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중된 사업구조 등 시스템 문제 원인… 부실극복 해법은

▲ 왼쪽부터 현대중공업 계동 사옥, 대우조선해양 다동 사옥, 삼성중공업 판교 사옥.ⓒEBN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가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동반적자를 기록하는 등 대규모 부실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초 일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건조과정에서 쌓인 부실에 시황 악화에 따른 발주 감소 및 계약 취소, 기건조 선박 미인도 등 악재들이 잇따르면서 조선사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상황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부실사태는 조선시황 침체라는 근본적 원인 외에도 조선소 사장들의 짧은 임기기간, 해양플랜트 전문 설계인력 부족 등 시스템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주머니 사정 어려워진 발주사들의 ‘몽니’
조선 빅3는 지난 2분기 일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의 손실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하면서 약 5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이들은 향후 예상되는 손실을 모두 반영한 만큼 하반기에는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 봤으나 3분기에도 2조원이 넘는 추가부실이 발생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발주사들의 해양플랜트 및 드릴십 등 고부가가치 시설에 대한 잇따른 계약 취소 및 미이행 때문이다.

▲ 현대중공업 컨테이선.ⓒ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최근 노르웨이 발주사인 프레드 올센 에너지로부터 지난 2012년 수주한 6억2000만 달러 규모의 반잠수식 시추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기수주했던 드릴십 건조계약들이 최근 해지됐다.

이들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발주사들의 변덕이다. 통상 조선사들은 최종계약에 성공한 후에도 중도금 미납 및 잦은 설계 변경, 고의적인 인도 지연, 일방적인 계약 취소 등에 시달리는 일이 허다하다.

가령 5000억원 규모의 일거리를 수주하더라도 로열티나 선주의 설계 변경 등에 따른 운영비 증가분 등을 제외하면 최종적으로 남는 금액은 절반뿐이거나 그 이하, 심하면 적자까지 볼 수 있다. 일거리를 주는 선주가 ‘갑’인 수주사업 특성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발주사들의 횡포는 늘 있는 일이지만 대규모 부실을 반영한 올해에는 그 후유증이 몇 갑절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진 만큼 추가부실 등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근본원인은 경기침체 및 저유가 현상
조선 빅3의 추가부실을 안겨준 발주사들의 횡포는 세계 경기 침체 및 저유가 현상 고착화에서 기인한다.

상선시장의 경우 지난 2008년 발발한 금융위기로 인한 후유증에 최근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린 그리스 사태가 겹치면서 최악의 수주가뭄을 겪고 있다. 그리스는 조선 빅3의 주요 발주사들이 몰려 있는 해운강국이다.

경기가 위축되면 이들 발주사나 해운사들은 상선 발주량을 줄이게 된다. 또한 재무구조가 개선될 때까지 이미 발주했던 선박 인도는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일도 잦아진다.

▲ 대우조선해양 해양시설.ⓒ대우조선해양

실제로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은 빅3 등 한국 조선업체들이 지난 10월 12억9000만 달러 규모의 선박 28척 수주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8%, 전월 대비로는 절반 이상이 줄어든 수치다.

상선시장이 죽으면서 최근 5년여 동안 국내 조선업의 효자역할을 대신해 온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도 결과적으로 대규모 부실사태의 큰 원인이 됐다.

저유가 현상 지속으로 신규수요가 거의 사라진 데다 기수주 물량도 잦은 설계 변경이나 인도 지연 등 발주사들의 몽니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까지 조선 3사 수익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해양플랜트 수주 비중은 저유가현상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10% 정도로 줄었다.

더욱이 건조 노하우 등의 부족으로 설계 변경이 자주 발생하고, 자금사정이 악화된 선주들이 고의적으로 인도를 늦추다 보니 유지비 등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해양플랜트가 기당 5억 달러를 웃도는 규모인 만큼 건조나 인도가 지연될 경우 도크에 하루 정박해 두는 데 소모되는 유지비만 해도 수억원이다.

조단위 부실사태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현대중공업 원통형 골리앗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나 삼성중공업의 에지나 FPSO, 대우조선해양의 송가 해양설비 프로젝트 등이 그 생생한 예다.

◆시황에 울고 웃는 조선업계, 대안은?
가장 큰 문제는 해양플랜트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국내 조선업계의 편중된 사업구조다. 기존 주력 분야였던 상선 부문은 중국의 물량공세로 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결국 시황에 의해 수익이 크게 좌지우지 되는 구조다. 그러나 빅3는 해양플랜트 전문인력 양성이나 포트폴리오 확충 등 미래를 대비한 연구·개발(R&D) 등은 등한시 한 채 수주에만 열을 올려왔다.

빅3가 탄탄한 내실 없이 성과 중심의 수주경쟁을 지향해왔다는 예가 삼성중공업의 에지나 프로젝트다.

▲ 왼쪽부터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EBN

당초 삼성중공업은 발주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천신만고 끝에 해당계약을 따냈었다. 그러나 수주 이후 열악한 현지 조건으로 건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1조5000억원대의 부실의 단초만 제공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 CEO는 2~3년의 짧은 임기 동안 눈에 띄는 실적을 내야 하는 입장”이라며 “임기가 짧다 보니 사실 수주활동에만 집중하는 것도 벅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조선 빅3의 선제적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면서도 해양플랜트 문제에 대한 장기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홍 연구위원은 “과거에도 현재도 상선 수주로만은 수익성 확보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해양플랜트 부문 집중은 불가피할 것”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이어 “수주경쟁이 격하다 보니 해양플랜트 계약시 일괄수주(EPC) 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겠느냐”라며 “앞으로 설계 등 모자란 부문에서 R&D 등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나머지 문제들도 장기적이면서도 포괄적인 해결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EBN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