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네놈이 내 딸을 죽였느냐?                                                         윤정문(울산지검 옴부즈만. 전 강남교육장)   황희 정승이 집에서 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던 중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두 마리의 쥐가 선반 위 접시에 담아둔 배를 운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찮은 쥐가 합동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음이 신기해 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여종의 울음소리에 또 다시 잠을 깼다. 여종은 나들이에서 돌아온 정경부인(貞敬夫人)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네가 먹지 않았다면 선반 위에 놓아둔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바른말 할 때까지 치겠다” 며 우격다짐하는 매질은 계속되었다. 흐느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안쓰럽게 여긴 황희 정승이 진실을 말해주려고 일어서는 순간 매를 못 이겨 허위자백하며 용서를 비는 여종의 처절한 호소에 황희 정승은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아픔을 느꼈다. 황희 정승은 곧 바로 입궐하여 임금께 조금 전 집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의 진상을 아뢰고 갇혀있는 죄인 가운데 범죄의 물증이 확실치 않은 죄인들을 방면해 줄 것을 간청했다.   효봉(曉峰) 스님은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한국인으로 최초로 판사가 되어 36세까지 10년간 법관생활을 하던 중 평양 복심법원(고등법원)에서 그가 최초 내린 사형선고가 그 후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오판으로 판명되었다. 판사직에 회의를 느끼고 그 길로 입은 옷에 맨손으로 엿판 하나를 매고 팔도강산을 방량하게 된다. 38세에 스님이 되어 금강산 법거암 토굴 속에서 1년 6개월 만에 불도를 터득하고 79세로 열반하기까지 불도에 정진하면서 살다 갔다.   1948년 윤대룡 감독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탈옥수를 숨겨준 것을 오해한 남편이 칼부림을 하다 자신의 실수로 찔려죽게 되자 여선생은 살인죄로 검찰에 송치된다. 마침 담당 검사는 여선생의 초등학교 재직시절 극진히 돌봐준 가난했던 학생이었다. 검사는 재판장에게 그녀에게 죄가 없음을 밝혀내어 무죄로 석방하는 내용이었다. “억울하게 남편을 죽인 살인죄로 몰렸으니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더냐” 변사의 목소리는 당시 많은 관람자들에게 심금을 울려주었던 한 장면이었다.   얼마 전 대법원은 3년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자 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건이다. 다만 절도 등의 혐의 일부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경찰은 차음엔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얼마 뒤 피의자가 사망보험금 2억 원을 받고 잠적하는 등 수상한 정황이 발견되면서 재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1심은 유죄로 2심은 무죄로 선고했고 마지막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사망자 부모는 법을 못 믿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범죄 사실이 인정되려면 심정적 및 정황만으로는 어렵고 유죄를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사망자의 얼굴 등에서 저항한 흔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제출된 증거 자료만으로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主張)하는사건을 판사가 제3의 입장에서 심판하는 것이다. 재판결과에 얼마나 승복하느냐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수가 항소율이다. 1심 재판에 불복해 고등법원 재판을 청구하는 비율을 말한다. 민사재판은 2002년 39.5%에서 계속 늘어 2011년 44%가 됐다. 형사재판은 항소율이 66%로 더 높다. 현재 범죄 확정은 증거 제일주의다. 확정된 증거나 증인이 없으면 죄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도 안 되고 죄가 있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해도 안 된다. 공판중심주의가 이런 뜻을 담고 있다.   허위 자백으로 선량한 사람을 죄인으로 오판해서도 안 된다. 백사람의 죄인 중에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그 기반의 요체가 바로 정확한 법의 판단이어야 한다. 공은 닦은 대로 죄는 지은 대로 간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이 사건 당사자인 부모의 마음은 법을 떠나서 아직도 ‘낙지’ 네놈이 내 딸을 죽였느냐? 묻고 싶은 심정일거다. 그것은 자식의 죽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자식과 부모의 천륜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