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지역 극장가는 한국영화냐 헐리우드영화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 주인공들은 거제시네마에서 상영하는 <혈의 누>와 <킹덤 오브 헤븐>이다.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는 한국영화에서 사극이라는 한계점을 넘어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하드 코어 스릴러물이다.

 반면에 <킹덤 오브 헤븐>은 <블레이드러너>의 감독이자 <글래디에이터>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감독 작품이다.

<혈의 누>,  피는 피를 부르고, 원한은 피의 비가 되어 내리리니

▲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1808년, 조선의 외딴섬 동화도. 이 곳은 제지업을 기반으로 김치성(오현경) 영감과 그의 아들인 김인권(박용우)이 섬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하는 제지를 실은 수송선이 누군가의 방화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동화도에 파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잘 짜여진 각본, 정교하게 지어진 여러 세트들, 영화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의상과 소품, 영화의 분위기를 이끄는 속도감 넘치는 카메라 워킹과 의도적으로 사용된 조명톤 등은 바로 <혈의 누>를 잘 포장하고 있는 소위 ‘껍데기’들이다.

하지만 <혈의 누>는 그러한 외적 요소들 보다는 영화 깊숙이 내제된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하려는 작품이다. 우선 영화는 그러한 면에선 완벽한 환경적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섬이라고 하는 고립된 공간, 배 이외에는 특별한 운송 수단이 없는 조선 시대라는 점,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섬 주민들만이 간직한 비밀스런 어두운 과거 등은 복합적으로 관객을 혼돈으로 뒤덮기에 충분하다.

<혈의 누>는 바로 이런 것들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는 맛이 깃들어 있다. 쉽게 말해 미국 영화 <세븐>이나 <슬리피 할로우>처럼 그로테스크하며 어딘가 모르게 우울함이 전면에 베여 있는 듯 치장 했으나, 오히려 속내를 살펴보면 <빌리지>와 같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이기심이 엿보인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극 후반이다. 추리극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혈의 누>는 소위 “누가 범인일까?”를 밝혀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영화는 아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범인이 밝혀짐과 동시에 찾아오는 충격적 반전이나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놀람 효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실 타래가 풀리듯 밝혀지는 인간 속내에 감춰진 탐욕과 그 탐욕이 만들어낸 엄청난 결과들에 더욱 소름 끼치는 효과를 노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제작진의 의도는 극 후반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루하지 않도록 속도감 있게 후반부까지 끌고 오다 보니, 배경 설명이 부족하고 이해력이 떨어져 매우 ‘어려운’ 영화가 되어 버렸다. 결국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명확한 제작진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것 조차 감독의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 <혈의 누>의 주인공 차승원.

<킹덤 오브 헤븐>,  시대가 변하면 영웅도 변하는 법 

리들리 스코트는 무려 1억3천만 달러를 들여 완성한 에픽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을 내놓기에 이른다. 배경은 로마 제국에서 중세 십자군 원정 당시로 옮겨 왔으며, 주인공도 마초 기질이 다분한 러셀 크로우에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꽃미남' 올란도 블룸으로 교체됐다.(기획 당시 리들리 스코트는 러셀 크로우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니 교체됐다는 말이 적당할 듯 싶다) 아무튼 리들리 스코트의 신작 역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틈 속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한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영웅의 모습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건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러셀 크로우와 올란도 블룸의 외모, 성격적 차이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발리안(올란도 블룸)은 프랑스 어느 시골의 대장장이(blacksmith)로 지내다 십자군 기사인 아버지 고프리(리암 니슨)의 뜻에 따라 기사 작위를 수여받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 리틀리 스콧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

위기에 처한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를 도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천상의 왕국 Kingdom of Heaven'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발리안의 첫 번째 임무인 것이다. 아버지를 쏙 빼 닮아 순식간에 국왕과 여러 기사들에게 신임을 얻는데 성공을 거두는 발리안은, 그러나 아랍인들과의 평화 협정을 깨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을 일으켜 아랍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왕의 처남 '기 드 루지앵'의 견제를 받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차기 왕권을 노리는 '기 드 루지앵'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권자가 되느냐 아니면 운명에 따라 전쟁을 선택하고 백성을 보호하느냐의 갈림길에 서는 발리안의 두 번째 임무가 시작된다. 이와 동시에 왕의 여동생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 <몽상가>들로 데뷔한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와의 로맨스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지만 이것이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진 못한다.

▲ <킹덤 오브 헤븐>의 한 장면.

사실감 넘치고 생생한 화면, 거기까진 좋다. 그렇지만 리들리 스코트는 올란도 블룸이란 새로운 영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분출해 내는 데는 실패를 거둔 듯 싶다. 수만 명의 군중들 앞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칼을 높게 뽑아 든 올란도 블룸이 '그림' 상으로는 예쁘고 멋지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그런 행동에서 심장을 박차 오르는 감동과 카리스마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발리안은 로마의 옛 원형 극장에서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부르던 '막시무스'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영웅도 변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발리안은 새로운 영웅이거나 혹은 영웅이 되지 못한 그야 말로 '대장장이'는 아니었을까?

이번 두 영화 가운데 어떤 작품이 거제지역의 극장가를 탈환할지 궁금해 진다. 김대승이냐 리들리 스콧이냐, 선택은 시민들의 몫이다.

두 영화의 상영시간은  다음과 같다. 거제시네마에서 4일부터 상영하고 있다.

<혈의 누>	<킹덤 오브 헤븐>
오전11시, 오후1시10분, 3시20분, 5시30분, 7시40분, 밤 9시50분	오전11시, 오후1시35분, 4시10분, 6시45분, 밤 9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