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거제 민간인 학살 사건에 희생된 원혼들을 위로하는 '한국전쟁전후 희생자 위령제'를 장승포 물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지난 11일 오후3시 장승포 수협 옆 물양장에서 한국전쟁 전후 국군과 경찰 그리고 우익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거제민간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거제사랑종교인연대 주관으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거제유족회원과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특히 장승포 물양장은 1950년 7월 26일부터 4일간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당시의  선박 선착장으로  이용됐다. 이전 부산-거제간 여객선 터미널이었다. 

▲ 이날 위령에 참석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거제유족회원들.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 거제사랑종교인연대 소속 종교지도자들이 헌향하는 모습.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 55년만에 거제유족회원들이 헌향하는 모습.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이날 김수영 거제사랑종교인연대 공동대표(남부 다대교회 목사)는 "1950년 발생한 이념으로 인한 동족상잔은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며 "이 아름다운 땅 거제도의 곳곳에 전쟁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거나, 본의 아니게 죽여야 했던 사람들의 슬픈 영혼은 지금도 이 산하의 어디메를 떠돌며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을 줄 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표는 "거제를 사랑하는 종교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전쟁으로 인한 숱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전쟁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회환 그리고 나아가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며, 유족과 후손들을 함께 모시고 화합과 화해의 작은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추모사를 했다.

이창수 한국전쟁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 특별법쟁취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과거사법안이 통과되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며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적인 학살을 밝혀내지 않으면 화해나 평화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경남지역 가운데 거제에서 900여명의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한 사건은 지금까지 유족들의 원한과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앞으로 과거사특별위원회에서 모든 것이 풀어지도록 유족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추모사를 했다.

서철안 거제유족회 회장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거제사랑종교인연대 관계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유족들이 품고 있는 원한은 지금까지도 달라진 게 없다. 앞으로 종교연대에 소속된 종교지도자분과 함께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 천주교와 성공회 종교지도자들이 위령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 김현숙 신청국악무용학원장이 살풀이하는 모습.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 위령제를 마치고 모인 거제유족회원들.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또한 위령제에 김수영 목사가 개신교 위령예식을 시작으로, 거제성당, 고현성당, 장평성당, 장승포성당, 지세포성당, 성공회 신현성당 등에서 천주교 및 성공회 예식을, 계룡사, 금강사, 해인정사, 신광사, 용주사 등 스님들이 민간인 학살에 희생된 원혼들을 위해 불교예식을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의에서 금강사 다도회 헌다로 시작해 종교지도자, 유족회, 시민사회단체, 기관단체장 등이 헌향, 김상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 헌시, 신청국악무용학원 원생들이 입춤, 김현숙(신청국악무용학원장)의 살풀이를 마지막으로 위령제를 마쳤다.

한편 위령제를 마치고 참석한 유족과 시민 등이 이른 저녁을 함께 하면서 '한솥밥 나누기'에 동참했다.

거제유족회와 종교인연대는 매년 위령제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 김상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의장이 헌시를 하는 모습. ⓒ 2005 거제타임즈 김미희기자

다음은 위령제에서 김상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이 발표한 헌시 전문이다.

헌시

다시,6월입니다. 그대처럼 나뭇잎 푸르고 온 세상이 살아 퍼덕거리며 하늘은 저리도 시린데, 님들이시여 그 곳은 어떠신지요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반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둡고 습한 곳에 님들을 버려두고 한 번도 밝은 햇볕 아래로 모시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의 지혜와 턱없이 부족한 저희들의 실천력과 무엇보다도 두 푼어치도 안 되는 저희들의 용기가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벌을 받겠습니다. 헤아려보면 정녕 기막힌 님들의 희생 아무 보람도 없이 헛되이 만들어서 아직도 주국의 허리를 동강내고 있는 죄 스스로 떨쳐 일어서 굳건하게 자리하지 못하고 지금도 열강들의 입김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 이 지지리도 못난 죄인들에게 벌을 주십시오 형제에게 총을 들이대게 했던 이데올로기 이 땅 모든 곳을 온통 피로 물들이고 기어이 님들의 꽃다운 넋들을 빼앗아갔던 그 망령 같은 그 원수 같은 그 징허고 독한 이데올로기를 아직도 이 땅에서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죄 벌받아 마땅합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밑천 삼고 보물 삼고 무기 삼아 걸핏하면 꺼내들고 숨넘어가듯 외쳐대며 권세 누리고 부귀 누리는 저 천한 것들을 아직도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활개치도록 한 죄 그리하여 님들의 꽃다운 희생으로 씻겨진 이 깨끗한 땅을 저들의 발자국으로 더럽힌 죄 큰 벌로 달게 받겠습니다. 매를 맞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의 다짐이 닳고 희미해지거나 생활에 매몰되어 중심을 잃거나 눈앞의 이익이나 안락함에 빠져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거든 님들이시여 서슬 퍼런 죽비가 되어 저희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려치소서. 힘있는 용기와 따뜻한 가슴으로 핏줄들이 만나고 함께 어우러져서 이 땅위의 모든 쇠붙이를 걷어내고 마침내 동강난 허리를 튼튼하게 잇고 나서 큰 한숨 휘파람 호기롭게 불어제칠 때까지 혹여 저희가 약해지거나 게을러질 때면 모질게 매질하여 주십시오. 망령스러운 이데올로기 뿌리까지 뽑아내고 그것을 밑천 삼아 날뛰는 저 불쌍한 영혼들 모조리 씻겨내어 고개 숙여 속죄시키고 자본을 앞세워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변형된 제국주의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정의를 외칠 그날까지 저희가 흔들리거나 주춤거릴 때마다 벼락같은 호통으로 혼찌검을 내소서. 보듬어주소서. 님들이 가신 그 후 이 날까지 피울음 울다 지쳐서 짓무른 눈 내놓고 말도 못해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 유족들과 친지들 이제는 그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천근 돌덩이를 내려놓게 하시고 그 슬픈 어깨들을 한없이 쓰다듬어 주소서. 그리하여 편히 지내소서. 안고 있던 한, 풀리지 않은 응어리 저 짓푸른 하늘로 풀어 올리시고 무거웠던 짐 이제는 벗어 부족하나마 저희에게 맡기시고 이제는 평안히 지내소서. 삼천리 방방곡곡에 흰옷 입은 백성들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는 북 치고 나팔 불며 춤추는 통일의 흥겨운 잔치 판이 이제 곧 벌어질 것이오니, 그 맨 앞장에 서서 눈물 흘리며 함께 기뻐하실 그 날까지 영령들이시여 부디 평안히 지내소서. 2005년 유월에 삼가 향 피워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