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에서 두번째 만난 긴부리참돌고래의 예쁜 모습  
  

[항해일지⑨ 3월31일]

3월의 마지막 날. 부산항 입항을 이틀 앞두고 있다.
환자가 속출했다. 선상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감기와 몸살을 돌아가면서 한차례씩 앓고 있다. 게다가 새로 명명한 '쌍안경병'까지 생겨서 안통과 두통이 극심하다.

쌍안경 병이란, 오랜 시간 눈을 혹사하면 생기는 병으로 눈과 머리가 아프다. 오랬동안 쌍안경을 통해 바다를 보고 있으면 거리감도 없어져 쌍안경을 내려놓아도 잠시 동안 계단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 '고래야 어디있니' 고래관찰중인 윤미숙(거제환경연합 정책실장)  
 
어제는 드디어 몸살이 심해져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머리로 할 수 있는 온갖 청승(예를 들면 이대로 열이 올라서 오늘 밤이 죽으면 어쩌나, 수장시켜 달라고 유서라도 써야 되는 거 아닐까. 죽은 사람을 바다에 던지면 처벌 받으니 안 되겠구나. 우리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까… 등등)을 떨다 지쳐 잠이 들었다. 덕분에 항해일지도 못썼다.

이렇게 배를 탄지 열흘이 넘자 다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짜증도 나련만 서로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애써 굳은 표정을 감추려 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고맙다. 하지만 가족이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대다수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자주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본다. 더불어 국적불명의 식사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31일 오전 해양경찰청과 통화를 했다. 해양경찰청은 항로와 항해위치 등을 묻고 안전운행을 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배에서 내리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해안 멸치라도 선물하고 싶다고 했더니 다들 웃는다.

어제는 이 와중에도 기름에 깃털이 젖은 갈매기 한 마리를 구조했다. 아마 갈매기도 저를 살려줄 사람들인 줄 알고 왔나보다. 날지 못하고 배 갑판 위 밧줄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리비가 데려왔다. 모두 모여 갈매기 깃털에 묻어 있는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갈매기는 우리의 모습에 놀랐는지 노란 주둥이로 콕콕 쪼아댄다. 그런 갈매기를 달래는 리비의 모습이 꼭 새엄마 같다. 갈매기는 지금까지 선실에서 잘 보호하고 있다. 내일은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동해 포항에서 선상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를 오가며 고래 관찰을 하고 있다.

고래가 발견 될 때마다 들리는 “꺄악 꺅!” 소리만 들으면 유명 가수의 공연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작업에 열중중인 그린피스 활동가들  
 
  ▲ 야생의 고래를 만나는 감격적인 순간  
 
 
어제는 육지에서 고래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던 ‘짐’이 다시 배로 합류했다. 덕분에 선상이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선원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 닦고 조이고 기름 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신입자원봉사자들은 선배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훈련을 받고 작업에 임한다.

레인보우 워리어호에는 여성일과 남성일에 대한 구분이 없다. 여성들도 20m 높이의 돛대에도 기어오르고, 맨발로 갑판을 누비며 기름칠을 하기도 한다.

다들 정해진 위치에서 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마치 군대 같다. 50년도 더 된 이 배는 아마 앞으로 50년은 끄떡없을 듯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이 항해의 마무리 일지를 올리게 될 것 같다. 시원섭섭하다.

`[선상 인터뷰] “고래를 위해 살다” 해양생물학자 '리비에어'     ▲레인보우호를 찾아온 병든 갈매기를 돌보는 리비에어  리비에어(Libby Eyre). 그녀는 참 작다. 서양인답지 않게 자그만 몸매와 키를 가졌다. 호주출신의 해양생물학자. 작은 체구 때문인지 37살인데도 아직 소녀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그의 고래 사랑은 한 없이 크다. 그는 고래를 위해 태어난 것 같기도 하다. 고래관찰에 참여한 한국측 팀원이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그는 더 일찍 일어나 뱃머리에서 바다를 살피고 있다. 오는 2일, 그는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부산항에 입항하면 한국에서의 고래관찰을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린피스 비상근 활동가인 셈이다. 리비는 20년 동안 고래를 조사한 베테랑으로 이번 한국행도 직장(맥콰리대학 박물관 큐레이터)에 휴가를 내고 왔단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고래들의 대모 ‘리비에어’를 TV에서 볼 날도 멀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 고래관찰에 참여해보니 노동강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리비는 힘들지 않나. “힘든 게 사실이다. 처음 고래관찰을 시작했을 때는 눈과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숙달되다보면 괜찮다. 직업의식이라고나 할까.” - 어느 지역을 관찰했으며 (고래관찰을) 얼마나 했는가. “1985년부터 시작했으니까 20년 전부터 했다. 인도양의 고래관찰을 많이 했고, 호주에서 인도양을 거쳐 지중해까지, 모리셔스에서 싱가폴, 통가, 호주 등에서 관찰했다. 아주 어릴 때 도시에서 태어나 바닷가로 이사왔는데 그때부터 돌고래를 비롯한 고래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이 몹시 궁금했다. 힘든 일이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고래와의 만남을 꼽는다면. “작년, 통가에서 고래조사를 할 때였다. 마침 고래생태관광 프로그램이 있어 물속까지 에코가이드를 하는 중에 굉장한 경험을 했다. 몇 사람들과 바다 속으로 내려갔을 때, 어미와 함께 쉬고 있는 혹등고래를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새끼고래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한쪽 팔(지느러미)로 끌어당겨 배위에 올리고는 지느러미로 꼭 감싼 뒤 한바퀴 돌더니 슬며시 놓아주었다. 졸지에 고래에게 안겨버린 셈이었다.” - 무섭지는 않았나. “전혀. 다만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나중에 함께 물속에 내려갔던 관광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서 조금 더 놀랐다. 어미고래는 새끼고래가 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고, 새끼고래도 나를 안고 한바퀴 구르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카메라를 봤다.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어떤 교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가끔 힘들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며 힘을 내곤 한다.” - 우리나라 연안의 고래관찰과 함께 해양환경도 함께 둘러보았는데 어떤가. 특히 동해는 과거에 경해라고 불렸을 정도로 고래가 많은 바다였다. “고래가 다시 돌아와 살기에는 너무나 위협적인 요소가 많다. 좁은 해역에서 이렇게 과도하게 밀집된 어로행위를 하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못 봤다. 밀집해 있으면 어자원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나도 다시 한국의 동해가 경해가 되길 바란다.” - 해양학자 특히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래나 돌고래를 그만 죽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고래는 해양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이기도 하지만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고래에 관한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비록 사라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귀신고래나 J-개체군으로 구별되는 한국의 밍크고래, 특히 참돌고래나 상괭이는 한국고유의 것이다. 호주나 미국 등에는 없는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 앞으로도 계속 고래와 함께 하는 삶을 살 것인가. “그렇다. 내 운명인 것 같다. 난 그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고, 그들을 돕고 싶다. 그린피스와도 고래보호 활동을 계속 할 것이다. 난 그린피스를 신뢰한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거제환경운동연합 윤미숙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