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안의 황금어장으로 이름난 해역에 이르자 트롤어선을 비롯한 선박이 보인다.  
 
 [항해일지⑥ 3월 27일]

수평선은 선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했다. 쌍안경으로 수평선을 살피다 보면 혀 모양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혀의 모양을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돌기들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꼭 그것과 같다.

항로는 북동쪽. 제주를 떠나 남해안을 지났다. 오후 7시 현재 거제도 남쪽 해상 30km 지점을 지나 동진하고 있다.

온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는 몸이 아파서 얼굴을(평소에도 그다지 부드러운 인상이 아님) 찡그리며,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인뽀르딴뜨' 오스카가 다행히 기운을 차려 선장실을 지키고 있다.

항해 1주일,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

몸이 아프면 어린애처럼 짜증내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열이 39℃인데도 쉬지 못하고 꼬박 제 할당 시간을 채우게끔 하는 배의 엄격한 규칙 적용에 다시 놀랐다.

다행이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아서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파도가 높아 쌍안경으로 고래를 관찰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도 고래관찰은 계속된다.

남해를 지나 욕지도, 상노대, 좌사리도, 국도, 매물도를 지났다. 낯익은 이름들이다. 남해안의 황금어장으로 이름난 해역에 이르자 아니나 다를까, 트롤어선을 비롯한 선박 10여척이 보인다. 비 오는 바다에서 조업 중인 어선을 만나자 공연히 반갑다. 고기 많이 잡히나요? 안 들릴 줄 알면서도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질러도 본다.

항해를 시작한 지 1주일. 모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많은 사람들은 눈만 들면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갈매기가 날고 있다고 한다면 대부분 "와! 좋겠다"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우, 죽겠다"라고 말한다. 고래가 사람 잡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가 오고 가기도 한다. 갑판에 비가 내리니 선장실에 들어와 '웨일와칭'에 참여하는 무리가 많아진다.

눈은 쌍안경을 통해 바다에 꽂아둔 채 모두들 입만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먹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오늘 아침에 먹은 양고기는 정말 죽여주는 맛이었다고, 지금도 비위가 상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올 6월 상업포경 재개 노려

포경이냐, 보존이냐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논하다 보면 결국 먹이의 문제로 결론이 난다.

일본은 포경재개를 위해 수년 전부터 로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해양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작은 국가들을 국제포경위원회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고, 돈으로 표를 매수한다는 사실은 이미 국제사회에 알려질 만큼 알려진 것들이다.

정작 국제 포경위원회에서는 '연구용 포경'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에게 "더 이상의 연구가 필요치 않으니 포경을 그만하라"고 권고해도 일본은 여전히 고래잡이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6월, 울산에서 열리는 IWC 회의를 상업 포경 재개의 기회로 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의 어느 조사기관이 최근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질문에 답한 일본 국민들의 70% 이상이 고래 고기를 먹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패스트푸드 세대들은 고래의 사랑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고래 고기에 대해 혐오감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고래가 생각하는 사람은?... '약탈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왜 포경을 재개하려고 애쓰는가. 결국은 돈과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고래유통업은 일본에서 여전히 고수입이 보장되는 장사이다. 고객의 폭을 좀더 확산시키기 위해 초등학생용 식단에 고래 고기를 배정할 정도로 치밀하게 파고들고 있다고 한다.

포경을 주장하는 일본의 논리를 좀더 냉정하게 간추리자면, 사람의 먹이(돈)를 고래에게 빼앗기지 않고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하느냐, 그런 논리다.

언제부터 사람과 고래가 먹이 경쟁을 하는 슬픈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바다의 자원을 얻어먹는 쪽은 우리 인간인 것만은 사실이다.

고래가 먹이를 먹는 것을 '피해'라고 받아들이면, 우리가 잡아가는 자신들의 양식을 두고 고래는 뭐라고 할까. 아마도 '약탈자'라고 하지 않을까.

오늘로 벌써 10일째, 무지개 전사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아름다운 한국의 연안을 돌며, 무지갯빛 신호를 계속 쏘아 보내고 있다.

그대 들리는가, 위태로움에 처한 덩치 큰 저 바다동물, 고래를 함께 살려보지 않겠느냐는 외침이.

[선상 인터뷰] 그린피스 노활동가 '타피오 유하니 페카넨'(58세)      ▲타피오 유하니 페카넨  우리가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승선하고도 사나흘쯤 지난 후였다. 첫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도 그는 없었다. 어느 날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름기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식당 한쪽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그를 처음 보았다. 인사를 건네도 짧은 대꾸만 할 뿐, 일부러 말을 걸거나 동료와 수다를 떠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혼자 식사를 하고, 엔진룸으로 가서 일하고 잘 시간 되면 잔다. 그는 50년이 넘은 이 배가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한 엔지니어로, 선박의 엔진 소리만 듣고 있어도 어디가 아픈지를 안다고 한다. 그의 작업실 주변에는 그의 평소 생활 습관을 대변하듯 철저한 정리정돈이 이루어져, 망치를 걸어야 할 곳에는 망치의 그림이 바탕에 그려져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저 노인의 존재,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 맑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얼핏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차갑고도 과묵한 얼굴, 모든 것을 초연한 듯한 무표정을 가진 타피오 영감을 오늘은 결국 일부러 만나고야 말았다.(말을 아끼는, 혹은 언변을 즐기지 않는 사람 특유의 짧은 답변으로 인터뷰가 무지 어려웠다.) - 핀란드가 고향이라고 하는데 고향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 "남부해안지방이다. 떠나온 지 오래 돼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 그린피스와는 언제 무슨 일로 인연을 맺었나. "한 20년 정도 됐다. 내가 살던 지역에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생했었다. 제지공장에서 과다하게 사용하는 염소계 유해화학물질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불매운동은 물론 수출까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그린피스가 개입해서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린피스에 몸담게 되었다." - 이 선박의 모든 선원들이 그러하듯 타피오씨도 활동가와 엔지니어를 겸하고 있는데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선상생활이 힘들거나 지칠 때는 없나? "전혀. 사는 것이라는 게 어디서나 스트레스도 있고, 지치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런 것들로 인해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 선상생활에서 보람 있을 때나 특별히 기쁠 때가 있나. "없다. 특별히 힘든 일도 없고, 또 기쁜 일도 없다. 인생이란 다 그렇고 그렇다." - 가족은 어떻게 되나. 혹 집에 가고 싶다거나 가족이 그립지는 않은가. "가족은 없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선원에겐 향수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선원이 못된다. 나는 그냥 '바다 사람'이다." - 어릴 때 이야기 좀 해 달라. "어릴 때는 지금보다 살기 좋았다. 환경적으로도 오염되거나 위험요소도 없었다." - 안경다리를 왜 끈으로 연결해서 머리 뒤까지 묶어서 쓰고 있나? "엔진룸에서 작업은 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한다. 그러니까 안경다리가 귀에만 걸쳐져 있으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낡아서 못 입는 팬티 고무줄을 재활용해 테이프로 감아서 고정시켜서 쓰고 있다." - 3개월의 항해를 마치면 다음 승선 때까지 보통 육지에서 생활하는데 육지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특별한 취미가 있나? "내 취미는 재활용이다. 또 그것이 나의 삶이다. 내가 물건을 사는 일은 절대 없다. 그린피스와 만나기 훨씬 전부터 돈을 주고 물건을 산 적은 거의 없다.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주운 물건을 재활용해서 내 손으로 고쳐 쓰거나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핀란드는 부자나라다. 사람들은 뭐든지 버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것들을 주워서 재활용하고 되팔면서 생활해 왔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육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멀리 갈 필요가 있을 때는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이용한다. 지구상에는 이미 차가 너무 많다. 나는 자전거 한 대면 충분하다." -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명예롭게 죽는 것이다. 병들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고 깨끗하게 죽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신은 하나가 아니다. 신은 많다."  <거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윤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