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인천에 입항한 세계적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다음달 5일까지 한국에서 고래 공동조사, 오픈보트(배 공개), 고래보호 활동 등을 펼칠 예정이다. '무지개 전사'란 뜻의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전세계를 다니며 환경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국내에 머무는 동안 거제환경운동연합 윤미숙 정책실장의 항해일지를 통해 그린피스의 활동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항해일지④ 3월25일]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갑판으로 나가 고개를 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름다운 서귀포항. 서귀포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섶섬 인근에 정박한 것이다.

남쪽에서 봐야 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는 한라산이 하얗게 눈을 이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주의 전설적 여신인 설문대할망! 우리가 왔수다게. 잘 살암수꽈? 어제는 예, 파도가 높앙 하영 고생핸마시. 잘 부탁허쿠다(설문대할머니! 우리가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어제는 파도가 높아서 정말 고생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손님 맞이 준비로 오전부터 분주하다. 제주도의 언론과 제주환경연합 활동가들이 함께 승선하여, '그대들은 어인일로 왔는고?' 라는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이다.

▲ 25일, 레인보우 워리어호 화물칸에서 기자회견 하는 모습.  
 
 평소에도 취미가 '쓸고 닦고 조이기'인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오늘따라 더욱 열심이다. 하다못해 난간 손잡이까지 닦는다. 평소에 세수를 잘 안하는 대원도 머리카락에 물기를 묻히고 세수한 티를 내며 싱긋 웃는다.

아침 9시. 배의 크레인을 작동시켜 고무보트 두 대를 내린다. 제주손님들을 모시러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해경 선박과 함께 10여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도착했다.

언뜻 창고로 보이지만 그래도 '브리핑 룸'인 고물아래 화물칸에 모여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데릭 선장의 환영인사와 환경운동연합 고래모니터링 팀장의 고래조사의 의미 소개, 리비의 한국연안 고래에 관한 간략한 브리핑, 데이브의 그린피스 활동소개 등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어민들은 고래가 어장환경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데이브는 "수산자원 감소 등으로 인한 어민들의 고충을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고래 때문에 해양 어족자원이 파괴된다는 말은 딱따구리 때문에 산림환경이 파괴된다는 말과 같다"라고 대답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모두들 떠나자 잠시 떠들썩 했던 선상에 다시 적막함과 긴 한숨들이 교차한다. 아마도 남은 일정과 고생에 대한 걱정들이리라.

 
 
▲ 바다위에 떠 있는 레인보우 워리어호  
 
오전 11시 20분, 배는 서귀포항을 출발해 성산 일출봉을 돌아 우도를 지난 다음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이자 액션코디네이터인 데이브는 속눈썹이 노란색이어서 특이한 인상을 풍긴다. 그린피스에서 23년간 일했다고 하니, 젊음을 다 바친 셈이다.

나는 문득 우리 활동가들이 떠오른다. 활동가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로 연명하며, 활동가로서 긍지를 갖고 바보처럼 열심히 일 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늘 생계와 노후대책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을 말이다.

고래야. 너무 커서 표적이 되는 바다고래야! 어쩌면 우리 세대에 영원히 작별할 지도 모르는 귀신고래야. 지구상에 고작 200여 마리 남은 귀신고래야, 너는 영원히 귀신이 되려나? 오늘이 6일째. 오늘도 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서귀포 연안에서 자주 출몰하는 돌고래들도 샛바람에 다들 고요한 곳으로 피신했는지 1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일반인인 문 선생이 칼칼한 찬바람속에서 고래를 찾다가 경상도 토박이 말로 거든다. "샛바람이 불면 고기들도 골 깨진다고 안나온다!"

배의 선두에서 찬바람속에 본의 아닌 눈물을 흘리면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훑어댔으나 해가 질 때까지 고래 비슷한 생물체도 만나지 못했다.

제주의 바닷빛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 짙은 에메랄드 빛 바다는 서귀포 앞바다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린피스 활동가들도 물빛이 아름답다고 탄복한다.

다시 밤이 찾아오고 바다위엔 둥실 보름달이 떴다. 선미에 높게 솟은 돛대와 초저녁 달이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어 흔들리며 몹시 아름답다. 부산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파도와 바람에 흠씬 얻어맞은 것처럼 피로하다. 배에서는 모두들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잠들게 된다. 왜냐, 텔레비전과 신문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또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책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상 일지를 쓰는 일이 마치 우주선에서 작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읽는 사람들은 차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배가 일렁거리는데다 시선을 활자에 고정시키면 속이 마구 울렁거려서 몇 번이고 멈추고 토기를 참으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을…. 그러다 한가지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윙크를 하면서 자판을 두들기면 좀 낫다는 점이다. 즉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만 뜨고 화면을 보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상태이다.<출처: 거제환경운동연합 윤미숙 정책실장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발표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