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동해안 울진 앞바다 왕돌초에서 촬영한 긴부리참돌고래  
 
 [항해일지⑧ 3월 29일]

드디어 만나고야 말았다.
고래관찰에 나선지 9일째. 오후 3시 30분경 동해안 울진 앞바다 '왕돌초' 남쪽 3마일 해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돌고래 떼를 만났다.

앞서 오전 11시 30분 4m정도 크기의 밍크고래를 잠시 만났으나, 그야말로 순식간에 빛나는 검은 등만 보여주고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두 입맛만 다셨다.

점심메뉴로 검은콩과 노란콩이 식탁위에 나란히 올라오자 "오늘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메주 쑤나 보다"라고 투덜대며 점심을 먹은 후 모두가 선장실 앞 갑판에 올라 바다를 주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전방에 정어리 떼라도 몰린 것일까. 갈매기 떼가 수상하게 모이는가 싶더니, 심상찮은 물보라가 튀기 시작했다. 모두 돌고래가 있는 쪽으로 쌍안경을 들이대며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다.

엄청난 돌고래 떼다. 사방에서 물보라가 튀었고 갈매기도 덩달아 날아올랐다.
호기심 많기로 유명한 돌고래들은 이내 이 수상한 배로 다가왔다.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불원천리 달려온 배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뱃전 가까이에 모여든 돌고래들은 누가 제일 빠른가를 뽐내듯 경주를 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그들은 '긴부리참돌고래' 무리였다. 약 2~3백 마리쯤 될까.

보트 가까이 다가온 돌고래들은 자신들의 날렵한 몸매자랑을 시작한다. 돌고래들은 수면위로 솟구치며 점프에 점프를 반복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탄성이 터진다. 바쁘게 돌아가는 카메라 셔터 소리. 
  ▲ 오늘 동해안 울진 앞바다 왕돌초에서 촬영한 긴부리참돌고래  
 
 우리는 1시간 정도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빙 둘러싼 돌고래 무리와 함께 푸른 동해의 물살을 가르며 유영했다. 돌고래는 솟구칠 때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도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오늘 돌고래를 보고 느낀 것인데 돌고래의 동그랗고 상냥하게 생긴 눈은 우리 야생 조류인 ‘붉은오목눈이’와 많이 닮았다.

행복했다.
돌고래 떼와 조우한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몸과 영혼은 가벼운 깃털이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다. 며칠동안 쌓였던 피로와 짜증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이런 상황을 선상 '분위기 평가위원회' 회장격인 문 선생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내가 병원 문 닫고 고래보러 간다 카이, 나보고 머리가 우예된기 아니냐꼬 카더마는 지금 생각하이께네 내사마 그 사람들이 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구마는!"
병원 문을 닫아서 잃는 수입보다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란 뜻인 것 같다.

모처럼 조사원과 취재원들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번진다. 저녁 식사시간, 우리의 행복은 절정에 달했다. 후~ 불면 날아다닐 것 같은 길쭉한 쌀 대신, 제대로 익은 한국산 쌀밥과 김치, 게다가 장조림 맛과 흡사한 소고기 스테이크가 식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수자선생이 싸주신, 아껴두었던 물김치까지 꺼내서 먹었다.

배는 울진에서 회항하여 다시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를 오가며 항해하고 있다.

하늘은 다홍빛과 흐린 자주색으로 바뀌었다가 옅은 보라색으로 서서히 물든다. 그 위로 주홍색 동그란 해가 선명하게 보인다. 동해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저리도 참혹하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선상 인터뷰] 인도 출신의 변호사 '딜립 꾸마르'          어딜 가나 다수의 무리 속에는 말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의 가치가 불분명한 사람. 그러나 꼼지락거리며 자기가 맡은 일은 다해내는 사람. 모두 14개 국적이 섞여 있는 이 배에도 수다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한 사람도 있고 잘 삐치는 사람도 있다. 딜립은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유난히 조용한 사람중 하나였다. - 30살인데 결혼은 했나? 가족들이 보고 싶지는 않은가. "했다. 딸도 하나 있다. 아내도 변호사이다. 가족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닌가. 매우 그립고 보고 싶다." - 변호사라고 들었다. 왜 변호사 일을 하지 않고 그린피스에 들어와 힘든 일을 하는가. "봄베이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학 석사를 했고, 이어서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그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변호사 자격과 학위를 따기 전부터 인도에서 인권단체 관련한 NGO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1999년 구자라트 지역에서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화공약품처리 공장에서 장기간 불법 투기해 토양과 물을 오염시켜 이를 조사하여 폭로하였다. 이때 같이 일을 하던 동료가 그린피스 회원이었는데 그의 소개로 뭄바이에 입항하는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자원봉사(통역)를 맡으면서 인연이 되었다. 참고로 인도에는 지난 2000년에 그린피스 인도지부가 생겼다." - 공부를 잘했나보다. "(웃음) 사실이다. 대학 때도 거의 매번 전체 수석을 했다." - 고향이 바닷가도 아니고, 내륙지방 출신인데 긴 항해에 선원생활까지...힘들진 않은가. "어촌출신도 아닌데 첫 항해 때부터 배 멀미 한번 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어릴 때 '작 쿠스토'라는 프랑스 해양생물학자의 책을 읽고 나도 그와 같은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나. 특히 간디선생이 '신의 아이들'이라는 별도의 계급을 부여한 '하리존'계급에 대한 처우는 언제쯤 개선이 될 것 같은가.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6000년 전부터 이어진 오래된 문화다. 처음의 카스트제도는 지금처럼 고정된 계급관념이 아니라, 부족에서 각각 정해진 소임을 뜻하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최상위 계급으로 알려진 브라만도 당시에는 부족을 가르치는 선생, 한국의 전통으로 치면 훈장선생과 비슷했다. 임금도 받지 않고 지혜를 나누는 사람. 그래서 각각의 소임이나 능력에 따라 계급의 이동도 가능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서 고정화 되어버려 하층계급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폐단을 낳았다. 우리는 겨우 50여년 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간디선생도 말했다. 법률이나 정치로 사람의 사고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도 많이 좋아진 상황이고, 앞으로도 천천히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 지금의 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도인의 관점(웃음)에서 말하자면, 지금의 환경문제는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으로 인해서 초래된 환경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어쩔 수 없고,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나오면 그때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면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해당 사업들은 중단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현재 생활 방식은 낭떠러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생활방식을 바꾸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 글 윤미숙·통역 안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