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민 3천여명이 거제의 삼성 대우조선소 등에 출퇴근하면서 통영 경제가 거제에 얹혀가고 있다고 한산신문이 1일 보도했다. 한산신문은 통영시민들의 거제행 출퇴근길을 현장취재하고 통영 실 경제활동인구 10%가 돈 벌러 거제로 향하면서 통영 경제의 거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한산신문 보도내용이다.

▲ 매일 아침 새벽 6시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행 통근버스에 오르는 이들. 하루 평균 죽림을 경유하는 버스만 7대에 달한다.

#이제는 익숙혀진 죽림의 새벽 풍경

살갗에 닿는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25일.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40분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죽림 한선파라빌리지 입구 대로변으로 회색 점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약속이나 한 듯, 인도를 따라 자연스레 줄지어서는 이들. 왼쪽 가슴팍에는 하나같이 파란색 타원형에 흰색 글씨로 '삼성중공업'을 새겼다. 거제조선소행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무리다.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한 발짝 남짓의 공간을 돌며 작은 원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이 덜 깬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어둑한 주변 풍경 속에 유난히 빛을 발하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인도 경계석에 걸터앉아 무심히 잠깐의 망중한을 즐긴다.

10여 분만에 100여m 남짓의 긴 대기줄이 만들어졌다.

6시를 갓 넘기자 45인승 대형버스 1대가 대기줄 시작점에 맞춰 섰다. 버스 앞 유리에는 '공장정문'을 새긴 안내판이 불을 밝혔다. 출입구가 열리자 앞선 이들부터 차례, 차례 버스에 오른다. 이내 '만차'다.

곧장 또 다른 버스가 와 닿는다. '죽림한선-한진로즈힐-롯데마트-청구A-동남A'란 표지판이 붙었다. 일종의 노선 안내도다. 이 버스도 순식간에 만원이다. 빈자리가 없는 듯 끄트머리에 오른 3명은 아쉽게 발길을 돌린다.

버스 2대에 나눠 탄 인원만 90명. 하지만 대기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정원을 채운 버스가 서둘러 출발하자 이번엔 버스 3대가 연거푸 뒤따른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지루한 기다림에 지친 듯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길었던 대기열도 빠르게 줄어든다.

6시30분 정각, 만차된 2대가 먼저 자리를 뜬다. 나머지 1대도 마지막 지각생을 담아 싣고는 35분께 거제로 출발한다. 조용히 분주했던 30분여, 짙게 깔렸던 어스름도 어느새 사라졌다.

#통영 토박이의 거제 진출기

통영에서 나고 자란 A씨(40). 서른을 넘겨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지역 중소조선소를 돌며 용접일을 배웠다.

블록 제작물량을 떼와 작업하는 하청업체였지만 조선경기가 한창 좋던 2009년, 2010년까지만 해도 매월 적게는 300만원, 잔업이나 야근이 많을 땐 500만원까지 손에 쥐었다.

그런데 지난해들어 수입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일한만큼 품삯을 받는 돈내기 작업인데 조선업 침체로 일거리가 빠듯해 졌다.

견디다 못한 일부는 일거리를 찾아 무리를 떠났지만 그는 남았다. 조만간 경기가 회복될 거란 기대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사정은 더 나빠졌다. 중소 조선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러다 올해 소속된 하청업체가 문을 닫았다. 월급도 3개월째 못 받은 터였다.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만 둘인데다 집 장만하느라 빌린 대출금도 3천만원이상 남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지만 통영에선 일자리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지역 조선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비슷한 수준의 인력들이 차고 넘쳤다.

결국, 거제로 눈을 돌렸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업체 중 한 곳에 지원했다. 거제 역시 통영에서 유입된 인력들로 포화상태인 탓에 보통 경쟁률이 상당했다.

예전 같으면 알음알음 입사가 가능했지만 서류심사, 면접에 이어 2차례의 실기시험까지 통과해야 했다.

그 역시, 한 번의 좌절을 맞본 후에 겨우 '삼성맨'의 자격을 얻었다.

그때가 올해 4월 중순께다. 이후 그는 매일 새벽 5시55분이면 무전동 전자랜드 앞에서 거제행 통근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는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 아직도 일자리가 없어 몇 달째 놀고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다"며 "같이 출근하는 사람이 우리(아파트) 동에서만 스무명이 넘는다. (통영)토박이지만 요즘엔 거제가 남의 동네라는 생각도 없다"고 했다.

통영 실 경제활동인구 10%, 돈 벌러 거제로

통영 경제의 거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산업의 축을 이룬 수산업과 조선업의 동반 침체로 지역 경제가 발전동력을 상실한 가운데 삼성과 대우, 양대 조선소로 대표되는 거제 경제에 얹혀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통영에 생활 터전을 잡고도 거제지역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인원만 하루 수천여 명, 지역 경제활동인구의 1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거제서 벌어온 각종 재화가 통영의 체감경기를 좌우하고 지역 상권도 이들의 소비패턴에 의지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경제적 종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이하 삼성)와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에 따르면 9월 현재, 총 60여 대의 통근버스가 통영지역 근로자들을 거제 조선소로 실어 나르고 있다.

통영과 가까운 삼성으로 향하는 차량이 50여 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대우로도 10여 대가 운행 중이다.

이들 버스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인구집중도가 높은 무전 매립지와 죽림매립지를 비롯해 시내 주요도로 등 정해진 노선을 돌며 근로자들을 태운다.

버스 1대 정원이 45명인 점을 감안할 때 2,700명의 근로자들이 매일 거제로 출근한다는 계산이다.

버스 임대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모든 차량이 정원을 채우고 운행한다. 협력업체의 경우, 자체 통근버스를 운행하기도 하는 만큼 실제 운행 차량은 이보다 많다"고 했다.

여기에 개인 카풀(Carpool, 승용차 함께 타기) 인원도 상당수다. 일련의 인원을 모두 합칠 경우, 줄잡아 3천여 명의 근로자가 거제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남지방통계청 통영사무소(소장 김명렬)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8월24일 기준으로 잠정 집계된 통영지역의 경제활동인구는 총 6만6천여 명이다.

경제활동인구는 15세 이상의 인구 가운데 노동 능력이나 노동 의사가 있어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과 같은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인원을 의미한다. 취업자는 물론, 실업자도 포함된 수치다.

통계에 나타난 통영의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수는 6만4천여 명이다.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지역주민의 5%, 100명 중 5명이 거제지역 조선소에서 돈을 벌어오는 셈이다.

지역 경제단체 관계자는 "통계에 제시된 경제활동인구는 단순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한다. 때문에 실제 취업활동인구는 4만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전체 근로자의 10%정도가 거제에 기대 생활하고 있는 게 된다. 상당한 수치다"고 설명했다.

통영지역 일부 매장 "거제사랑상품권 받아요"
경제 종속화 우려도 "경제 자립 방안 찾아야"

그동안 지역 경제를 이끈 중소 조선업이 몰락과 수산업의 침체로 이들이 벌어오는 재화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삼성과 대우의 평균 연봉이 4,000만원대의 고소득 직종임을 감안할 때, 이들이 거제에서 벌어오는 현금만 한해 120억원대에 달한다. 정기 상여금, 연말 성과금까지 합치면 150억원대를 훌쩍 넘긴다.

지역의 경기 지표나 일반 상인들의 체감경기가 이들의 소비 심리나 패턴에 일정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일부 상가에서는 '거제사랑상품권 받습니다'란 안내문을 내걸었다.

삼성과 대우가 명절 직전 총 51억원 상당의 관련 상품권을 소속 근로자들에게 나눠준다는 소식에 내심을 기대를 건 것이다.

하지만 해당 상품권은 거제시가 발행한 것으로 거제지역 내 가맹점에 한해 매입과 환전이 가능하다.

당연히 통영에는 가맹점도 없고 현금으로 환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일부 매장은 궁여지책으로 매입에 나서고 있다.

한 의류점 관계자는 "받으면 안된다는 건 알지만 경기가 너무 안좋다 보니 그거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정이었다"며 "평소에도 '받아 주냐'고 많이 묻는다. 명절을 맞아 많이 풀린다고 해서 우리도 일부 받았다. 지역 상가들은 대부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적게는 수십만원 많이 받은 곳은 수백만원어치도 넘는다"고 했다.

이렇게 매입한 상품권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되팔거나 전문 환전상을 통한 매매 거쳐 환전한다.

그는 "인터넷 카페 등에 판매글을 올리면 금방 팔린다. 15%내외의 수수료를 떼고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곳도 있다. 환전은 어렵지 않다"고 귀뜸했다.

이처럼 지역 상권조차 거제의 경제동향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지역 경제의 종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역 고용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조선소가 몰락하면서 거제로 향하는 근로자들이 늘었고 반대급부로 이들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이는 곧 통영의 경제가 거제의 경기에 좌우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생할 수 있는 경제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단기적으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의 자주권을 잃게 되고 특정 지역이나 기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자주권 회복을 위한 산업기반 확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한산신문 김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