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 전원생활의 유혹

▲ 손영민

2002년 뉴질랜드 여행에 나섰을 때였다. 기차를 타고 웰링턴 시내를 지나다보니 그림을 통해 보았음직한 영국풍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국적인 외양을 떠나서라도 줄줄이 늘어선 전원주택들이 너무 멋있어 황홀할 지경이었다. 잘사는 뉴질랜드인 들이라서 그처럼 미관이 뛰어난 집에 사는구나 생각하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몹시 궁금하던 차에 어느 가정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주말이나 휴가철에나 들르는 전원주택이려니 하고 들어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목조주택에서 가족들이 모여 전원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집을 지은 지 70년 이상 되는 주택이라는 사실이었다. 목조주택은 쉽게 낡고 허물어 질것이라는 소박한 인식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 그렇구나 뉴질랜드 북섬 지역의 대부분이 목조주택으로 조성된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목조주택의 장점을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지에도 목조주택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니, 선진국의 시민일수록 자연으로 돌아가 목조주택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그래서야 나는 확실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GNP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모든 의식주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결론이었다.

문명과 공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비로소 확인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은 아직도 인공섬유인 나일론을 즐겨 찾는데 반해 선진국 사람들은 천연섬유인 면(綿)을 선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한 신선한 무공해 채소와 과일 위주로 식단을 짜는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시골로 들어가 나무와 황토로 지은 주택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문명은 과거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논리에 맞든 맞지 않든 내 뇌리를 스친 추상화였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무공해 생활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원주택을 나무로 짓고 내부는 황토방으로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려는 계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류 호텔에서도 황토로 만든 찜질방을 만들고 일반 객실도 황토방으로 꾸미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때부터 모든 의식의 방향키를 '과거로의 회귀'와 '문명에서 자연으로의 탈출'로 잡았다. 즉,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들에게 목조주택과 황토방을 권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최모 시인이다 그는 지세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터를 잡고 아내와 함께 목조주택을 지어 자연으로의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의 비결은 모든 의식주를 자연화 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의 인생의 건강화를 추구하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확신 했다.

목조주택을 짓는 일, 나무벽돌을 발명하는 일, 흙벽돌을 굽고 황토를 적절히 활용하는 일, 온돌방에 황토를 바르고 부엌 아궁이에 황토를 붙이는 일, 물침대를 흙침대로 바꾸는 일....비록 환상이었지만 그 일은 시작의 반 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는 지세포 선창마을의 갯벌에 드러누워 몽상에 잠겼다. 따스하고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감촉으로 아늑한 느낌이었다. 달콤하고 포근한 천국에서의 꿈이 이보다 나을까 생각했다.

그 순간 뇌리에 떠오른 것은 개펄침대였고 다음에 이어 진 것은 진흙침대였고, 그 다음으로 상상한 것은 황토침대였다. 딱딱한 침대가 아닌 말랑말랑하고 따스하고 아늑한 황토침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황토가 우리 조상들에게 베푼 은혜가 무궁무진 하다는 걸 떠 올린 것도 그때였다. 그 순간부터 그는 황토를 찾아가는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