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등장하는 대니 보일 감독의 공포영화
 

 '쉘로우 그레이브'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했다면, '트레인스포팅'의 속도감에 반했다면, 그리고 '브레스트 오프'를 보고 감동  이외의 무언가를 느꼈다면 이 영화를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트레인스포팅', '쉘로우 그레이브', '브레스트 오프', '비치', '인질'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회성 있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대니 보일 감독이 이번엔 공포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오는 9월 26일 개봉하는 '28일 후…'(원제 28 Days Later)는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영화이지만 그저 자르고 터뜨리는 액션에 바탕을 두기보다 인물들이 느끼는  서스펜스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다른 좀비영화와 달리 주인공의 입장에 빠져 손에 땀을  쥘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덕분이다.

    감독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좀비의 공포를 적절한 완급 조절동해 연출해 내고 있는 동시에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도  어색하지 않게 전달한다.

    첫 장면은 원숭이로 가득 찬 영국의 한 실험실에서 시작한다. 실험실에  잠입한 동물 보호주의자들의 눈에 원숭이들이 우리에 갇힌 채 실험 대상이 되고 있는  모습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

    원숭이들이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도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결국 이들은 원숭이들을 풀어주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전염병에  감염되기 시작한다.

    28일 후,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던 짐(실리언 머피)은 의식을 회복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한다. 길거리에 나가봐도 뒤집어져 있는 차나  쌓여  있는 시체 더미뿐. 게다가 어두워진 후 사람들을 찾으러 들어간 성당에서는 붉게  충혈된 눈에 미친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

    약사 셀레나(나오미 해리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짐은 이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 사람들이며 바이러스는 피를 통해 전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영국은 대륙으로부터 봉쇄된 채 황폐화해 있고 바이러스를 진정시킬 백신은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셀레나와 함께 숨을 곳을 찾아 방황하던 짐은 프랭크(브랜든 글리스)와 해나(미간 번스) 부녀를 만나 생존자들을 지켜주겠다는 군대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고민 끝에 라디오 방송이 나오는 맨체스터로 향하는 일행. 감염자들의 공격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군부대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곳에는 또 다른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

    물리면 똑같아진다는 전염성 측면에서 좀비라는 존재는 가장 극단의 상황에서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짐은 한때 이웃이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려 죽이고 프랭크는 감염되자 마자 딸이 보는 앞에서 동료들에게 죽는 운명이 된다.

    탄탄한 시나리오나 무리없는 연기, 긴장감 있는 연출외에 관객들을 공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버려진 거리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영화는 전염병으로 버려진 채 고립된 섬나라 영국을 소름끼칠 정도로 황폐한 모습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이 영화 속 거리를 걸어다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관객들은 113분의 상영시간이 지나면 한 4주 정도 공포 속을 헤매다가 나온  듯한 오싹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남녀주인공은 각각 아일랜드와 영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음악감독 존 머피가 음악을 맡았다.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