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신한불란(信汗不亂).'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 사자성어는 '한국의 퍼거슨'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59)의 좌우명이다. 지난 3일 '숙적'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를 꺾고 2013~2014 남자배구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7연패'를 달성한 신 감독은 체육관에 '겸병필승(謙兵必勝ㆍ겸손한 병사는 반드시 승리한다) 신한불란'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선수들과 매일 이를 되새긴다고 한다.

프로배구 출범 이후 챔피언결정전 8회 우승, 프로 출범 이전 포함 남자배구 16회 우승. 숱한 우승 기록으로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신 감독을 9일 서울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올해로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은 지 20년째를 맞이한 신 감독에게 "리더십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신 감독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팀에 대한 선수들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것이 리더십이고 감독은 선수들의 자발적 헌신을 이끌어내는 자리"라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드러난 신 감독 리더십은 그의 좌우명 '신한불란'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신한불란'은 이날 오전 신 감독이 삼성그룹 서초사옥에서 진행된 삼성 수요사장단회의 강연에서 팀 운영 키워드로 꼽았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갖는 말이다.

◆ 信 : 감독과의 인연이 아닌 노력을 믿어라
신 감독은 1983년 지금은 고인이 된 양인택 전 한국전력 감독의 권유로 한국전력 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신 감독은 배구에 인생을 걸 생각이 없었다. 신 감독은 "당시 실업배구팀이 한국전력을 포함해 3팀밖에 없었기에 배구를 계속하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했다"며 "성균관대 재학 시절 행정학과를 졸업한 만큼 한국전력에서 일하려고 했다"는 말로 당시를 떠올렸다.

재밌는 것은 삼성화재 감독 부임 이후 승승장구하는 동안 신 감독 자택을 찾은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신 감독은 "선수ㆍ코칭스태프에게 '보여줄 것이 있으면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여주고, 할 말이 있다면 체육관에서 하면 된다'고 말한다"며 "누군가 내 집을 찾아오면 찾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다"고 설명했다.

"내가 아닌 너희들의 노력을 믿어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선수들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저절로 우승한다"고 먼저 말한다. 사소한 약속도 반드시 지키는 신 감독의 철두철미한 태도 역시 선수들의 믿음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고준형이 다가오더니 '감독님, 약속 지키셔야죠' 하더라. 솔직히 무슨 약속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준형이가 '저번 술자리에서 우승하면 갖고 싶은 것 아무거나 선물로 주신다고 했잖아요' 했는데, 주위에 물어보니 내가 그 말을 한 것이 분명해서 준형이가 갖고 싶어했던 핸드 캐리어(여행용 손가방)를 사줬다."

◆ 汗 : 땀으로 이뤄진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용병 의존도가 높은 탓에 우승을 차지하고도 논란에 시달리는 팀이다. 신 감독도 "주위에서 우리에게 '몰빵 배구'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신 감독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삼성화재 배구를 '몰빵 배구'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삼성화재처럼 해보라'고 말이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 배구가 '몰빵 배구'가 아닌 '분업 배구'라고 강조한다. 공격을 잘하는 선수가 득점을 책임지고,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공격을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이 삼성화재 배구의 핵심이다. 단순하지만 철저한 분업을 위해 신 감독은 서로에 대한 헌신과 혹독한 훈련을 강조한다. 신 감독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한다"며 "선수들이 욕심을 버리고 팀을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용병에게 강조하는 부분도 비슷하다. 신 감독은 "레오에게는 '네 스파이크 한 번을 위해 동료들이 경기장 바닥에 무릎이 쓸리면서도 공을 살리고, 반대편에서는 스파이크를 때릴 것처럼 페이크를 시도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너는 절대로 공격을 허투루 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훈련을 강조하는 신 감독의 철학은 작전타임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일부 감독들이 작전타임 도중 선수들에게 큰소리로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다. '경기 도중 일일이 설명할 것이라면 훈련 때에는 도대체 무얼 한 거냐'는 생각이 든다. 선수는 감독이 '야, 너 뭐해' 이 한마디만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어야 하고 이는 철저한 훈련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 不 : 감독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은 컨디션이 좋으면 주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하고 싶어 한다. 감독은 운동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운동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20년 동안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은 신 감독의 지도 철학은 단순하다.

신 감독은 항상 선수들에게 "좋은 경기는 좋은 훈련에서, 좋은 훈련은 좋은 생활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는 "경기와 훈련에 앞서 선수들이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신 감독이 선수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다.

신 감독은 오후 9시 이후부터는 선수들이 간식도 먹지 못하게 하고, 오후 10시 30분에는 선수들 휴대폰을 압수한다. 오후 9시 이전까지 허용되는 간식도 치킨,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가 아닌 삶은 계란, 고구마 등뿐이다. 숙소에서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밤에 선수들이 '몰래' 간식을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쓰레기통을 뒤질 정도다.

신 감독은 "부임 후 19년 동안 매일 오전 6시 30분만 되면 선수들의 몸무게를 재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했다"며 "입단 후 처음 3년 동안은 결혼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자동차를 모는 것, 슬리퍼를 신고 숙소와 체육관을 이동하는 일도 금지했다"고 말했다. 주위의 우려에 신 감독은 '모든 것은 선수들을 위해서'라는 신념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할 수는 있지만 결코 타협이나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3개월 후 수준이 지금과 똑같다면 지금 고생을 하며 훈련을 할 이유가 없다.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서는 훈련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선수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훈련을 위한 최고의 몸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 亂 : 팀워크 어지럽히는 것 용납 못 해
훈련 도중 선수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 '욕설'을 내뱉었다면 이는 팀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행동일까. 신 감독은 "이때 선수에게 훈계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훈련 도중 선수가 욕설을 내뱉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못해 짜증이 나기 때문"이라며 "이때 선수를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질책하면 선수는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짜증'은 어느 정도 받아주는 신 감독이지만 팀워크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엄격하다.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외국인 선수 레오도 한때 불성실한 훈련 태도 탓에 삼성화재 유니폼을 벗을 뻔했다.

신 감독은 "첫 훈련 때 레오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러닝 훈련 도중 아무 말도 없이 앉아서 쉬더라"며 "레오를 불러서 '아파서 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감독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쉴 거면 당장 짐 싸서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팀워크를 강조하기에 삼성화재에서 뛰는 사위 박철우에게도 유독 엄격하다.

신 감독은 "(박)철우와 딸 혜인이에게 '둘 중에 한 명이 배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절대로 체육관이나 경기장에서 나에게 장인어른이라고 부르지 마라'고 말했다"며 "집에서 배구 이야기하는 것, 체육관에서 집 이야기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했다"고 말했다.

■ 가빈·레오 신화는 실력보다 '절실함'의 결과
삼성화재의 남자배구 챔피언결정전 7연패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비 때마다 맹활약한 용병들이다. 2007~2008 시즌부터 챔피언결정전 2연속 우승을 차지할 때는 안젤코(31ㆍ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팀 공격을 이끌었고 이후 3년 동안은 '특급 용병' 가빈 슈미트(28ㆍ캐나다)가 2009~2010 시즌부터 팀에 3연패를 안겼다. 2012년 가빈이 떠나자 '쿠바 특급' 레오(본명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ㆍ24)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하며 삼성화재의 용병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삼성화재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자 용병을 뽑는 비결이 무엇인지에 절로 관심이 쏠렸다. 신치용 감독은 "실력보다는 인성, 구체적으로 말해 '절실함'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삼성화재가 처음부터 용병으로 재미를 본 것은 아니다. 프로배구 출범 원년인 2005년 V-리그에서 삼성화재가 초대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에 등극했을 때는 용병 제도가 없었다. 프로 출범 이후에도 최강 자리를 굳게 지키던 삼성화재는 용병 도입 첫 시즌인 2005~2006 시즌 현대캐피탈에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넘겨줬고 2006~2007 시즌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실패를 반복한 신 감독은 이후 용병을 뽑는 원칙을 완전히 바꿨다. 신 감독은 "이름값을 먼저 고려하던 방식을 포기하고 이 선수가 한국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뛸지를 우선시했다"며 "절실함이 강해야 팀에 녹아들려는 마음가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젤코, 가빈, 레오 모두 삼성화재 입단 당시 '절실함'을 따질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수들이다. 안젤코와 레오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뛰었고, 가빈은 배구선수로 태어난 이상 이탈리아, 러시아 등 '빅리그'에서 뛰고 싶어하는 열망이 너무나도 강했다. 신 감독은 "영입한 선수가 절실함을 잊고 입단 당시 '초심'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내쳤다"고 덧붙였다.

■ 신치용 감독은…
△1955년 거제시 장승포동 출생 △장승포초등교 거제중을 거쳐 성지공고-성균관대 행정학과 △1980년 한국전력 입단 △1983년 한국전력 코치 부임 △1995년 11월~현재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 △2001ㆍ2002년 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5년 프로배구 원년 챔피언 △2014년 1월 삼성 스포츠인 최초 '자랑스런 삼성인' 수상 △2014년 4월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7연패 △프로 통산 챔피언결정전 우승 8회 △프로ㆍ실업 통산 16회 우승 [ 매일경제-정석환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