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갖출수록 더 채울 수 있다
‘마음속에 그린 집’을 찾아 전원주택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끝내 주저앉고 마는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원인은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갖춰진 것을 찾는데 있다. 그림부터가 너무 환상적이어서 마땅한 물건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좀 비슷한 것을 찾더라도 애초에 생각했던 그림과 맞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아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선다.

그러나 그림이 환상적이면 환상적일수록 터는 미완성일 채로 남아 있는 곳을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고 앞으로는 실개천이 흐르는 남향받이 언덕에 터를 잡겠다고 그림을 그렸다 치자. 사실 이런 입지조건은 시골집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마땅한 물건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터 자체가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선 다음이다.

조선기자재 납품을 하는 김모씨(55)가 거제면 시골마을로 터를 잡아 간 집은 애당초 처음 시골집을 구경해본 도시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돌려 버렸을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문 바깥에 들어서 있던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악취가 문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집에 대한 첫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헛간을 겸하고 있는 행랑채에서는 농약병이며 농기구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 그곳은 그런대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채 역시 기둥만 제대로 서 있을 뿐 무엇 하나 정갈하게 정리된 것이 없었다. 연탄보일러를 쓰는 재래식 부엌 벽은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려 있어 옛날땔감을 쓰던 시절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법 넓은 텃밭에는 연탄재며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몇 년째 버려진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소개를 해준 동내 이장도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이 설마 이런 집을 사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김씨가 이 집에 들어서면서 살폈던 것은 이장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방향이 달랐다. 그는 우선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 집의 위치를 살폈다. 집이 동네 한복판에 있지 않고 약간 가장자리에 있어 우선 이방인이 들어와 자리 잡기에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4m도로에 바로 접해 있는 데다 집이 길에서 약5m 정도 뒤로 물러 나 앉아 있어 주차공간이 여유 있게 확보돼 있는 것도 좋았다. 처음 들어 설 때 인상을 흐린 재래식 화장실은 어차피 철거해야 될 것으로 판단해 아예 머릿속에 지워 버렸다. 마당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바랜 붉은색 기와로 덮여있는 행랑채를 들어서면서 초가지붕으로 바꾸면 운치가 있을 것이라는 구상도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헛간은 남쪽으로 창문을 더 크게 뚫어 환기를 좋게 하면 창고로 쓸 만하겠다고 점찍었다. 그때까지도 재래식 땔감 아궁이에다 가마솥이 걸려있던 문간방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서재로 쓰기로 했다. 맨땅으로 방치돼 있는 마당에는 곱게 잔디를 깔고 중간 통행로는 넓적한 돌을 주워 다 징검다리로 만들면 재미 있을것 같았다. 볼품없는 안채는 기둥이며 뼈대가 튼튼한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마루에 붙어있는 방 1칸을 뜯어내 거실을 넓히고 뒷방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욕실로 개조하고 재래식 부엌은 바닥을 돋워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한편 부엌에 붙어 있는 방도 뜯어내 식당으로 쓰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그러고도 방이 2개 남아 침실로 쓰기 충분했다. 넓은 텃밭 한 귀퉁이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그 옆에는 통나무로 정자를 만들면 허름한 집의 외관이 살아나리라 생각했다. 3백여 평의 널찍한 텃밭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구상을 하면서 가타부타 내색을 하지 않으니 워낙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없는 집이라 집값은 아예 치지 않고 땅값도 시세보다 평당 5만원은 싸게 쳐 주었다. 5백 평 부지의 널찍한 이 집을 1억 원에 구입한 그가 당초 구상했던 대로 집을 개조 하는 데는 1천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뒤에 돼지 한 마리를 잡고 동네사람들을 초청해 집들이를 했을 때는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고 다들 입에 마르도록 칭찬했다.

전원주택을 제대로 장만하는 법은 바로 이런 것이다. 너도 나도 농촌을 떠나고 있는 지금 실정에서 더구나 팔려고 내놓은 집이란 대개 이런 모양이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겉으로만 보고 농촌주택을 고르려면 도시사람들의 눈으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드시 챙겨야 할 핵심부분들만 꼼꼼히 살펴보고 이상이 없으면 나머지는 어차피 손을 대야 할 것이므로 한 수 넘겨짚어 볼 줄 알아야 한다.

땅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원하던 것이 한 가지라도 제대로 충족되면 나머지 부족한 것은 스스로 채워갈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은 땅을 싸게 고르는 요령이다. 예를 들어 집 뜰에 그럴듯한 정자나무 한그루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진입로며 땅의 모양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지만 마침 땅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기가 막힌 정자나무 한그루가 있는 땅이 나왔다고 치자, 만약 나머지 부족한 것들이 인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다른 것은 일단 제쳐두고 정자나무 한 가지만 보고 땅을 확보해 두는 것이 좋은 터를 잡는 요령이다.

전원주택은 어차피 살면서 두고두고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아파트 입주 하듯이 한꺼번에 완벽하게 갖춰놓고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착하기로 한 땅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낮선 동네라면 부족한 것, 나중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 둘수록 좋은 집을 만들 수 있다. 도시와 달라 시골집에서는 집이 주변 환경과 조화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런 것은 한두 번 왔다 가서는 좀처럼 알아내기 힘들다. 차라리 처음에는 살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대충 꾸며 놓고 살아가면서 동네 분위기를 봐 가면서 하나씩 갖춰 나가야 정말 분위기 있는 그림 같은 집을 꾸밀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춰 놓으면 그건 별장이지 전원주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