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 전원생활을 만끽하다
2005년, 필자의 권유로 황토 집을 짓고 전원생활에 흠뻑 빠져있던 김 장수(52)씨가 장승포에 있는 나의 개인사무실로 불쑥 찾아왔다. 도시 탈출에 성공한 김 씨가 들려준 드라마틱한 전원생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동부면 구천마을로 이사하면서 계곡과 앞마당의 나뭇가지에 스무 개가 넘는 새집을 달았다. 아이들과 판자를 토막 내고 동그란 구멍을 내어 못질하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침내 새들이 그 집에서 둥지를 틀기 시작했을 때는 새들이 중도에 포기를 할까봐 너무 조마조마해 환호성을 지르지도 못했다. 다람쥐를 한집안 식구로 길들이는 데는 무려 3년이 넘게 걸렸다. 처음엔 10m도 접근하지도 못하던 놈들이 1~2m까지 다가와 재롱을 피우는 통에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 맨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특별히 조경할 필요도 없었다. 계곡물이 굽이쳐 흐르는 쪽에 최소한의 축대를 쌓아 허물어짐을 방지한 것을 제외하곤 그대로 자연경관을 살리는데 그쳤다. 자연이 알아서 스스로 조경하는데 일부러 인위적인 멋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자연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마당의 풀 한 포기도 생존의 섭리가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뽑지 않고 야생화들도 그대로 두었다. 몇 년을 살아보니까 그야말로 자연에 맡기는 것이 진짜 조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계곡의 가재들은 꼬마들의 장난감이자 친구였다. 아이들이 잡았다가 놓아주는 바람에 집 근처의 가재들은 앞다리가 짧은 기형들이 자주 보이곤 했다. 마당의 잡풀에서 뒹굴던 아이들의 콧잔등엔 매미가 붙어 있고 장난감통에선 방아깨비와 메뚜기가 푸드득거리곤 했다. 잠자리, 메뚜기, 가재, 다슬기 등 작은 동물들을 잡는 것은 좋으나 다시 살려주도록 아이들을 훈련 시켰다. 자연에 대한 애착심은 바로 자연에 대한 순응력을 향상 시키는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었다.

사방 천지에 안개가 자욱해 아름다운 날이면 앞마당의 표고버섯이 피어났다. 너무 깨끗한 버섯이었으므로 씻지 않고도 조미료 없이 살짝 볶거나 삶아서 소금과 고추장에 찍어먹을 때면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다. 벌목허가를 받은 참나무 20그루에 10만원어치 종균을 주입하면 6~7년간 표고버섯을 실컷 즐기는 것은 물론 수시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식탁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드릴을 사용해 참나무 한 토막 당 30여 개의 구멍을 뚫고 종균을 넣은 다음 스티로폼으로 막으면 표고농사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적당한 기후가 표고버섯의 눈을 수시로 뜨게 했으니까 말이다.

여름의 매미 울음은 요란한 계곡물 소리로 하여 듣기 어렵다. 온천지가 붉고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지나면 거실의 페치카에서 장작 타오르는 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눈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귀한 눈이 오는 날이면 천국에 있는듯 한 포근함 때문에 마음은 싱싱한 생선처럼 파닥 거리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지붕창과 거실 창을 통해 달빛이 흐른 겨울밤 풍경을 바라보면 계절감각을 잊을 때가 많았다. 행복은 다른데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단풍의 계절은 더덕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면서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기 바로 전에 노란 이파리의 절반을 더덕으로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온가족이 산행을 나서서 반나절 정도 돌아다니면 천연 더덕으로 한바구니 그득 채울 수 있다. 아이들에겐 텔레비전이 필요 없는 교육을 시켰다. 현대문화가 쏟아내는 시각 공해와 청각공해에 시달리기 싫어 집안에는 아예 텔레비전은 들여놓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손에 들었고 밤늦도록 책을 놓지 않았다.

“얘들아 그만 자라, 책은 내일 읽어라.” 도시의 아이들과 다르게 책에 미쳐 있는 아이들이 때로는 안쓰러워 아내는 성화였다. 그러나 나는 말리지 않았다. 도시로 나갈 때 마다 우리가족이 읽을 책을 구하는 것도 즐거운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산등성이에 유달리 노을이 붉은 저녁이면 우리 가족은 학동 흑진주 해수욕장의 일몰을 구경하러 집을 나서곤 했다. 몽돌 사이로 해변을 거닐라 치면 천연계(天然界)의 소리를 몽땅 들을 수 있었다. 파도소리, 몽돌 구르는 소리, 바람결이 일렁거리는 소리, 팔색조 우는 소리...

천연계의 소리에 저마다 귀를 기울이던 우리가족들, 우리부부는 천연계의 생명이 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아이들을 그렇게 교육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