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겨울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 손영민

전원 주택지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계절은 단연 봄과 가을이다. 생활에 쫓겨 평일에는 다닐 짬을 내기 힘들고 자연히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주말 나들이를 겸해서 다니려면 역시 봄과 가을이 으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 땅은 겨울에 답사를 다녀야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특히 임야는 더욱 그렇다. 봄과 가을은 사람으로 치면 산이 곱게 화장한 모습이다. 연애시절 내내 곱게 화장한 모습만 보다가 아무런 단장도 하지 않은 여인의 풋풋한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보였던 적이 없었는가.

자연도 마찬가지다. 봄 또는 가을 산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집터로서의 흠은 나중에 집을 짓고 난 뒤에 두고두고 애를 먹인다. 경치가 아름다운 산은 내가 깔고 앉아 있기 보다는 집터와 마주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이 감상하기에도 백번 났다.

집터를 볼 때는 냉정해야한다. 사람이 그러하듯 아무 치장도 하지 않고 벌거벗고 있을 때 산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경험이 없으면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지만 웬만한 결점은 초보자의 눈에도 쉽게 드러난다.

첫째는 바람이다. 도시생활을 하다가 시골생활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시골의 매서운 겨울바람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경치만 찾다가 골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통로에 집을 지어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사는 경우도 있다. 겨울바람은 겨울에 맞아봐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둘째는 산 그림자 때문에 생기는 응달이다. 봄과 가을에는 더없는 드라이브 코스로 보이던 환상의 시골길도 겨울이면 눈이 녹지 않아 골탕을 먹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특히 자동차로 출퇴근을 해야 할 처지라면 이것은 자신의 안전과도 연관이 깊다. 겨울에 시골길을 가보면 굳이 하루 종일 지켜보지 않아도 산 그림자가 드리우는 응달의 폭과 깊이를 대충 알 수 있다.

간선도로를 벗어나면 시골길은 대부분 지방도로나 새마을도로여서 제설작업이 바로바로 되지 않는다. 대게는 햇빛에 저절로 녹도록 방치된다. 이럴 때 평소 햇볕이 잘 드는 곳은 눈이 다 녹지만 응달 지는 구간은 그대로 빙판길이다. 임야도 마찬가지다. 눈이 녹아 있는 정도를 보면 얼마나 햇빛이 잘 드는 곳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셋째는 집터의 배경이 되는 뒷산의 산세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집터의 좋고 나쁨은 거의 전적으로 주위의 지세와 산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꽃으로 덮여있는 봄가을이나 잎이 우거진 여름에는 이런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산은 산이고 나무는 나무일 뿐 인데 산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판단을 그르칠 위험성이 크다.

물론 나무도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간접적으로는 땅에 대한 판단 자료로서의 구실을 한다.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땅은 사람이 살기에도 썩 좋은 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땅의 모양세가 중요하다. 이런 요인들을 체크할 때는 가장 가까운 마을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시골마을은 아무리 규모가 작고 하찮은 곳이라도 행정구역상의 명칭과는 별도로 마을 이름이 정해져 있다. 아무렇게나 정해진 마을이 아니라 나름대로 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수십, 수백 년을 거치며 형성된 시골마을은 조상들이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갈고 닦아온 삶의 터전이다.

'왜 하필 이곳에 자리 잡았을까' 하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해 마을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면 집 한 채도 없는 산자락 임야에 집터를 고르는 안목도 생긴다. 이미 겨울을 놓쳤으면 땅을 살펴볼 때 보다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사실 겨울이라면 쉽게 발견할 이런 문제들을 신록이 울창한 봄, 여름, 가을에는 시선이 흐트러져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땅의 일조량을 살펴보려면 그 주위의 산세와 높이를 봐야하고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울지 가늠해 보려면 계곡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 있는지를 봐야한다. 이런 판단이 쉽지 않으면 땅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마을 인근의 야트막한 야산을 고르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이때도 마을을 발 아래로 굽어보는 ‘튀는 언덕배기’ 는 피하는 것이 좋다.

마을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부사람들의 시선에 항상 노출 돼 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외지인이 마을을 발아래 굽어보고 살면 토박이들에게 좋은 소리 듣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전망 좋은 방' 에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 굳이 언덕배기에 집을 지어야겠다면 마을을 한 구비 돌아 약간 비켜선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좋다. 그것이 먼저 터 잡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나 임야에 터를 잡을 때 가장 주의할 점은 뭐니뭐니해도 진입로 확보 문제이다. 논밭은 그래도 농기계 출입을 위한 최소한의 길이나마 닦여 있지만 임야는 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 자주 지나다니다 보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일 뿐 대부분 사유지다. 구입 하고자 하는 땅에 바로 연결된 진입로가 없을 때는 최소한 폭 4m이상의 도로를 확보해야 나중에 집을 짓는데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