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원경쟁력 제고 조선소 강화 등… 이 와중에 오너가 3세는 약진
매서운 인사 한파가 조선업계에도 몰아치고 있다.

글로벌 불황의 그림자가 국내 산업계에 드리운 가운데 삼성그룹 등 국내 주요기업들은 올해 연말 인사에서 승진은 줄이고 퇴출은 늘리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가 버티고 있는 조선업계도 조 단위 부실사태까지 겪은 만큼 재계의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캐시카우’였던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큰 손실이 발생한 만큼 과감한 감원을 단행하고 조선 부문 등 보강 등 본원경쟁력 강화에 나선 게 이번 조선업계 인사의 핵심이다.

다만 이같은 대대적 물갈이 움직임에도 오너가 3세의 약진과 CEO의 건재는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옷 벗는 임원 갈수록 늘어
빅3는 조 단위 부실사태가 본격화된 이후인 지난 2014년 10월부터 지난 4일까지 실시된 인사에서 180여명의 임원들을 퇴출시켰다. 이는 같은 기간 기준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최대 규모다.

대형 조선업체 한 관계자는 “거취가 공개된 임원들만 따진 규모인 만큼 자연퇴직 등의 경우를 합하면 200여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대중공업은 권오갑 사장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10월과 올해 상·하반기에 걸쳐 무려 3번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중공업이 1년 동안 2번의 임원인사를 실시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

이 3번의 인사에서 130여명의 임원이 옷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약 4조5000억원의 누적부실을 신고한 상태다.

올해 1조5000억원대의 누적부실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2월 단행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10명이 짐을 쌌다. 지난 4일 단행된 인사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임원이 퇴임하거나 한직으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이미 지난 9월 고강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10여명의 임원들에게 퇴임을 통보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퇴임임원은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것이다.

인사가 상시적이라는 점은 올해 4조2000억원대의 누적부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아직 정기 임원인사 전임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만 이미 14명의 임원을 줄인 상태다. 이 정도만으로도 연간 감원폭으로는 최근 10년 이래 최대 규모다.

늘어나는 퇴임, 줄어드는 승진
퇴임규모가 늘어난 만큼 승진규모는 3사 모두 줄이거나 줄일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11월 말 실시한 하반기 인사에서 114명의 임원이 승진하거나 신규보임했다. 단순수치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1년간 퇴임임원만 13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승진폭은 줄었고 조직도 축소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반기 전체 상무보 신규 선임자중 40대 젊은 임원의 비율은 46%, 하반기에는 50%를 차지했다. 그만큼 퇴임한 임원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 대우조선해양 해양플랜트 설비.ⓒ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해가 갈수록 승진임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3년 말 21명이던 임원 승진자가 지난해 12명, 올해 10명으로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지난해 정기인사조차 미뤄진 후 올해 6월에서야 8명의 임원이 승진하거나 신규보임했다. 그나마 전무 이상 승진 인사는 연말까지 보류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들어 조직을 30% 축소하면서 임원도 41명으로까지 줄인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임원인사가 연말에 실시될지, 올해를 넘기게 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승진은 더 최소화할 것”이라며 “인사가 실시되면 일부 추가 퇴임임원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신규보임으로 41명 전후를 유지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인사에 담긴 ‘신상필벌’ 의지
이처럼 3사는 조직은 슬림화한 반면, 최근 인사 등을 통해 조선소장 등의 입김 강화 및 신설을 꾀했다.

▲ 삼성중공업 판교사옥.ⓒEBN

그동안 고수익을 안겨다주던 해양플랜트에서 부메랑을 맞은 만큼 조선 부문 본원경쟁력을 강화해 저성장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책임경영과 현장경영을 강화해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3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조선사업 대표를 사장급으로 격상, 김정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반면 해양부문 대표였던 박종봉 부사장은 자문역으로 물러났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4일 인사에서 조선소장을 맡던 김효섭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생산현장의 위상을 높였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정기인사가 아닌 지난 8월 31일 조직개편을 통해 조선소장 직급을 부활시켰다.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소장 체제로 돌아간 것은 4년여 만이다.

이처럼 이번 조선업계 인사에서는 조직이 축소되고 전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가 3세는 오히려 승진하거나 경질이 유력했던 CEO는 유임되는 등 변수도 발생해 재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이번 하반기 인사에서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정기선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올해 초 상무로 진급한 지 불과 1년도 안 된 파격인사다.

앞서 정 전무는 지난 2009년 사원이 아닌 대리로 입사해 2년여를 근무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입사를 위해 퇴직했다. 이후 정 전무는 2013년 부장으로 재입사해 올 초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로 승진했다.

취임 후 적자에 시달려 오면서 재계 안팎에서 ‘경질설’이 파다했던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의 경우 이번 인사에서 유임이 결정됐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외활동이 뜸했던 정 전무를 잇따라 승진시키는 것은 위기시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를 느낀 데 따른 조치 아니겠느냐”면서 “박 사장의 경우 경영상 실수가 아닌 불황에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EBN뉴스>