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흙속의 황금, 황토(黃土)

▲ 손영민

시골에서 소를 기를 때 어른들은 외양간 앞에 한 무더기의 황토를 놓아두었다. 어쩌다가 소는 여물이나 물을 먹고 난 다음 혀로 황토를 핥아 먹는다. 본능에 가까운 이 행동은 결국 소의 건강을 지키고 황토의 제독작용이 건강한 소를 만든다고 어른들은 믿었다.

강아지는 속에 탈이 생기면 황토 구덩이에 배를 깔고 굶으면서 병을 다스린다. 토종닭들도 병에 걸리면 본능적으로 쑥밭 근처의 황토에 구덩이를 파고 흙을 몸에 끼얹으며 황토목욕을 한다. 포수의 총에 맞은 곰은 황토 흙탕물에 뛰어들어 상처 부위를 담그고 치료한다. 이와같은 동물들은 스스로 병을 다스리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본능적으로 황토를 이용할 줄 알았다.

우리 조상들은 잉어가 병들었을 때는 연못에 황토를 넣어 치료했고 소와 염소가 병들었을 때는 황토를 물에 개어 먹여 치료하곤 했다. 동양의학에서도 황토는 훌륭한 약재로 이용 되었다. 황토 속에 녹아있는 엄청난 약성(藥性)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인체 내에서 대사 작용 과정에 과산화지질이라는 독소가 발생하면 노화현상이 오는데, 이때 황토 속에 몸을 넣고 있으면 흙의 강한 흡수력으로 체내 독소가 중화되고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땅 속에서 파낸 황토로 객토(客土)하면 신비스럽게도 농토의 지력(地力)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병충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인정되어 농부들을 즐겁게 했다. 신토불이. 몸과 땅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 조상들은 황토를 떠올리곤 한다. 태고적부터 아침 햇살의 에너지를 축적해 한반도 생명물질의 으뜸자리를 차지한 황토는 우리 조상들에 의해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방안의 벽에 황토를 바르는 것은 물론 황토로 바닥을 발랐으며 죽염을 만들 때나 찜질을 할 때도 황토를 사용했다.

동황토(東黃土)로 유명한 청학동에서는 각종 황토 활용법이 전해진다.

-수레나 가마를 타고 먼 길을 가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 황토를 한지에 싸서 맨발로 밟고 있으면 멀미가 나지 않는다.

-부엌 아궁이를 황토로 만들어 소나무 장작으로 밥을 지어 먹으면 위장병이나 각종 괴질에 걸리지 않는다.

-고구마, 감자, 찰벼 등을 황토밭에서 재배하면 씨알이 또렷하고 당도가 일반 땅의섯보다 5배 이상 높다.

-황토를 참나무 숯과 섞어 베게 속에 넣고 자면 불면증을 완화 시키고 갑자기 약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칼을 베는 등 상처가 났을 때 황토로 싸 메면 지혈이 된다.

황토는 기(氣)를 품은 생명물질이라는 점 외에도 현대과학에 의해 1g당 최대 5억 마리의 유용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황토는 뛰어난 분해력, 정화력 등 신비한 효력을 발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토는 인삼을 비롯한 약초 재배 농가에도 활용도가 높다. 약해진 땅의 지력(地力)을 북돋우고 병충해를 막아주며, 약초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해준다.

요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황토 찜질이 좋다고 한다. 황토장판을 깐 방이 없는 요즘은 산에서 파서 쓰거나 고가(古家)를 헐어낼 때 나오는 황토벽의 흙을 사용해도 마찬가지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황토가 이처럼 특효가 있다면 목조주택의 벽과 천장과 바닥에 황토를 바르고 황토로 만든 침대와 베개를 베고 살자는데 생각이 미쳤다.

황토방의 효능을 떠나서라도 사라진 황토 냄새를 침대에 옮기면 어떨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지기(地氣)를 받지 못해 잔병에 시달린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시멘트 숲인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황토의 약성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딱딱하게 굳지 않는 상태의 황토에서 따스한 열기가 뻗친다면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우리조상들이 애용한 황토장판을 현대의 침대로 옮긴다면 금상첨화일 것만 같았다. 황토침대, 황토장판, 황토메트리스, 황토베개..., 나는 보드랍고 따스한 황토를 깔고 자는 꿈을 무수히 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