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크게 늘 듯…'위헌 여부' 논란
경제 민주화 관련 정책의 핵심 부문은 조세와 공정거래다. 이 중 공정거래 부문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규모 기업집단, 즉 대기업만 그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공정거래 부문의 변화는 조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덜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 정책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부문에서 어떤 변화가 이뤄지는지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공정거래 부문에서도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다. 무기는 현재 국회에서 개정이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현행법은 ‘부당 지원 행위’, 즉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부당성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회 정무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는 그 입증 책임을 기업이 가지고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이렇다. 공정거래법에서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 비율이 30%를 넘는 기업에 물량을 몰아주면 일단 부당 지원 행위로 추정한다. 그 후 해당 기업이 물량을 몰아준 기업과 거래해야 하는 정당한 사유를 제시해야만 그 추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기업이 직접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제재뿐만 아니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논의 중이다.

물론 이 같은 논의에 대해 재계는 ‘과도한 규제’라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기업이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같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력한 제재안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 24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이면 부당 내부 거래 관여를 추정하는 개정안 내용은 과잉 규제 논란이 있어 삭제해야 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또 공정위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다른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와 마찬가지로 계열사 간 거래의 부당성은 공정위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조문에 명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정위도 ‘너무 세다’는 입장
물론 공정위의 이 같은 방침이 공정거래 규제의 추진 여부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결국 개정안은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감사원장·조달청장·중소기업청장에게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이 이미 4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현행법에서는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전속고발권을 주고 있다. 쉽게말하면 공정거래법 관련법을 어기면 공정거래위원회만 이를 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은 이를 문제 삼아 재판에 넘길 수 없다. 공정위의 심의·의결이 1심 재판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정무위를 통과한 개정안에서는 앞서 언급한 3개 기관에 고발요청권을 주게 됐다. 즉 위 3개 기관에서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이 내용을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고발의 범위와 빈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과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처벌의 사례가 분명히 더 늘어나고 더 강화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이다. 지난 4월 10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 중 핵심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기존 하도급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술 탈취’ 한 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가 부당 대금 결정 및 부당 가액, 물품 구매 강제, 부당 위탁 취소, 부당 반품까지 확대됐다.

개정안은 또 ‘계속적 거래에서 원사업자(대기업 등)의 경영적자, 판매가격 인하 등 하도급 업체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로 불리하게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못 박았다. 계속적 거래는 ‘계약 기간 내에 이뤄지는 거래’를 뜻한다.

김석호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은 “원사업자가 제품 판매 부진을 이유로 자신의 경영상의 책임을 하도급 업체에 떠넘기는 것을 막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도급 업체들이 일방적인 계약 단가 인하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사업자가 납품 단가를 함부로 깎으면 하도급 업체의 경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사실이 드러나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과징금은 하도급 대금의 최대 2배까지다.

개정안은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 단가 조정 협의권을 부여하는 한편 이와 관련된 원사업자의 보복 행위에 대한 처벌도 대폭 강화했다. 현재 납품 단가 분쟁을 이유로 원사업자가 하도급 업체에 수주 기회를 제한하거나 거래를 정지하는 등 불이익을 주면 최대 1억5000만 원의 벌칙금이 부과되는데 이를 최대 3억 원으로 늘렸다.

개정안은 4월 중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처리될 전망이다. 공포 6개월 후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이르면 10월 말부터 적용된다.

‘하도급법’ 개정은 중소기업 유리

이 같은 법안의 도입에 따라 ‘갑’의 횡포에 대해 보다 확실한 견제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반대로 악성 하청 업체에 의한 소송이 남발돼 거래 질서가 문란해지고 대기업들이 과도한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는 게 재계 및 법조계의 의견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무엇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법제도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으며 심지어 과도한 재산권 침해 위험의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4월 22일 국회 정무위는 편의점 등 가맹 계약을 체결할 때 영업 지역을 설정해 신규 직영점이나 가맹점 설치를 금지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가맹본부가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에 부당하게 심야 영업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고 가맹점 사업자가 계약을 해지할 때 ‘1년 치 미래 기대 수익’과 같은 과도한 위약금을 점주에게 물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가맹점의 리뉴얼 비용을 가맹본부도 최대 40%까지 함께 분담하도록 했다.

기업 압박하는 또 다른 시한폭탄, 통상임금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돼…임금체계 ‘지각변동’

현재 추진 및 논의되는 경제 민주화 정책과는 별도로 ‘통상임금’ 이슈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의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시간급·일급·주급·월급 또는 도급금액을 말한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해고수당, 시간외·야간·휴일 근로 시의 가산수당, 연차 유급휴가 수당의 산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간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시간외 수당 등에 지급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좁게 인정해 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소송이 벌어지면 법원은 대체로 대부분의 복리 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등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게 인정해 왔다.

통상임금 이슈가 확대된 계기는 2012년 대구의 시외버스 업체인 금아리무진 사건에 대해 내린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대법원은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3년간 지급한 휴일, 야간 근무 수당 등을 달라진 통상임금 산정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현대로템·두산모트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4월 24일 현대·기아차 노조가 사측에 통상임금 범위 확대 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회사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 자동차 및 중공업 문야에서 생기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이 다양한 산업 부문으로 확대될 조짐이라는 것.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산업계 전체가 근로자들에게 환급해야 하는 체불 임금 규모가 약 38조 원 규모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