가족은 아닐지라도 널 만났기 때문이라 답한다. 힘찬 분무질을 한다. 번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쪼여주고 통풍을 시켜주는 사이 그들은 청정이라는 온기로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