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거제시민단체와 민간연구기관 등이 '취도기념탑' 철거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가운데 일부 주민들이 일본인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만들자고 결의까지 하는 등 역사의식 대립화로 번지고 있어 또 다른 '역사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러일전쟁 전승기념탑 철거와 관련해 거제시민단체연대회의가 종교단체대표, 여성단체대표, 지역 언론사대표, 사등면 가조도 대표, 거제시, 거제시 교육청, 거제시 자원봉사협회대표, 경남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 경제단체대표, 문화단체대표, 노동단체대표, 정당대표, 지역원로대표, 민족문제연구소, 경남근현대사연구회 등에 '취도기념탑철거를 위한 거제범시민위원회' 참여요청 공문을 지난달 27일 발송했다.

반면에 지난달 24일 사등면발전협의회와 가조도발전협의회 등이 거제시민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취도기념탑' 철거운동에 대해 회의를 개최하고 "(취도기념탑)을 보존하고 일본인 역사관광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연구단체는 "지역주민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기위한 장으로 활용하기보다 일본인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며 "현재 철거유무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다"고 비난했다.

찬성, '철거후 역사관건립'

러일전쟁 전승기념비 철거에 대해 주요 지역인사나 학계 여론은 주민들이 일본인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일환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너무도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자 계획이다"며 "일본의 전승기념탑을 70년 동안 방치한 것도 수치스러운 일인데, 그것을 일본인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일본인인지 국적이 의심스럽다"고 맹비난했다.

강돈묵 거제대학 교수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며 그러나 "주민들이 주장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방법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치욕스런 역사도 역사이기 때문에 현지에 두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바로알기 위해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미술평론가, 문화재위원)은 "일제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건축된 건축물과 조형물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며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취도기념탑'에 대해 "보존가치나 활용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현재 이 탑은 근대건축에 있어 특징이나 특이점을 찾을 수는 없다"고 평가하고 "철거에 대해 종합적인 여론수렴을 통해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연구소에서도 심도 깊은 논의를 거치고 있다"며 "일제의 수치스러운 역사도 역사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념탑을 활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고 비난하고, "아직 철거유무에 대해 논의를 거치고 있으니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실장은 "시민단체 등이 기념탑을 철거후 거제역사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은 좋은 기획이다"며 반면에 "그대로 보전하면서 현장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논의에 넣어서 깊게 검토할 대상이다"고 덧붙였다.
김경현 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멸망시킨 역사적 사건이 바로 러일전쟁이고, 전쟁후 을사늑약, 경술국치로 이어져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했다"며 "그런 상징물을 진해만과 거제 풍경이 좋은 곳에 70년 동안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럽다. 하지만 무조건 철거해 가루로 내기보다 역사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철거를 주장하고, "독도문제처럼 그대로 탑을 방치하면 자기 땅이라고 또 주장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박병희 거제향토사연구소 소장(전 일운면장)은 "일본인들을 위해 관광상품화하자는 얘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우리 민족의식 교육을 위해서라도 보전하면서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된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반대, '보존해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자'

러일전쟁 전승기념탑 철거를 반대하고 있는 사등면과 가조도 발전협의회는 "일본인들을 위해 관광상품화를 활용해야 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천장남 가조도발전협의회장은 "시민단체에서 철거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18일과 30일 전체회의를 통해 철거운동 자체를 반대한다고 결의했다"며 먼저 시민단체들이 "가조도 주민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한다. 앞으로 주민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부터 발전협의회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자체 계획을 갖고 있다"며 전제하고, 시민연대회의가 철거범시민위원회의 참여를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겠나는 질문에 "현재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며 "이러한 문제는 시민연대회의와 먼저 협의한 이후에야 논의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신용웅 사등면발전협의회 회장은 "현 단계에서 철거하는 것은 반대하기로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며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가조도 창호마을 등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은 시민단체나 역사학계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호 사등면장은 "가조도와 사등면발전협의회가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며 "만약에 여론청취나 협의도 없이 시민단체에서 철거한다면 해방봉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 면장은 "현재 취도기념탑을 철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철거를 위한 설문조사나 역사관건립 계획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철거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발전협의회등이 주장하는 바의 역사인식은 이병도(식민사관 주창자)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식민사관의 대표적 주창자인 이병도(李丙燾 1896∼1989)는 해방 후의 대표적인 친일사학자이며, 이병도사관을 형성했다고 할 정도로 해방 후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역사학자로 이완용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7 '조선사편수회'로 국사 연구 시작, 1934 진단학회 창설, 대표, 1945∼1962 서울대 문리대 교수, 1955∼1982 국사편찬위원, 1960 문교부 장관 등을 지냈다.

시민반응, 일본인관광유치에 대해 '떠나라 일본으로'

사등면 발전협의회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기념탑을 보존한다는 얘기를 들은 거제시민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이모(주부, 35)씨는 "차라리 일본인으로 귀화해야 한다"며 "치욕스런 일제 잔재를 그냥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관광상품으로 팔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또한 김모(언론사 기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자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마저 부끄럽다. 제발 일본으로 떠나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위암 장지연의 '친일'문제를 제기한 김경현 연구원은 "이제부터 역사전쟁이다. 친일과 일제잔재 청산에 반대하는 모든 논리와 형식에 있어 역사의식과 이념에 대해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지금까지 친일적 역사의식(식민사관)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주장하고 "반드시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세우는데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역사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