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⑤ 3월 26일]

"선박생활은 감옥과 같다. 한 가지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익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 일등항해사 오스카가 식당 알림판에 분필로 적어 놓은 글이다.

▲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탑승한 활동가들이 대청소를 하고 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제주도를 한바퀴 돌고 있다. 시속 7노트, 오늘은 총 140km에 이르는 해안을 돌며 고래를 관찰했다. 많을 때는 14개의 눈동자가, 적게는 6~8개의 검고 노란 눈동자가 해안을 훑고 있다.

날씨는 온종일 흐리다. 바다 빛깔도 당연히 흐린 회색이다. 회색 수면에 어쩌다 엷은 햇살이 비치면 그 번들거림은 마치 기름기가 잔뜩 묻은 프라이팬 같다.

제주도에 살 때 서귀포 해안에서 큰 무리의 돌고래 떼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직장 동료들과 낚시를 하다말고, 졸음이 가득한 따뜻한 시간(아마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에 먼 바다를 응시하다보면 살아서 펄펄 뛰는 돌고래 무리가 있었다.

그 많던 고래는 다 어디 갔을까

매우 빠른 속도로 점프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려가는 돌고래 떼를 만나면 우리는 당분간 낚싯대를 접어야 했다.

"야, 쟤들 좀 봐라, 100m 달리기 대회라도 하나보지?"
"아니여, 저거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릉께 글치, 왜 우리도 어릴 때 저러지 않았냐? '누구야 밥 묵자아!' 그러면 비석 치던 돌 저만치 던져버리고 냅다 달려들 갔잖여."

그 생생하고 역동적인 돌고래들의 유영을 우리는 보고 싶었다. 한 무리의 돌고래 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 온종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리운 것은 언제나 저만치 멀리 있지 않던가.

그 많던 고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다 먹어버렸다. 사람들은 우선 돈이 되는, 덩치 큰 고래부터 잡기 시작했는데 거대한 대왕고래(30m 이상)가 주로 그 대상이었다.

대왕고래가 사라지자 다음으로 큰 참고래와 보리고래가 사라졌다. 덕분에 참고래의 95%가 감소하였고, 보리고래의 수도 75%나 감소한 상태이다.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마지막 차례는 돌고래가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돌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서 먹고 있기도 하다. 돌고래를 몰이식으로 쫓아서 내만에서 죽이는 방법을 이용한다. 나는 만 전체가 온통 붉은 피로 출렁이는 사진을 보면서 '피바다'란 게 저런 것을 말하는 거구나, 실감했다.

20년간 보호 불구 고래 수 늘지 않아

마침내 1982년 세계 각국은 포경산업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고래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래잡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라는데 합의하였다.

그런데 포경금지 이후, 20년간의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의 수는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고래는 다른 물고기처럼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한다. 보통 한번에 한마리의 새끼를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2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좀처럼 개체수가 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그들이 사는 해양환경의 위험요소는 나날이 발전하여 어미는 물론, 그나마 낳아서 2~3년씩 길러놓은 새끼를 잃기 십상이다. 그물에 걸려서 익사하고(고래는 숨을 쉬는 포유동물임) 해양오염으로 병들어 좌초되고, 두꺼운 지방층에 유해화학물질이 쌓여 유전자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은 제주근해를 조사하는 까닭에 손전화가 작동됐다. 선명하게 올라가는 송수신 안테나를 보면서 모두들 입이 귓가에 걸린다.

아내와 연인, 부모님께 저마다 안부를 전하느라 아래갑판은 부산하다. 이메일을 하루에 딱 한번, 오후 8시 경에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바깥소식들이 고팠던 탓이다. 단절과 소통의 의미를 새삼 절감하는 시간이다. 유일한 외부 연락망인 손전화마저 통화권을 이탈하면 우리는 잠시 버려지고 잊혀진 사람이 된 느낌을 갖게 된다.

지루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숨기고, 열심히 생활하려는 한국 측 참가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내, 서울환경연합에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주방장 보조로 발탁되어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일하는 막내 '삼순이'(강은주)의 밝은 웃음이 압권이다.

그녀는 별명메이커다. 근엄한 데릭 선장은 '늙은 백상어', 이태리 출신의 그린피스 활동가 오스카는 독특한 그녀의 발음 때문에 '임뽀르딴뜨'(important), 50년 된 담배케이스를 소중히 갖고 있는 노년의 엔지니어에겐 '타피오 영감',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인 환경운동연합 마 부장은 '마님', 진중파인 환경스페셜 피디는 '개그피디 이피디'로 부르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이 '올리버' 혹은 '고방오리'로 불린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뽀빠이 만화의 올리버나 고방오리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녀의 모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시들시들해진 분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우리를 웃게 만든다.

오늘 식당의 알림판에는 처음으로 한국어가 씌어져 있다.

'진정한 성공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에머슨

[선상 인터뷰] 카타리나 니토(그린피스 활동가)        ▲카타리나 리토  - 국적은 어딘가. "이태리의 북쪽 지방 밀라노." - 그린피스 활동가가 된 지는 얼마나 되었나. 또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선원으로써 맡은 임무는? "7년 됐다. 이 배에서는 갑판을 맡고 있다." - 당신은 키도 크지 않고 덩치도 작지만 첫 눈에 워리어(전사)같다는 느낌을 준다. 힘들지 않은가. "(웃음) 나는 원래 바다를 좋아한다. 그린피스에 오기 전에도 보트 관련 일을 해왔고 작은 배의 선장이었다. 국제 요트경주에도 나간 적이 있다." - 주로 어떤 캠페인에 참여했었나? "많은 캠페인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쓰나미가 몰아친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벌였다. 또 수마트라의 산림파괴에 항의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 결혼은 했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며 자주 만나는가. "31살인데 결혼은 아직 안했다. 아직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웃음), 부모님과 오빠가 이태리에 있다. 1년에 1~2번 정도 만난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내가 그린피스 선원이 된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혹은 지향점이 있다면? "자연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친환경적으로 사는 삶이다. 나는 이일을 하면서 매순간 행복하다고 느낀다.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