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함경도에 살고 있답디다..."
"지금도 북으로 돌아간 형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며 말문을 흐렸다.
최근 끝난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국민들로 부터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두사람이 있다.

▲ 최근 있었던 1차 남북이산가족상봉때 42년만에 만난 박양수, 양곤 형제가 극적인 상봉을 하고 있는 모습.

이른바 '오대양호 사건'으로 불리는 너무나 비통하고도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 그동안 거제에서 숨죽여 살아온 박양곤(52)씨와 북한에 살고있는 형 양수(58)씨가 그 주인공이다.

서해에서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북으로 끌려간 오대양호(61,62호) 선원들은 당시 모두 25명. 이중 절반 가량이 거제의 같은마을 사람들 이었다. 선장과 기관장 갑판장이 같은마을 사람들 이었기에 어려운 살림에 입하나라도 덜기위해 고기잡이 배를 탔던 것이다.

이전에도 오대양호 납북자 가운데 한 가족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극적인 만남을 가진적이 있었지만 이미 우리 기억속에서는 까마득히 잊혀진지 오래다.

오대양호 피해자 가족 가운데 이번에 비록 양곤씨 한사람 가족만 북한에서 살고있는 형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숨죽여 지켜보며 눈물을 훔친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아울러, 같은 처지에 있는 납북어민 가족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42년만의 극적인 만남을 지켜보며 그들을 위해 그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자책하지 않울 수 없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이후 서울에서 내려온 박양곤씨가 형님을 만났을때 부터 헤어지기 까지 숨겨 두었던 뒷 얘기를 어렵게 털어 놓았다. 2박3일 동안 있었던 약 7시간 동안의 생생한 얘기를 시작한다.

1.형님을 만나고 온 기분은?
솔직히 말해 멀리서라도 살아있는 모습만 바라보고 왔으면 좋을뻔 했습니다. 체제가 다른 곳에서 살고있는 형님이 북으로 돌아간 후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몰라 그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꼭 무사히 살아서 다시 만나 뵙기만을 빌고 빌 뿐입니다. 처음 만날때는 그야말로 반가움에 겨워 흘린 눈물 이었는데 지금은 형님에 대한 근심걱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2.맨 처음 형님은 뭐라고 했나?
첫 만남에서 "어릴때 있던 우리집은 그대로 있느냐"고 물었고, "부모님은 살아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두분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살림살이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어릴적 나와함께 뛰놀던 몽돌해수욕장과 초가지붕이 있는 한가롭고 따뜻하기만 했던 고향을 생각하는 듯 했다고 말했다. 한참뒤에 입을 연 형님은 "나는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근심어린 얼굴로 바라다 보는 동생을 안심 시켰다는 얘기도 전했다.

3.상봉장에서 형님 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핏줄이라 그래서인지 바로 양수 형님이라는 걸 알아 볼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루 형언할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4.형님께서 상봉장에 훈장을 들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훈장 3개를 들고 나왔던게 사실 입니다. 나는 이렇게 북한에서 인정받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대변하기 위해 들고 나온것 같았습니다.

5.형님은 북한에서 무슨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한다"고 했기에 그나마 걱정이 조금은 사라졌습니다.

6.어디에서 살고 있으며 가족관계는...?
함경도 어딘가에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우리가 생각 하기로는 조금 이른나이인 27세때 결혼을 해서 현재 형수님과 아들 딸 등 가족은 모두 4명이라고 했으며 처가쪽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7.형수님을 상봉장에서 맨 처음 만나 뭐라고 했으며 데려간 아들을 형님께 소개하자 어떻게 했습니까.?
형수님께 우리 형님 잘 부탁 드린다고 말하자 "알았습니다 삼촌"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봉장에 같이 데려간 아들놈을 형님께 소개하자 아무 말없이 바라다만 보았다고 전했다. 아마도 42년전 자신이 엄동설한의 서해안 망망대해에서 북한에 끌려갔던 당시 나이 16세때를 조카의 얼굴에서 떠 올렸는지도 모른다.

8.술을 부어 형님과 러브샷을 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기념 촬영을 위해 러브샷을 하자고 형님께 말씀 드렸더니 무슨 말인지 잘 몰라 잠시 주춤 거렸습니다.

9.형님의 몸 상태와 신체는 어느 정도 였나요?
몸은 건강해 보였고 신체 조건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10.가져간 선물은 무엇인지...?
북한에는 쵸코파이가 귀하다고 해서 이 물품과 일상 생활용품들을 가져갔습니다.

11.형님께서 가지고 나온 선물은 받아 왔나요?
45도 짜리 술 3병과 여성용 스카프 한 개, 돗자리 한 개를 선물로 전해 줘서 거제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돗자리는 "산소에 가서 형님을 대신해 바닥에 깔고 술을 부은 후 절을 하라는 의미로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형님은 북한에 있는 아들사진과 손녀의 돌때 사진 들도 가져와 보여줬으며 훈장을 받았을때 찍은 기념사진도 보여 줬다고 말했다.

12.형님이 전해준 얘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면...?
김장용 배추와 무 등을 터밭에 심어 자유롭게 김치를 담아 먹을 수 있으나 전화와 냉장고는 아직 까지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있다고 말해 북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줬다.

특히, 형님과의 대화속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해 관심을 끈 대목이 있다.
"부산에 가려면 옛날에는 5시간 가량이나 걸렸는데 지금은 자동차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어떻게 차가 바다위로 갈수 있느냐"고 의아해 했던것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북한에 납북될때 까지만 해도 거제와 부산을 잇는 다리가 건설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도 이런 얘기를 하면 안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같이 북한에 끌려온 선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어 알수없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한 맺힌 기다림으로 견뎌왔던 42년만의 만남은 이렇게 2박3일 간의 짧은 여정을 끝으로 기약없는 이별만을 남기고 쓸쓸히 끝났다.

지금도 형 양수씨를 북으로 돌려보낸 후의 동생 양곤씨 마음은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중장비 작업을 시작하려 하지만 요즘에는 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이에올로기가 다른 곳이니 혹시라도 형님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양곤씨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이 앞으로 큰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 했지만 42년의 긴 세월도 나는 괜찮다"며 "학생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조성이 절실함을 느낀다"고 이산가족 상봉뒤의 소감을 밝혔다.
"통일돼서 만나자"며 손을 흔들어 준 것이 형님과의 마지막 인사 였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꽉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뭔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서 입니다.
"형님께서 전해준 선물은 포장 그대로 고히 간직 할 생각입니다"

통일이 되는 날 형님 손으로 직접 전해준 그 술로 축배의 건배잔을 들어 올릴 생각이라는 양곤씨는 기약없는 기다림만 남아있는 야속한 현실을 떠올리며 끝내 눈시울 적시고 말았다.

그의 눈물속에는 애써 감춰왔던 그동안의 설움과 함께 분단의 최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한 억울함도 뼈속깊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거제타임즈-거제시민뉴스 공동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